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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인셋 Jul 14. 2023

저 먹먹한 돌덩이들처럼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런 걸 하려면 잘할 수 있었다. 주변에 대체로 무심한 나, 눈앞에 가로놓여있지 않으면 잊고 지내는 것들, 그래 그런 것처럼. 몇 달이 가도 우연히 얼굴 볼 일 없으면 연락 한 번 않고 지내는 것처럼, 하던 대로 그렇게. 하지만 가슴엔 이미 뭔가 새겨진 모양이었다. 생각하지 않아도 때때로 날 뜨겁게 짓누르는 것. 뱃속이 뒤틀리거나 별안간 피를 쏟거나 퍼붓듯 잠이 왔다. 그러니까.. 혈육이란 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라니까.


비가 오니 자꾸만 처졌다. 떠올리기 싫으니 비 때문인 걸로 정했다. 쓰러지듯 바닥에 얼굴을 맞대고 까무룩 잠이 들면 잠깐 시원했다. 과열된 무언가를 식혔다. 그래도 개운하진 않았다. 숨을 쉬지 않고 자다가 자꾸만 헉헉거리며 깼다. 사람에 대한 내 차가운 심장만큼 몸서리가 쳐지는지 시원한 걸 틀 수도 없었다. 난 그렇게 정체되어 축축한 열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숨이 막히면 막히는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마음에서 놓아주는 데 이 정도가 필요하다면 그만한 공은 들여줘야 할 것 같았다. 아니면, 그냥 다 귀찮아서라고 말해. 지독한 여름 속, 나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


말 못 하는 뭉뚱한 돌덩이 사진만 봐도 눈물이 나는 건 뭔가 잘못되긴 했다. 넌 얼마나 답답하니. 그렇게 뭘 뒤집어쓰고, 우락부락하게, 꾹 다문 입처럼. 쏟아질까 봐. 그러나 잠시일 것이다. 마음이 지옥일 때 내가 바라고 바라던 일 아닌가. 저지르고 보니 좀 달라서, 괜스레 마음 약해진다는 건 말이 안 됐다. 그는 그렇지 않을 테니 돌아간다면 더 큰 지옥, 그를 뺀 모두가 억울할 일이 될 것이다. 그러니 잘한 일이다. 말 한마디가 뭐라고, 그가 한 것에 비하면. 더 큰 사태를 막기 위한 일, 그와 같이 모진 나는 충분히 끊어낼 수 있을 것이었다.


수십 년간 기회가 있었고 걷어찬 건 그였다. 그에겐 아직도 떠나가는 가족 앞에 남은 '자존심'이 있으니 괜찮을 것이었다. 그의 주변은 그가 먼저인지, (그의 말에 의하면) 남이 먼저인지 모르지만, 모두 그를 남겨두고 떠났다. 그도 내 위의 핏줄을 모두 끊어낸 경험이 있다. 그 질리는 마음이 무언지, 자신의 입장에 똑같이 충분히 대입해 볼 수 있을 텐데 그에게 안타까운 건 늘 자신뿐이었다. 가족을 만들어선 안 됐던 사람. 공감 없이 그저 군림하는 자. 학습이 없으니 그 지긋지긋했다던 삶을 똑같이 답습할 수밖에. 그 모난 성격을 좀 가둬두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소통하지 않는 중심의 쇳덩이로만 존재해도 가정은 유지되었을 거고, 그에겐 그게 최선이었을 텐데. 말은 그런 힘을 갖고 있었다. 생각을 담는 말, 말로 지는 천냥 빚, 소통하고 싶은 아빠에게서 본 바닥.


같은 일을 놓고 생각은 하늘과 땅 차이라도, 느끼는 감정은 불덩이 마냥 똑같을 우리는 아마도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을 것이다. 서로 남 탓을 하며. 남이라.. 말은 참 쉽네. 산 하나도 흩뜨릴 수 있을 저 비도 이 마음은 씻어가지 못하나. 아마도 '흙탕물이 되어버린 산'에 더 가깝겠지. 이제 정말 그만 생각하자. 지금은 터지려는 마음을 붙잡으려 쓰지만 유쾌하지 못한 글, 아무리 받아들이기로 했다지만 그 끝이 어딘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양 끝에 다 닿아봐야 진짜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 감정을 고스란히 다 인정하고 다 표현해 버리는 쪽엔 아마, 평생 닿을 수 없지 않을까.


늘 미움이 쌓이면 쉽게 잠 이루지 못하는 나였다. 몇 번 해보니 좀 앓으면 끝이던 그것도 이젠 몸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니. 이게 좋은 마음 가지고 살아야 할 이유구나. 내 삶의 목표는 '그의 반대'이니, 그냥 먹먹한 돌덩이처럼 지내자. 목표가 그쯤은 되어야, 가끔은 실수라 쳐도 나도 바닥은 보이지 않고 살겠지. 남을 배려하고 사는 것도 지능이라 믿는 우리 속에서, 물려받은 적 없는 지능을 만드느라 오늘도 애쓴다. 하지만 생색은 금물이다. 무조건 반대로 살자.


그래도 뜨거움은 식고 있었다.

아주,

조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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