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 Aug 23. 2023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에......


여름방학, 가족들과 계곡에 물놀이 다녀왔던 스토리를 그림일기로 표현했던 급우가 부러워서 나도 따라 한다고 가지도 않았으면서 '가족들과 놀이 공원 간 날'로 제목 붙여 그림일기를 적었던 때가 있었다.


아이코! 가족들과 놀이 공원이 다 뭐래?

그래도 뻥 그림일기를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은 가본 적이 있기 때문에, 가서 본 게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날의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어 보면, 부모님 두 분은 어마무시한 데시벨의 고함으로 몇 라운드에 걸쳐 승부를 겨루었고, 어린 삼 남매는 그 광경을 고스란히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불안해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무소불위의 아버지 고함에 어머니는 도망치듯 우리 삼 남매를 데리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셨고, 그 길로 도착한 곳이 초읍동에 있는 어린이 대공원이었다. 철없는 둘째(나)와 셋째는 천지분간도 못하고 신난다면서 나풀대며 다니기 바빴고 그 와중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어머니의 처연한 표정과 눈치를 살피는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영락없는 어린이) 언니였다.


그래! 가 본 적이 있으니 그림으로 대충 그려보자!

나도 남들처럼 가족과 함께하는 걸 보여줘야지!

그날의 슬픈 기억은 온데간데없고 그림일기 속의 엄마 아빠는 웃으면서 사이좋게 손잡고 있는 금슬 좋은 부부로 둔갑해 있었다. 또한 삼 남매는 유치하지만 티 없이 맑은 어린이로 잘 자라는 걸로 일기장과 내가 합의를 보았다. 그날 일기장을 검사하신 담임 선생님은 일기장 하단에 댓글을 달아 주셨다.

"많이 행복했겠구나."




피자를 처음 먹었던 때가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그때 나는 집이 꽤 부유했던 급우와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친구는 나를 포함한 세 명의 친구들을 '집들이' 명목으로 초대했다. 새 아파트에다가 집은 또 어찌나 넓던지...... 방이 4칸이었는데 부모님 방, 친구방, 남동생방이 각각 있었고 나머지 한 칸은 드라마에서나 보았던 '서재'라고 했다. 문을 열어 들어가 보니 진짜 드라마 속 서재와 비슷하게 커다란 책장과 빽빽하게 꽂힌 책, 와이드 책상, 책상 위에 놓인 목이 긴 스탠드 조명, 그리고 내가 평소 '회장님 의자'라고 부르는 등받이 목받이 있고 360도 회전되는 푹신한 의자가 있었다. 의자에 앉아봐도 된다는 친구의 말에 우리는 순서를 정해서 차례차례 앉으며 빙그르르 돌았다.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내 눈은 다 풀려버렸다.


"얘들아, 이제 저녁 식사 해야지~~"


친구 어머니의 부름에 우리는 식탁으로 갔다.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에 놀란 내 눈은 상하좌우를 가리지 않고 돌아가기 바빴다. 여러 음식 중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양념통닭, 패스트푸드점의 눅눅한 감자튀김(길쭉한 감자튀김이 얼마나 눅눅해졌는지 할미꽃처럼 구부러져 있었다), 부추전, 그리고 피자 두 판이다. 그중에서 내 눈도장에 찍힌 것은 다름 아닌 피자였다. '부자들이 먹는 음식', '내가 접할 수 없는 음식'이라고 생각했던 피자가 떡하니, 그것도 두 판씩이나 있는 게 아닌가. 그 옆에는 광고에서 보던 동그란 바퀴처럼 생긴 피자 롤러칼도 있었다. 대충 사람수 대비해서 적어도 두 조각 이상은 먹을 수 있겠다는 암산이 속도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제 먹자."라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초대받은 세 명은 무섭게 피자를 공략했다. 아뿔싸! 다들 나처럼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하지만 먹는 속도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는 나 아니었나. 대화를 삼가고 먹기에 집중했더니 그 포만감은 감당이 안 되었고 급기야 교복 치마허리 훅을 살며시 끌러놓았었다.


그 친구의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자함이 넘쳐흐르는 부모님 두 분, 넓은 집, 나만의 공간, 피자...... 게다가 늦은 밤 세 명의 친구를 집까지 태워 주셨던 친구 아버지의 자가용 승용차 검은색 대우 프린스까지.

나도 그 공간과 여유를 공유하는 구성원이 되고 싶었단 말이다. 그 무렵 우리 집 가산은 90도에 가까운 기울기로 직하향으로 궁핍의 나락 초입에 들어서고 있었고, 친구 한 명이 배부르다고 먹다 남긴 잇자국 선명한 피자를 싸가고 싶을 만큼 아쉬웠던 그런 시기였다. 대우 프린스 뒷좌석에 앉은 우리는 조수석에 앉아 있는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다.

