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우주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댄디한 사자 Jul 30. 2022

조향사 출신의 바리스타

우리가주인공인 우주인②  프랜차이즈 카페의 어떤 바리스타

"무화과 향이 나는 향수 쓰세요?"

"... 네?"


새벽 운동을 하고 회사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서 사무실로 출근하는 것이 나의 루틴이다. 대개 하나에 꽂히면 정 떨어질 어떤 사건이 생기거나, 하다 하다 아 이젠 징글징글하다 싶어지지 않는 이상 주야장천 그것만 공략하는데, 그게 나의 고관여인 커피인 경우엔 미저리급의 집착력을 발휘한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카페인 의존형 더 정확하게는 카페인에 의한 생존형 인간이기 때문이다.


가장 안타까울 때는 마음에 드는 카페가 없을 때인데, 지금의 회사 근처 카페들이 다 그저 그래서 한참 카페 유목민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다 얼마 전, 아침에 같이 운동하던 후배들이 새로운 카페가 생겼다며 그곳에 가보자고 제안했다. 특히 커피를 대량으로 마시는 나에게 최적화된 900ml가 넘는 커피가 있다면서.


별 기대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고집해야 할 카페가 있던 것도 아니어서 후배들을 따라 그 프랜차이즈 카페에 갔고, 산미 있는 원두를 고를 수 있다는 점과 대용량이 그나마 마음에 들어 그 이후로 아침마다 그 카페에 들르게 됐다.


후배들이 새벽 운동을 나오지 않아 나 혼자 운동하고 출근하던 그날 아침, 

키오스크에서 산미 원두의 대용량 사이즈를 주문한 뒤, 커피를 받아 빨대를 꽂기 위해 투명 비닐을 벗기고 있던 순간, 그 바리스타가 말을 걸었다.


"제가 향수를 좋아하는데, 손님이 뿌리신 향수에서 무화과 향이 나서요. 향 너무 좋아요."

"... 네? 아, 이건 샹탈이에요. 르 라보 샹탈"

"아... 너무 좋네요."

"감사합니다."


눈주름을 과하게 발사하며 고맙다고 돌아서며 잠깐 생각했다.

'너무 많이 뿌렸나...?'


며칠 뒤, 그는 나에게 몇 가지 정보를 더 말해주었다.

들어올 때부터 향이 난다면서 본인이 조향 하는 일을 했었어서 향수에 관심이 많은데, 내가 뿌리는 향수가 너무 좋다고 했다. 주문한 커피를 받아 드는 그 짧은 순간마다 향과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를 업데이트하는 그의 이야기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모든 삶에는 주름이 있다 하였다. 겹겹의 주름은 생의 전투를 치르며 새긴 자신만의 내력을 품고 있다. 우리가 살아온 삶의 압축. 쉽게 드러나거나 읽히지 않아 단정할 수 없는 저마다의 이야기.


그가 가진 주름의 실체가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실은 더 풀향이 나는 새로운 향수를 선물 받아 이걸로 메인 향수를 바꿀 예정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쳐들어와 내가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용기를 보여준 그 마음이 반가워, 그에 대한 의리(?)로 당분간 내 살에서 이 무화과 향이 스며 나오는 걸 더 유예하기로 했다. 


르라보 샹탈33 LE LABO SANTAL33





매거진의 이전글 라텍스 알러지가 있는 수술방 의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