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우리 엄마.

by 윗위키

어렸을 때부터 우리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너무 하고 싶었는데 그게 지인은 아니었다. 이렇게 나만의 공간이(내가 누군지 아무도 모르는) 생겼으니 생각나는 대로 써보려 한다.


엄마는 아빠의 가정폭력으로 어렵게 살림을 꾸릴 때에도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까지 일하며 어떻게든 우리 가족을 먹여 살렸다. 물론 아빠의 보탬이 없었다는 건 아니지만 엄마에 비할바는 아니었다. 여기에는 우리 형의 노력도 포함되지만 형 이야기는 따로 하기로 하고 일단 엄마의 얘기만 하기로 한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이사로 인해 위치는 바뀌지만 여전히 백반집을 운영하고 있다. 엄마는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는데 철없고 생각이 짧았던 나는 그게 당연한 일인 줄 알았다. 내가 성인이 돼서 내 가게를 하기 전까지 이 일이 얼마나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든 일인지 알지 못했다.


그런 엄마를 아빠는 심하게 괴롭혔다. 성인지 돼서 알게 됐는데 그것은 술에 의한 의처증이었고 엄마를 너무 힘들게 했다. 아침까지 술이 깨지 않은 아빠는 출근도 하지 않고 엄마 가게 가서 행패를 부리기 일쑤였고 퇴근이 조금만 늦어도 별의 별소리를 했다. 힘들게 장사 끝내고 집에 와서 좀 쉬려 하면 잠도 재우지 않고 그렇게 잔소리를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21살, 입대를 했다. 첫 휴가를 나왔는데 집에 아빠가 없었다. 엄마는 아빠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고 했다. "왜"냐고 묻지 않았지만 엄마는 나 없는 동안 아빠의 폭력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강제로 입원시켰다고 했다. 나는 그저 고생했다는 말 밖에 하지 못했다.


면회를 갔다. 아빠는 당신이 왜 입원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말만 했고 엄마를 무척이나 원망하고 있었다. 내가 전역하기 전에 아빠가 병원에서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면회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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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봐온 엄마는 정말 대단한 삶을, 시간을 보냈다. 아니 버텼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우리를 놔두고 도망갔어도 우리 형제를 포함한 친인척들 또한 아무도 엄마에게 나쁜 말을 못 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어떻게, 무슨 생각으로 그 모진 일을 당하며 버텼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지만, 오롯이 우리 가족을 위해 버티고 희생했으리라 감히 짐작해 본다.

엄마는 아빠가 빨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종종 했다. 아빠가 죽어야 남은 가족이 그나마 맘 편히 살지 않겠냐는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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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아빠가 두 번째로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다. 가장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던 내가 보호자로 등록했다. 아빠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가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모시러 간다고 했다. (병원 가는 길에 엄마 가게가 있다.) 엄마에게 가는 길에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순간 뇌가 멈춘 듯했지만 이내 정신 차리고 엄마에게 연락했다.

엄마는 아빠의 죽음을 덤덤하게, 아주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입관을 하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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