"혜영아! 니는 진짜 행복하겠다!"




나이에 비해 일찍이 내 얼굴에는 주름이 많았다. 10대엔 눈가의 촘촘한 잔주름이 많았고, 이십 대에 이르러서는 '팔자주름'이라고 불리는 입가의 주름이, 이십 대 후반에 미간에 지리 잡은 '내 천(川) 자'주름까지. 얼굴 주름은 한 사람의 성격, 삶을 나타내준다고들 하던데, 눈가 잔주름은 많이 웃어서라고 이유를 붙이고 싶었고, 미간주름은 소심한 내 성격 탓에 직장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핑계 대고 싶은데, 입가의 팔자주름은 어떤 연유인지 설명을 잘 못하겠다.


"j,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매일매일 눈가에 아이크림 열심히 발라줘야 좍좍 펴진다. 지금 관리 안 하면 나중엔 네 나이보다 훨씬 들어 보일 거야."


(모두가 그렇지 않지만) 직원들이 구입하는, 가까운 주변 사람들이 구입하는 화장품 가격을 듣고 놀란적이 있었다. 하지만 놀람도 잠시이고, 그들처럼 갖춰야만 내 주름이 펴질 것 같다고 확신을 했다. 아이크림을 매일매일 발라주고, 정기적으로 마사지를 받아주고, 순서대로 바르는 다섯, 여섯 단계의 화장품 중에서 하나라도 동이날것 같으면 지체 없이 준비해 두는 것이 나를 위하는 것이고,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송충이가 솔잎을 먹어야 한다고, 게으른 내가 남들처럼 따라 한답시고 부지런을 떨기엔 내 의욕이 충만하질 못했다. 그래도 그렇게 갖추고 관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이유를 말하자면......

남들도 다 그렇게 하고 사니까.




통념, 상식, 흐름, 유행, 기본.

이러한 잣대를 내세워 나의 캐릭터는 그 모습을 자신 있게 나타내지 못했다.

"적어도 이 정도는", "남들 보는 눈이 있는데", "남들 하는 것만큼은" 등의 말로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보는 눈'에 맞춰 살아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

내 눈에 보이고, 내 귀에 들리고, 외부에서 만들어낸 흐름과 유행을 접하면서 스스로를 가스라이팅 해온 건 아니었을까.

내면의 거름망 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서서히 젖어들어갔던 나를 더욱 깊숙이 욱여넣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똑 부러지게 표현하진 못하지만, 거창하지도 않지만 내가 지향하는 원칙과 의미와 가치를 마음속에 지니고 있다.

그렇다고 통념과 흐름, 유행 등을 깨지도 맹종하지도 않는다. 세상 모든 사람의 생각과 현상은 다 상대적이고 다양하다. 그중 나의 환경, 캐릭터, 가슴속에 지니고 살아가는 의미는 여러 다양한 스펙트럼 중 하나이기에 그 속에 존재하는 하나로서 존중하고자 한다. 그리고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이해해보려 한다.


가가호호 여름이면 가족 물놀이를 가야 하고, 그 가족은 화목과 사랑으로 똘똘 뭉친 한 덩어리 이어야만 하는 줄 알았다. 어느 집이든 부모님은 인자하고, 누구 고함소리가 더 큰지 겨루는 집은 우리 집뿐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일기 속의 내 부모님은 두 손 꼭 잡고 있어야만 했다. 피자 롤러칼을 써 본 적도 없으면서 써 본 것처럼 포장했던 나를 떠올려보기도 한다. '왜 우리 집에는 검은색 대우 프린스가 없을까.'하고 부모님을 원망해 보기도 했다. 화장품은 백화점 또는 누구를 통하건 면세점에서 잊지 않고 사 두어야만 나에게 충실한 것이라고 확신해 왔다.


세월이 흘러 지금의 남편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가 이제 곧 성인의 나이를 바라보는 시점에 이르고 보니 어른들이 말씀하셨던 "모든 게 다 때가 있다."는 걸 서서히 알겠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없고, 애써 배우려고 찾아 나서지도 않았지만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끼면서 시행착오를 거쳤던 나는 차곡차곡 쌓아왔던 내면의 원칙과 지향하고자 하는 의미가 때를 알아차리고 나를 지켜주고자 조금씩 조금씩 발현되고 있음을 순간순간 느낀다.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던 외부의 모습은 원칙도 규칙도 당위도 아니라는 걸 이제야 진짜 조금씩 알아가고 있고, 그 앎의 때를 내가 알아차리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힘을 주는 한 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