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둘러싼 미움의 본질
나는 가장 평범한 사람이다.
또한 나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누구나 가진 욕망,
군중 속에 어우러져야만 살 수 있는 사회적 동물로,
온전한 나 자신으로 존재하고픈 자아,
그 사이에서 꾸며진 것들.
나의 꾸밈에 대한 부담이 클수록 꾸밀 의지조차 없는 이들에 대한 억울함이, 나 혼자만의 피해가, 스멀스멀 불꽃으로 피어난다. 수없이 겪은 미움 속, 결국 내가 문제였던 건 아닐까 까지 거슬러 올라간 배신의 서사.
그것은 곱씹어볼수록 속내를 감추려고만 했던 내 자신과 애초에 의지의 문제도 아닌 타인의 개념, 모두의 문제인 것을 늘 한 발짝 떨어져야만 뒤늦게 깨닫던 과오의 역사.
그래서 나는 늘 나와 당신이 가진 그 본질을, 개념의 차이를 꿰뚫고 싶다. 그것이 관계의 가장 큰 리스크이자, 우리 삶의 개념이다.
그다지 미움이 없는 삶은 돌이켜보면 때로 무료했다. 미움이 있던 편의 삶이 훨씬 치열했다. 가장 날카로운 그때가 수용하는 감각과 논리 또한 가장 첨예하다. 평화롭다는 건 조금 기계적이면서도 미래에 더 나아질 것이 확실시되는 유지의 삶일 때가 많았다. 애초에 행복을 느끼기엔 야박하게 생겨먹은 마음이라 잔잔함 속 작은 티끌을 기어이 찾아내고 마는 나이지만 사람에게만은 그게 얼마나 무용한 것인지 안다. 세상 예민하게 꼬투리 잡고, 없을지도 모를 숨은 의도까지 굳이 찾아내가며 혼자 스트레스받을 일은.. 그래, 없는 게 이상적이다. 때때로 지켜지지 않게 마련이지만.
그 괴로움이 그리운 거냐 하면 말도 안 되지만, 공식처럼 다 똑같이 되지도, 명쾌한 풀이도 못 되는 그런 어려움이 여태 풀지 못한 숙제로, 살면서 계속 지고 가야 할 업보로 남은 것 치고는 이제는 조금 같이 갈 결심이 섰달까.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일도 성과도 아닌 것으로 여겨지던 인간관계는 그렇게 내 삶에선 늘 가장 큰 과업이었고, 크나큰 걸림돌이었다. 주변에서 늘 네가 옳다고 편 들어주어도, 내가 그다지 자책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점점 삶에 쓰인 미움의 흔적은 내게로 돌아왔다. 내가 다 잘했을 리는 없었다. 더 나은 방법이 있었을 것이었다. 나는 가끔 나에게도 매정하다. 그리고 그것이 진실인지, 이런 나는 당신보단 나은 사람이야 라는 위선인지도 가끔 헷갈린다.
내 안의 나와 계속해서 대화하기를,
넌 미움 속에서 뭘 찾고 있구나.
내 성정이 삶에서 미움을 떨쳐내지 못할 것 같아서.
미운 게 남이야, 너 자신이야?
.. 둘 다.
그럼 너에 대한 미움은 어디서 왔지?
남을 미워하다 보니 내 구김을 깨달았지.
그래, 무엇을 먼저 끝내는 게 쉽겠니.
끝내는 게 아니야, 남에겐 쉽게 모자라다고 말하면서 받아들이지 못하던 내 못남을 죽을 때까지 탐구하듯이 파 들어가는 거. 치열하게 미워하며 살고, 결국 그걸 끝내 못 봐주는 나 자신은 어디에서 무엇이 잘못 됐는지 또 기어이 찾아내고 받아들이는 거. 그건 대체로 생겨먹은 그 자체도 있지만, 내 과거의 결핍이었던 것이기도 해서 그걸 찾고 있어. 그때의 나를 좀 달래고 으름장을 놓고 해야, 적어도 같은 미움은 생에 다시 반복되지 않겠지.
그렇게 그냥, 조금은 더 나아질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