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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jin Oct 24. 2023

2023/10/24

있지만 없는 공원

집 근처 공원 표지판


  집 뒤편에 공원이 아주아주 크게 생겼다. 아니 원래 있던 곳이었는데 이번에 개방을 했다.  공원 안에는 호수도 있고, 새 공원도 있고,  카약을 탈 수 있는 곳, 조정 경기를 할 수 있는 곳, 심지어 작은 소극장도 있다. 공원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지나면 우리 집이 나온다.  중국이라 땅을 아끼지 않고 맘껏 써서 아주 크고 이쁘게 만들어 놨다. 그런데...... 이 공원은 쇼룸 같다.

   공원이라 하면 문이 없어야 하는데, 이 공원은 문도 있고, 담으로 둘러쳐져 있고, 심지어 문마다 경비 아저씨들이 지키고 있다. 그리고 사진에서처럼 하지 말라는 표지판이 아주 크게 문 앞에 박혀 있다.  개방 시간이라는 것도 있어서, 하절기엔 새벽 5시부터 7시까지, 동절기엔 새벽 5시부터 5시까지다.  9월부터 동절기라 공원 저녁 산책은 해가 환하게 떠 있어도 불가능하다.

  

   중국은 이렇다.

    규율이 너무 많다. 뭘 하나 하려고 하면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저 표지판에 박힌 하지 말라는 것은 18개나 된다. 큰소리로 떠들어도 안되고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도 안되고, 잔 뒤밭에 들어가도 안된다.  심지어 엉덩이 잠시 붙일 벤치의자 하나 없다.  그나마 우리 집 쪽 공간은 제한된 시간 안에 개방이 되어있지, 뒤편으로 호수를 끼고 다리를 지나서 넓게 넓게 펼쳐진 쪽은 담으로 들러쳐져 있다.  숨이 막힌다.


  공원을 만든 이유가 의심스럽다. 쇼룸으로 보여주려고 만든 것인가? 누구를 위해 만들었나?

  이 표지판에 숨이 막히는 건 신기하게도 이 동네에서 나만 그런 거 같다. 다들 그냥 받아들인다. 여기는 사사건건 뭐든지 하지 말라는 것투성이다.  이래서 안돼 저래서 안돼, 그리고 왜 안되는지 설명해 주지도 않는다. (꽃을 꺾어서는 안 되고, 동물에게 먹이를 줘서는 안 되고, 대소변을 보면 안 되고,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된다는 것들을 일일이 알려줘야 알아먹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문제 이긴 하다.) 상식과 상식밖의 일을 구분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런다는 것을 알지만(그래서 중국이라는 것도 안다).... 숨이 막힌다.


 중국인들이 물어본다. 

"오래 살았으니, 여기서 이제 적응은 다 했지?"

나는 그저 웃기만 한다. 이런 것까지 적응하기란 힘들다.


올해 4월 아이와 간 런던에서 우리는 공원이란 공원은 다 돌아다녔다.  강아지 산책온 사람들, 조깅하는 사람들, 바닥에 앉아 혹은 누워 책을 읽는 사람들, 아이와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던 기억, 호수에서 나온 백조와 오리가 천천히 걸어도 아무도 건드리지도 않았고, 다람쥐와 청설모가 옆을 훌쩍훌쩍 뛰어다니고 옆에 머물다 가도 보기만 하던 사람들,  공하나에 세상 행복한 아이들, 그림 그리는 학생들,  노래 부리는 청년들, 버거킹이 나의 킹이라며 시위하는 아저씨, 조그만 푸드트럭에 아이스크림과 풍선을 팔던 아저씨......  이곳 동네 공원보다 작고, 소박했지만 자유로운 공원.


 그런 공원이 있었으면 한다.


 공원이 있지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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