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면죄부를 받고 싶어서
다른 이에게서 나에 대한 지적과 충고를 온전히 좋게만 받아들이는 건 어려운 일이다. 정말 진심 어린 따뜻한 얘기이거나 반드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거기에 감정은 없는지, 숨은 의도가 있거나 날 얕잡아보는 건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되기도 한다. 매사에 당당하고 자신 있는 것과 비뚤어진 자기애는 알고 보면 매우 달라서, 지적에 대한 한 개인의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내 안의 내가 단단하지 못하면 나의 말과 행동을 돌아보기보다 말과 행동 자체를 '나 자신'으로 여기게 되어서 누군가의 지적을 '나'에 대한 부정이나 도전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생각과 상황이란 너무나도 유연한 것이기에 나와 분리될 수도, 어떤 이유로 틀릴 수도 있는 것이지만, 부정당하거나 무시당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혹은 내 생각은 무조건 옳다며 덮어두고 하는 주장 같은 것은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낳을 때가 많다. 내가 모르는 새에 다른 이들의 마음속에서.
나는 나를 학대하듯 가끔 친한 이들 앞에서 스스로를 나쁘게 얘기하곤 했다. 난 착한 애가 아니니까, 난 성격이 더러우니까, 난 원래 이런 애니까. 비단 성격뿐만이 아닌 일상에서의 날이 선 자조. 그건 일부의 나에 대한 혐오였는지, 쿨한 척이었는지, 정말 진지했던 자기 객관화의 산물이었는지, 혹은 아주 사소하게 있어 보이고 싶었는지, 가벼운 개그 욕심이었는지 그 이유는 알려고 하진 않았다.
조금 더 어린 때, 나는 스스로 그 감정에 약간의 자신이 있었는데 나를 사랑하기만 하는 것 말고, 인간은 당연히 완벽하지 못할 텐데 난 이렇게 냉정해. 나 자신을 잘 알고 있고, 받아들일 줄도 알지. 이런 심산이었던 듯 하지만 말이 아닌 생각과 행동도 실제로 그러했었는지는 의문이다.
무턱대고 해댔던 자기 비난은 실제로 나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비뚤어진 마음이 작용했을 공산이 컸다. 그런 뾰족한 말을 스스로에게 할 때에는 난 더 나쁘고 싶어, 화가 난다면 누군가에게 화도 더 내고 싶어, 난 겉으론 못 그랬지만 속에 가진 생각은 이렇게 나쁜 애야, 라며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이었다. 정말 나는 나쁜 생각도 하기에, 그러면서도 행동으로 옮기는 건 극소수이기에 그 간극을 내 속을 알만 한 이에게나 그런 식으로 표출하는 것이었다.
난 이미 그런 생각을 가졌으니 나쁜 사람이야 라는 포기도 한몫했다. 내게 좀 엄격한 만큼, 그걸 나쁘게 생각했었고 혹여나 내가 한 번씩 거친 행동과 언변을 일삼더라도 난 나 스스로를 그렇게 말하고 다녔으니 괜찮겠지, 용서받고 싶었던 것. 더 핵심은 아마도 '나쁜 생각을 고치기는 싫어'였을 것 같다.
실제의 삶은 어쨌거나 생각보단 행동을 컨트롤하는 게 맞는 것이었고, 그 정도는 나쁜 축에도 못 낀다고 느낄 때도 분명 있지만. 여전히 생각이 심란한 나 자신은 별로이며, 남이 알아주지도 않을 생각조차 뼈아프게 성찰해야 한다는 깐깐함이 세상 속에선 억울하게 느껴지는 때도 있는 법이다.
지적과 충고를 무조건 좋게 받아들이는 게 바른 사람일까. 다른 이들의 감정에 포커스를 두고 사는 사람들에겐 미칠 노릇일 지도 모른다. 진정한 충고는 당연히, 너를 위해서라는 치트키를 쓰는 이들에게는 죄책감으로, 막무가내로 자기 생각만 들이미는 이들에게도 마음 한편을 내주고 마는 사람들에겐 (나는 절대 그렇지 못하지만) 미련하다며 핀잔을 주기도 한다. 가장 모난 구석이 덜 할 빛나는 이들이 겪어내기엔 만만치 않은 세상, 충고는 때로 가려 들어야 나를 망치지 않고, 그런 이들에게서 나를 지킬 줄도 알아야 한다. 부당한 요구에까지 나를 힘들여 내어줘 봐야 애초에 그런 생각을 가진 이들에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일 때가 많으나, 어디까지나 그 선을 판단하는 건 개인의 몫.
다시 생각해 봐도 여전히 나는 스스로를 좋게 말하지는 못하겠다. 결국은 그 나쁜 말들의 진실을 알고서도 더 나아질 자신은 그다지 없는 것, 싫다고 표현한 것은 마침내는 고쳐야 할 것임을 알았으나 그에 닿지 못한 나를 끝내 양심 상 괜찮다고 말할 수 없는 것에 가깝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의 기준은 행동일까, 마음일까.
보통의 사람들에게 그 차이를 극복하고 사는 건 당연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