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프랑스 여행 일기 中
(…)
술이 계속 들어가자 로만은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신랄한 디스를 시작했다.
“쟤는 창녀같이 입었고, 쟤는 그냥 창녀고, 쟤는 창녀 꼬시겠다고 깝싸는 병신이고, 그 옆에 새끼도 마찬가지고, 이 씨발 이탈리아 년놈들은 왜 여기까지 쳐와서 지랄들이지? 나는 진짜, 진짜…“
로만의 말끝이 희미해졌다.
왜 말을 하다 말지 싶어 나는 그를 쳐다봤다.
그런데 이게 뭔가.
로만이 뜬금없이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전남편이 다른 남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을 봤다는 어젯밤의 가슴 찢어지는 썰을 풀 때에도 유쾌하던 그가,
너무나도 슬프게 눈가를 비비고 있었다.
“뭐여 ㅋㅋ 왜 갑자기 우냐?“
내가 장난스레 물었다.
“세상이 끔찍해서.”
그가 답했다.
그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하게 슬퍼보였다.
“너는 저들이 진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거야?”
로만이 그가 온 힘을 다해 까던 사람들이 앉은 테이블을 삿대질하며 내게 물었다.
“있지, 당연히”
나는 담담히 답했다.
로만은 나를 보고 비웃음을 날렸다.
그리고는 내 뒷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그의 숨결에 배어있는 맥주 냄새는 이미 적응이 된지 오래였다.
“니 뒤에 여자애, 어 그래 걔.
걔 옷차림이랑 영혼따위 찾아볼 수 없는 눈깔 한 번만 보고 다시 그렇게 말해봐.
그러면, 그러면 내가 인정할게.“
나는 뒤를 돌아 내 뒷자리 여자를 봤다.
잠시 그녀와 눈길이 부딪혀 서둘러 다른 테이블로 시선을 옮겼다.
여자는 영락없는 창녀였다.
슬펐다.
그럼에도, 그 여자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로만의 의견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었다.
“저 여자도 나름의 이야기가 있고,
자기 나름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
일단 사람이고, 살아있으니.“
내가 답했다.
로만은 밝은 미소를 지었다.
서양인답게 깊게 패인 눈두덩이는 홀딱 젖어 반짝였다.
“ㅋㅋ 너 재밌다.”
그가 답했다.
나는 로만 또한, 나처럼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냉소주의자, 혹은 비관론자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 만약 그랬다면 애초에 쌩판 처음 만나는 동양인이랑 얘기도 안 했겠지.
그냥 많이 상처받은 듯했다.
감히 예상을 해보자면, 10년동안 각본가로 살아오며 그가 써내린 세상과 그 앞에 펼쳐진 세상 간의 간극에서 나오는 괴리감 때문이지 않을까.
그가 사랑하는 대상 - 인간들이, 그의 눈에는 너무 슬피 보이는 듯했다.
슬퍼하는게 아니라, 그가 봤을 때 그가 슬퍼지는.
그래야지만 손가락질과 눈물 모두 설명이 가능하니까.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해 나는 극히 일부분만을 알 수 있었지만,
끝내 자신의 세상에 대한 사랑을 져버리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왔으며,
카뮈의 말을 빌리자면 “뜨겁게 절망하며“ 창녀에게 눈물을 흘리고,
13시간의 비행에 지친 내게 차디찬 기네스 생맥을 건넸다는 데에서,
나는 로만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