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가 내게 주는 영향
아침에는 괜히 향 좋은 커피를 찾게 된다. 찬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도 날이 많이 더워지니 굳이 속까지 뜨겁게 땀 낼 필요 없지, 근데 얼음도 없네.. 적당히 찬물 섞어서.. 읍. 세상 뜨뜻미지근한 커피를 만들고 말았다. 괜히 커피만 아깝게. 목구멍에 넘어가질 않는다. 역시, 귀찮다고 대충 살아서 문제야 난. 또 한 번 내가 싫어진다.
왜 뜨겁거나 차가워야 할까. 정체성인가. 오늘 유독 미지근한 커피가 싫었던 건 그게 이도저도 아닌 딱 내 온도 같아서다. 덥고 축축한 날씨, 내 뜨겁게 달뜬 속, 차가우려고 노력하는 얼굴과 말투, 고작 다 섞여서 아무것도 아닌 우중충한 태도를 만드는 것들. 지지부진 나아질 기미도 없고 처리되지도 못하는 것들. 온도의 항상성을 잃은 목구멍에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낄만한, 데이도록 뜨겁거나 속이라도 잠재워줄 차디찬 것을 집어넣어야 한다.
원하는 온도와 농도의 커피 한 잔을 못 먹은 게 이렇게 짜증스러울 일이라고? 이미 지쳐버린 마음은 매사 '되는 게 없네-' 라며 나쁜 쪽으로 감정의 역치가 한껏 낮아져 있다. 이대론 못 견뎌. 환기가 필요했다. 귀찮았지만, 최소한의 화장을 하고 동네 모르던 곳으로 발에 피날 때까지 걸어보자며 길을 나섰다. 일부러 새 신발을 신고. 그건 대체 무슨 심보일까.
내 마음을 측정이라도 하려는 듯이, 괜히 굳건한 의지로 몸에 생채기를 내려한다. 못된 마음. 날씨 덕에 금방 땀이 났고, 나는 졌고, 시원한 카페에서 바닐라라떼 하나를 주문해 두고 발에 밴드를 붙였다. 이 가슴속 뜨거움이 발의 저 작은 물집 하나만도 못하다니. 간사하다. 어느덧 '내가 나를 안 돌보면 누가 돌봐'로 마음은 바뀌었다. 단 걸 먹으면 좀 낫겠지. 근데 이렇게 바닐라라떼가 무맛으로 느껴진 적이 있었나. 얼음이 잔뜩 들었는데도 미지근하게 느껴진 적이 있던가. 맛없다. 오늘은 뭘 먹어도 이럴 모양이구나. 나아진 것 없이 다행인 것도 같은 패배감만 더 끌어안은 채 터벅터벅, 비가 오기 전에 착실히 집으로 돌아간다. 역시, 뜨뜻미지근한 나라서.
나는 여전히 손이 조금 떨리고 있고, 가슴엔 뜨거운 납덩이가 내내 짓누르는 것 같고, 긴장된 듯 화가 난 듯 내 몸을 어쩌지 못해 혹사시키고 있고, 자꾸만 쉬라는 듯 잠이 오는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몇 년이 가도 한 번 앓을까 말까 한 입병이 다 퍼져 신경은 예민하고, 위경련이 왔는지 속을 쥐어짜는 듯해서 먹을 의욕이 없다. 오늘도 대청소를 한참 하고서야 점심때가 지나도 너무 지났음을 깨닫는다. 밥이 뭔데.. 밥 한 끼 안 먹으면 큰 일 나는 줄 알던 사람 맞나. 흔치 않은 기횐데, 다이어트나 하지 뭐.
흘려보내지 못하고 붙잡아 곱씹고 또 곱씹는 건, 부둥켜안고 온몸이 진흙투성이가 되도록 꼭 한바탕 해야만 보내줄 수 있는 건 - 사람이라서, 얽히고설킨 연이라서. 서로의 기대와 불만 사이 채워지지 못한 곳. 그곳이 깊으면 깊을수록, 함께하는 시간만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을, 빚진 이는 빚인 줄도 모르니 갚을 수 있을 리가. 수십 년 홧병의 교훈은, 내 삶에 중요치 않은 걸 중요하게 만들지 말자는 거다. 점차 나는 발전해서, 마지막 남은 중요한 건 우리의 관계성뿐이었다. 이젠, 그것도 중요치 않다.
성내지 않고,
생긴 대로 뜨뜻미지근하게 살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