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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쿨캄준 CCJ May 08. 2023

판교 자가에 스타트업 경영하는 김 대표 5화

5화 - 합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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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김 대표는 다시 상기한다.


167, 무용과, 늘씬하고 귀여운 구ㅇㅇ 20대 후반 여성을 생각한다.  부모님을 제외한 스펙적인 측면에서는 김 대표가 구ㅇㅇ보다 더 조건이 좋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여성들이 이상형으로 '존경할 수 있는 남자' 그리고 '배울 점이 있는 남자'를 언급하고 있는 부분을 상기한다.  이러한 이상형은 결국 여성들이 자신보다는 잘난 남자를 찾는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는 힘차게 마우스 왼쪽 버튼을 더블클릭하고 진 상담사와의 대화창을 연다.


김 대표는 회사에서 보급한 쓰리스타 쿠센 흑축 키보드를 조용히 두드리며 진 상담사에게 답변한다.  

'서울 중구 반팔티 타워 근처라면 퇴근 후 주중에도 만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번 주말에는 일정이 있어서 어렵습니다.  만일 주말을 선호하신다면 다음 주 토요일은 좋습니다.  장소는 적절한 곳을 정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의 경우 젓가락질을 올바르게 하지 못해, 첫 장소는 양식이나 커피숍을 선호합니다.'


'구ㅇㅇ씨와 확인하고 다시 알려 드릴게요.'

오늘도 진 상담사는 김 대표의 코코넛톡 메시지에 칼 같이 답변을 한다.




13


퇴근하고 집에 들어왔다.  


무두절이라 더더욱 일찍 들어온 그런 날이다.  게이트레이디에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어보니 몇 번 신지도 않은 굿즈비통 신발에 이빨 자국이 보인다.  인센티브의 일부만을 활용하여 질렀던 명품 신발이다.  반팔티 타워에서 근무하는 김 대표 대리에게는 크게 비싼 물건은 아니다.  이 정도는 김댕댕이 산책을 자주 시키지 못하여 발생하는 작은 사고라고 김 대표는 생각한다.


문제는 원룸에서 나름 거실 지역으로 활용하고 있는 곳에서 발견했다.  바월스앤빌킨슨에서 나머지 보너스를 다 털어서 구매한 스피커 2개 중 한 개가 넘어져 있다.  다가가 보니 스피커 커버 솜이 다 찢겨 있다.  바월스앤빌킨슨 스피커가 왼쪽 그리고 우측에 세워져 있어야 스피커 중앙에 앉아 있는 청자가 최적의 사운드를 경험할 수 있다.  스피커를 세우고 오늘 퇴근하면서 들은 노래를 틀어본다.  소리가 우측에서 밖에 들리지 않는다.


김 대표는 주 차장과 같은 사람과 함께 회사생활을 하여도, 반팔티 타워 회사가 독점하다시피 하는 사업으로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과 인센티브를 보면서 감내했다.  특히 퇴근하고 들려오는 바월스앤빌킨슨 스피커가 주 차장이 주는 스트레스를 모두 떨쳐 버리는 역할을 해 왔다.  대한민국 5대 대기업 대리가 누릴 수 있는 럭셔리라고 자부하면서 말이다.  


주 차장 때문에 김댕댕이 중성화 수술을 할 수 없다면 어떡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큰 사고가 나 버렸다.  어렵게 중성화 수술을 하고 돌봐주고 그래도 김 대표가 김댕댕이를 더 자주 케어할 수 없다면, 김댕댕이가 스트레스를 극심하게 받고 있다는 걸 이런 식으로 계속 표현할 것이다.  김 대표는 오랜만에 시골에 계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다.  


'어 엄마 내다.  잘 지냈나?  잘 있재?'


'그래 잘 있다.  저번에 대리 진급 기념으로 보낸 용돈으로 여기 동네 아주머님들이랑 맛있는 거 먹고 그랬다.'


'아 그랬나?  다행이다.  엄마 지난번에 왜 내 외롭다 카면서 입양한 강아지 기억나나?'


'그럼 기억나재.  가 애교도 많은 게 귀엽던데, 와 카는데?'


'오늘 주 차장 휴가라서 집에 일찍 왔는데, 야가 그냥 내 살림을 다 파탄 냈다, 아 돌아삐겠다.  굿즈비통 신발을 물어뜯고 바월스앤빌킨스 스피커 다 망가 뜨렸다 안카나.  내 반팔티 타워에서 새 빠지게 일하면서 나온 보너스 다 털어서 샀는데 큰일이다.  곧 소개팅도 할 거 같은데, 그때 신을라 카던 신발이데 속상하다.'


'소개팅?  맨날 자만추 자만추 카더니 웬 소개팅이가?  여자는 다 필요 없고 우리랑 집안 비슷비슷하고 마음 착하고 경제관념만 있으면 된데이 알겠재?'


