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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Feb 18. 2024

경주, 내가 사랑하는 곳.

일기예보에 의하면 오늘 밤부터 비가 온다고 했는데, 오전 10시를 조금 넘긴 시각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바라본 하늘은 연한 잿빛이다. 부산의 하늘도, 경주의 하늘도.


"이번 주 일요일은 아침 일찍 출발해서 경주로 드라이브 다녀오는 거 어때요?"


기분이 좋을 때, 기분이 그저 그럴 때, 마음이 복잡해서 기분이 가라앉을 때, 이도 저도 아닌 그냥일 때.

늘 경주로 향한다. 혼자서 또는 남편과 둘이서 아니면 마음 맞는 선배들과 함께 말이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50여분을 달리면 어느새 [전방 몇 킬로미터 '경주'] 이정표가 보이고, 그때부터 내 가슴은 설렘으로 가득 찬다. 결혼 전 언제인가 퇴근 후 남편과 서면 롯데백화점 지하 분수대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나갔을 때 노란색 프리지어 꽃다발을 들고 서 있던 남편을 멀리서 바라보며 설레어했던 그 느낌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것처럼.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아무 말도 없이 나를 포근하게 안아줄 것 같고 다 받아줄 것 같은 경주를 좋아한다.


'이렇게 쫓기듯 생활하고, 일하는 게 맞아? 이대로 가면 내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지?'

하루하루 너무 빠듯한 요즘. 나를 돌아보게 되고, 생각에 잠기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 그만큼의 내공이 체득돼서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노련해질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여전히 2,30대의 효율적이지 못했던 내 모습에 대한 기시감을 느끼곤 한다. 

명절 연휴 전날, 몸에서 반응하는 이상 징후를 느끼고 퇴근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는 약처방 보다 휴식이 강력히 요구되는 상태라고 해서 양가 명절 인사도 남편과 아들 사람만 다녀오게 되었다.  연휴 4일 내내 책 읽고, 낮잠 자고, 가까운 곳에 드라이브 다녀온 게 전부였는데 마음 한편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조급함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었다.


연휴가 끝나고 화요일부터 시작된 바쁜 하루하루를 느끼면서 스스로 내 등을 쓰다듬게 된다.

'나를 돌보자. 나를 먼저 생각하자.'

수요일 저녁, 남편에게 말했다.

"이번 주 일요일은 아침 일찍 출발해서 경주로 드라이브 다녀오는 거 어때요?"

회사 근무 일정만 문제없다면 남편은 언제나 나의 제안에 찬성한다.


아침 여덟 시에 출발하려고 했으나 아들이 토익 시험장까지 태워달라는 갑작스러운 부탁을 하는 바람에 예정보다 한 시간 정도가 늦어졌지만 다 괜찮다. 경주로 가니까.

경주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남산마을로 가서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30여 분 가량 마을 산책을 하고, 정갈한 한정식으로 점심 식사를 했다. 애쓰지 않아도 내 마음이 받아들여지고 위로받고 있다고 느껴지는 이곳을 사랑한다. 그리고 마음을 내어주고 싶은 곳이 있다는 게 든든한 뒷배처럼 느껴진다.


다행인 것은 예전에는 바쁜 일정과 그 속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도 몰랐지만 지금은 상황을 인지하고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를 스스로 알고 실천한다는 점이다.

내일 또다시 분주한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모든 상황, 조건 등은 다 상대적인 것이라서 나의 분주함이 누군가에겐 아쉬움으로 또 누군가에겐 하찮음이 될 수도 있겠지. 

버겁고 힘들 땐 쉬어주면서 충전해야 한다. 

오늘 경주에 다녀온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충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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