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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침 오늘 아침 Jun 28. 2023

끝까지 가보는 기회는 흔치 않다.

07. 일하는 사람을 위한 사유

 

한 번은 서너 달의 기한을 주는 프로젝트를 오픈 42일을 남긴 시점에서야 맡았다. 광고주 내부적으로 정치적 겨루기를 하다가 누가 맡더라도 시한폭탄이 된 때 돌고 돌아 내게로 온 것. 처음에는 단호히 거절 의사를 표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내가 맡을 것이 자명하여, 당시 필요한 것을 걸고 조건부로 수락 후 지옥 같은 봄을 보냈다. 그 여파는 거셌고 그야말로 산산이 부서진 채로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창 너머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본 기억. ⠀⠀⠀⠀⠀⠀⠀⠀⠀⠀⠀⠀⠀⠀⠀⠀⠀⠀⠀⠀⠀⠀⠀⠀⠀⠀⠀⠀⠀⠀⠀⠀


업종 특성상 고질적으로 보편적 시간 개념이 없는 환경에선 분 단위로 사는 것에 익숙해져 간다. 그렇게 버티다 가루가 되어 공중으로 사라질 것 같은 공포가 들이칠 때가 되면서 돈으로 시간을 사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를 하려고 서두가 길었다. ⠀⠀⠀⠀⠀⠀⠀⠀⠀⠀⠀⠀⠀⠀⠀⠀



, 시작은 그때도 지금도 집부터 ⠀⠀⠀⠀⠀⠀⠀⠀⠀⠀⠀⠀⠀⠀⠀⠀


집이란 의외로 많은 시간과 노동을 요구한다. 게다가 한순간 방치하면 그야말로 일상이 무너지기 십상이었다. 누군가는 비즈니스호텔 같다고 한 우리 집. 최소한의 가구만 갖춘 후 매주 금요일 밤에 세탁 픽업을 신청하고, 프로젝트마다 출국 하루 전에 청소 매니저를 예약하는 방식... 나만의 기준으로 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 없어도 괜찮은 것은 과감히 버리면서 생활이 효율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얻은 몇 시간의 자유는 나를 위해서만 쓴다. 토요일 이른 아침에는 악기를 배우고 출근하고, 일요일 아침에는 전시를 보고 출근하고, 책장을 살 시간이 없어서 식탁부터 현관 앞, 침대옆 등 곳곳에 쌓인 책은 손에 잡히는 대로 두세 챕터씩 이어가며 읽는다.

, 이렇게 살아야 할 때도 있다. ⠀⠀⠀⠀⠀⠀⠀⠀⠀⠀⠀⠀⠀⠀⠀⠀

꾸준히 보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에서 김성근 감독님께서 선수들에게 ’ 돈 받고 있으면 너희들은 프로다.‘라고 일침을 놓는 장면이 있다. 지금이 목적지향적 삶을 살아야 하는 때라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정당한 돈 받고 괜찮은 재화를 제공하는 프로가 되자.” 생각이라는 것이 끼어들 틈도 없이 계절을 무심히 보내야 하는 지금이 끝까지 가 볼 수 있는 기회. 쉼 없이 몰아쳐 들어오는 것들을 제치고 손을 뻗어 내가 해낼 수 있는 끝에 닿아보자. 나는 그렇게 배웠다. ⠀⠀⠀⠀⠀⠀⠀⠀⠀⠀⠀⠀⠀⠀⠀⠀

, 선택에 대한 증명은 나로 하면 된다. ⠀⠀⠀⠀⠀⠀⠀⠀⠀⠀⠀⠀⠀⠀⠀⠀

인간이란 쉬이 변하지 않는다. 고유의 나다움이란 어떻게 해도 달라질 수 없는 것이라면, 답이 정해진 질문을 반복하느라 이 순간을 소모하기보다는 내가 펼칠 수 있는 선택지를 만들고 증명을 위한 방향에 집중하자. 그러면 지나가더라 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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