'아 아라따 아라따.  내가 알아서 한다 안카나.  엄마, 김댕댕이 야 좀 델고 가면 안 되나?  나 야 잘 키우고 싶어서 데려 왔는데, 산책도 못 시켜주고 해서 그래서 그런지 좀 만 더 있으면 다른 것도 다 망가뜨릴 거 같다.'


'그렇게 그렇게 강아지 키우지 마라고 뭐라 뭐라 캐 사도 굳이 입양해서는 엄마한테 키우라고 하는 거 봐라.  니 양심은 있나?'  


'아 미안타 엄마.  부탁한다 아이가.  우리 시골집 댕댕이도 곧 무지개다리 건널라 카는데 야 델꾸가면 아빠도 좋아할끼다.  부탁한다 엄마.'


'아아 모르겠고, 다음 주 주말에 아빠랑 서울 올라갈 일 있다.  그때 김댕댕이 넘기라.  그리고 니 그 칼라카면 다시는 애완동물 키우지 마라 알겠나?'




14


주 차장이 수상하다.  


오늘도 휴가다.  그리고 곽 부장은 어디 갔는지 자리에 하루종일 없다.  


메신저를 받았다고 화면 한쪽이 깜빡깜빡 거린다.  같은 본부 내 다른 팀 동료인 안 대리이다.  안 대리는 MBTI가 대문자 E로 시작해서 인지 회사 내 소식이 빠르다.  오늘도 김 대표에게 전달할 소식이 있다.  


'김 대표 대리, 어제 B팀 팀장이 팀원들 모두 불러서 전달한 소식 들었어?'

B팀 팀장은 타 팀의 팀장들과 달리 팀원들과 소통을 잘하기로 알려진 사람이다.


'안 대리, 오랜만이네.  아니 못 들었어.  무슨 일이야?  분명 또 주 차장이랑 곽 부장이 우리에게만 이야기하지 않는 내용이겠구나.'


'그렇지!  그래서 내가 또 알려주려고 왔다 이거야.  우리가 또 어떻게 만날지도 모르는데, 김 대표 대리만 깜깜하게 둘 수는 없지!'


'좋아 5분 뒤에 반팔티 타워 카페에서 보자.'

안 대리와 김 대표의 메신저는 모두 자리 비움으로 변한다.  


김 대표는 안 대리의 아메리카노도 결제한다.  진동벨이 울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머그컵 두 잔을 안 대리가 잡아둔 자리로 가져온다.  


'안 대리 자 따뜻한 아메리카노야.  결혼 준비는 잘 되고 있지?'


'김 대표 대리 커피 감사!  한국에서 결혼하기 진짜 너무 힘들다.  이렇게 돈이 많이 필요한 줄 알았다면 인센티브 다 모아 둘 걸 그랬어.  월급도 좀 모으고 말이야.  지난번에 독서 모임 그분이랑은 잘 되었어?'

안 대리의 손목에는 로뤡스가 보인다.  지난번에 김 대표와 만났을 때는 쉑이코였는데 말이다.  말만 돈을 모으겠다고 하는 것으로 김 대표는 생각한다.  


'아니 잘 안 되었어.  갑자기 모임에서 탈퇴했어.  이사가게 되어서 위치가 애매해서 그렇다고 해.  그리고는 최근에 소개팅 오랜만에 들어와서 만나보려고 해.  업데이트해 줄게.'


'좋아.  김 대표 대리 요즘 보니까 주 차장이랑 곽 부장 회사에 잘 안 보이고, 둘이서만 뭔가 쿵작 쿵작 하는 거 같더라고.  아마 전달 못 받았겠지만, 우리 본부 전체가 합리화된다고 해.'


합리화는 무언가를 접거나 없앤다는 의미로 활용되는 한국 5대 대기업만의 단어임을 신입 사원 때 알게 된 김 대표이다.

'어?  우리 본부 전체가 없어진다고?'


'맞아.  대략 1달 뒤에 인사 발령 날 거고, 개별 면담 들어가면서 향후 거취에 대해서 이야기할 건 가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YK가 수익성이 결여된 사업들을 반팔티 법인에서 분리시켜, 독립된 법인으로 세우라는 지시를 하였다고 해.  주 차장이랑 곽 부장은 곧 있으면 팀원들에게 함께 남아서 현상 유지하자고 권유할 거야.'


이 대리의 말이 맞다.  새로운 법인에서 근무한다면 주 차장과 곽 부장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이다.  그러나 김 대표는 반팔티 법인에서 근무한다는 타이틀이 아직은 필요하다.  적어도 구ㅇㅇ씨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김 대표는 다시 상기한다.  167, 무용과, 늘씬하고 귀여운 구ㅇㅇ 20대 후반 여성을 생각한다.




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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