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는 마법이다.
며칠 전 곤도마리에의 『정리의 힘』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 중에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오래 하는 편이 아니다. 이거다 싶으면 바로 행동으로 돌변하는 행동파다. 읽던 책을 멈추고 책장에 있던 모든 잡동사니를 꺼내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잡동사니가 쌓여있는 걸까? 정말 필요한 것만 놓고 다 치우자는 마음으로 하나씩 꺼내서 바닥에 내려놨다. 그렇게 정리하다 보니 책장은 거의 다 비워졌다.
서랍을 열어 사용하지 않는 펜과 종이 감기 재료, 수채화 도구 등 안 쓰는 모든 것을 다 꺼내 놓았다. 그렇게 다 꺼내 놓으니 99%의 짐이 다 빠졌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쌓아놓고 살았던 것일까? 잡동사니가 집안에 안 좋은 기운을 감싸고 있다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자격증 공부한다고 쌓아둔 책이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쌓아 논 볼펜들은 종류 또한 다양했다.
컨테이너 작업실로 옮기기 시작했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거다. 책상과 컴퓨터 말고는 아무것도 없던 방이었다. 내가 사용하던 컨테이너 작업실에 놓여 있던 것들이었는데 여름내 누군가를 빌려주면서 잠시 방으로 옮겨왔던 것이다. 꽉 찬 방안이 너무도 답답했는데 잘 됐다 싶어 즐거운 마음으로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2층 방이어서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힘들어도 빨리 치워야 한다는 마음에 책은 보다 만채 짐 이동 작업을 계속해 나갔다. 1층으로 내려다 놓은 후 또 뒷마당에 있는 작업실로는 차로 한 번에 옮겨 이전했다. 그렇게 치우고 나니 주변 환경이 환해지면서 마음까지 밝아졌다. 정신까지도 맑아진 기분이다.
“너무 정리가 하고 싶어지는 이유는, 정말 방을 정리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정리하고 싶은 다른 무언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시험 전날 정리하고 싶은 충동이 시험이 끝난 후에도 계속 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시험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전날 밤의 정리에 대한 열정은 깨끗이 사라지고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게 된다”
곤도마리에 『정리의 힘』 중
공인중개사 자격증 시험을 2년간 공부했었다. 공부하는 내내 주변 정리를 하루도 빠짐없이 하고 있었다. 바로 당근 마켓으로 물건을 파는 일이었다. 공부하는데 방해가 될 만큼 귀찮게 매일 거래를 하기 위해 집에 손님이 찾아왔다. 집중을 해야 되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거래를 해야만 했다. 끊지를 못했다. 뭔가 쌓여 있는 게 싫었다. 2년 동안 그렇게 온갖 잡동사니를 거의 다 팔아치웠다. 2년째 2차 시험을 보러 가기 직전 날 까지도 거래는 쉬지 않고 계속됐다. 그리고 시험이 끝난 그날부터는 당근 거래는 하지 않았다. 그 후로 거의 1년 동안 당근 마켓에 물건을 올리지 않은 것 같다.
나는 내가 했던 행동들이 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했던 것은 나에게 시험을 방해하는 귀신이 붙었다고 생각했다. 집중하지 못하도록 못된 귀신이 나에게 붙어 있는 줄로만 알았다. 며칠 전 읽었던 『정리의 힘』을 읽고 나서 깨달았다. 심리적으로 불안했던 것이다. 무언가를 정리해야 평온해 짐을 느꼈다. 불안한 마음을 정리로 해결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험이 끝난 후에는 마치 내가 언제 당근 거래를 열심히 했던 사람인가 생각이 들 정도로 난 더 이상 아무것도 팔지 않았다.
방 안을 정리하고자 마음을 먹은 것도 아마 심리적 불안이 적용했던 것이다. 최근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글도 쓰면서 맘먹은 대로 진행이 돼야 되는데 글쓰기가 갑자기 막혀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책 서평을 쓰기로 마음먹었는데 최근 일주일 동안 한 개도 못쓰고 있었다. 브런치 말고 블로그에 올린다. 책 읽는 것에만 집중해서 글은 못 쓰고 있는 것이다. 글 쓰기가 멀어지면서 불안한 마음에 정리가 우선적으로 떠올랐다. 주변 정리가 되면 생각이 모아지고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는 걸 알고 있다.
“정리는 매일매일 하는 것이 아니다. 정리는 축제와 같다. 반드시 정리는 1회로 끝내야 한다.”
곤도마리에 『정리의 힘』 중
20년 전 단 하루 버리기 축제로 인생이 달라졌다. 한 번에 버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집 안에 있는 모든 물건의 90%를 버린다는 상상을 해 보아라. 1000명 중 한 명도 있을까 말까 할 것이다. 나는 그 걸 해냈었다. 지금처럼 미니멀 라이프라는 개념도 없을 때였다. 곤도마리에의 말처럼 정리는 축제처럼 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무슨 효과인지는 본인이 실험해 보면 알 것이다. 사람으로 인한 상처로 불안한 마음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을 때, 트라우마로 인한 극심한 공포를 느낄 때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의 잡동사니를 싹 정리하는 것이다.
신기하리만치 다음 날부터 걱정하던 일은 생기지 않았고 모든 것이 평화로웠으며 불안한 마음은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리는 신기한 현상을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다. 만약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물론 “내일 당장 복권에 당첨되게 해 주세요” 같은 건 안된다. 마음의 불안이나 걱정스러운 일 또는 시험 합격 같은 기다리는 소식 등을 기대해 봐도 좋을 것이다.
정리를 하게 된 이유는 단지 환경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글을 쓰고 싶은데 자꾸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보는 시간을 나누어서 글을 쓰는데도 시간을 할애하고 싶었다. 이틀 전에 방 안을 정리하고 어제는 공부하고 있던 40여 권의 자격증 책도 모두 당근으로 팔았다. 자격증은 나중에 다시 도전할 계획이다. 그리고 오늘 정말 별거 아닌 남겨 둔 액자와 화병, 달력까지 그냥 다 버렸다.
이젠 진짜 남아 있는 게 하나도 없을 정도로 깔끔해졌다. 책장도 텅 비었고 서랍도 다 비었다. 컨테이너로 옮겨진 짐들도 반은 사라졌다. 책이 가장 많은 부피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일반 도서는 물론 몇 권 안되지만 책장에 남겨져 있다. 책은 주로 전자책을 이용한다.
그러고 나니 앉아서 쓰고 싶었던 책의 목차를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글을 쓰면서 목차를 써 볼 생각조차 못했는데 이제야 생각났다. 목차를 적어 놓고 보니 방대했던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하나 씩 나누어지면서 글쓰기의 가닥이 잡히기 시작했다. 목차가 중요한 건 알고 있었지만 목차의 개념이 잘 서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을 뿐이다.
브런치북 작가의 탄생 공모전에 도전해 볼 글을 쓰려고 준비 중이다. 아직 시작도 못했는데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부지런히 써야겠다는 계획으로 정리라는 게 하고 싶어 졌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