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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디한 사자 Jul 28. 2022

라텍스 알러지가 있는 수술방 의사

우리가주인공인① 소아외과 서정민


정확히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어떤 진료과의 회식날이었을 것이다. 당시 병원에 입사한지 얼마 안되기도했고, 경력직에 대한 동료들의 시선도 좋지 않았을 때라 나는 나의 생존 방법으로 선택한 전략 중 하나가 교수님들과의 인맥 쌓기였다. 더군다나 술을 좋아하니 회식에 참여하는 것이야 말로 전략을 충족시킬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다.(나의 술욕을 채워가면서 전략을 충족시킬 수 있다니, 얼마나 이상적인가)


특히 홍보팀은 병원의 전 진료과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고, 간호사, 의료기사, 사회복지팀 등 스토리가 있는 곳 어디든 누구든 찾아다니기 때문에 작정하고 회식에 참여하자면 과장 조금 보태 정말 매일매일도 술을 마실 수가 있다. 


여튼 각설하고 서정민 교수를 처음 만난 건 소박한 어느 고깃집이었다. 대한민국에 열 손가락 안에 꼽는다는 소아외과 전문의. 소위 BIG5라 불리우는 이 병원에서도 소아외과에는 단 3명의 전문의만 있을 정도였으니까. 


선배를 따라 들어간 방은 흡사 옛날 우리 할머니댁의 작은 방 같았다. H라인 스커트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들어 간 나와 굉장히 어울리지 않는.

심지어 맨발이어서 방문으로 들어갈 때 나의 발이 매우 수줍었던 기억이 난다.


서정민 교수는 '의사' 또는 '대학교수'라는 명칭에서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와는 매우 다르다.

'사람 좋은' 느낌이 물씬 나는 소탈하고 호탕한 웃음 소리가 아마 수술을 앞둔 아이들의 보호자에게 가장 큰 위안이 될 것 같은 느낌.


한창 소주를 주고 받다 서정민 교수의 손에 시선이 꽂혔다.

물집 투성이었다.


"교수님 손이 왜 이러세요?"

"아, 라텍스 알러지가 있는데 수술할 때마다 라텍스 장갑을 껴야해서 항상 이래."

"아니 알러지가 있는데도 어떻게 평생 이렇게 해오세요?"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로 잠깐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기들 살려야지, 엄마아빠의 간절함이 있잖아."


소설 또는 드라마 속에서나 나올 법한 대답이었다.

비현실적이지만 그게 저 사람의 진심이라는 것에 일말의 의심이 없었기에 나는 스마트폰 카메라를 켰다.


"교수님, 이 손 사진 찍어도 돼요?"

"이걸 왜 찍어? 하하하"

"이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해요!"


그렇게 찍은 사진이 아래 사진이다.


2013년의 스마트폰 카메라는 지금보다 많이 기술이 떨어져있어 화질이 만족스럽진 않지만,

내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말하기엔 충분했다.


이 사진은 인터뷰 기사에 넣기도 했지만, 당시 운영하던 병원 페이스북에 업로드해 병원 페이스북 운영 이래 처음으로 좋아요 700개 정도 받았었다. 이 사진 한 장을 시작으로 당시 병원 페이스북 콘텐츠 운영의 주요 전략이 '포토 에세이'가 되었음을 감안해보면, 서정민 교수는 당시 내가 운영하던 병원 SNS 콘텐츠 전략에 가장 큰 인사이트를 준 사람이다. 지금도 이 사진을 보고 있지만 9년 전 그 날의 술자리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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