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는 사람, 채우는 사람
가끔 생각해보면 나 같은 사람만 있으면 누가 물건을 살까 의심스럽다. 당근으로 물건을 팔아보기만 했지 사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반짝거리는 새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중고는 잘 사지 않는다.
당근 마켓이라는 것을 처음 앱으로 접할 때 나는 웃음이 났다. 홍당무라는 닉네임을 오랫동안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이 앱을 처음 사용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제주 전용 어플인가도 했다. 내가 사는 구좌읍은 당근으로도 유명한 곳이기도 해서 내 생각대로만 풀이를 하고 있었다.
서울에 살 때는 중고나라를 많이 이용했었고 거래도 정말 많이 했었다. 일반적인 중고거래는 중고나라에서 거래했지만 캠핑 관련 용품은 초캠 장터가 최고였다. 그리고 카메라 거래할 때는 에스엘알 클럽이 거래가 가장 잘됐다. 카메라를 워낙 자주 바꿔서 어떤 사람은 내 카메라가 언제쯤 올라올 거라는 것도 미리 예상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물며 라이카카메라를 거래할 때는 홍당무님이 사용한 거라서 믿음이 간다며 돈부터 입금하고 택배를 기다려 준 사람도 있었다.
그런 나에게 당근 마켓은 생소했고 거래가 잘될까 의구심을 품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제주는 섬이다. 서울처럼 인구가 많지도 않고 교통도 매우 불편하다. 제주에서 중고나라에 물건을 올리면 그 지역에 사는 사람만 거래가 가능하기도 하지만 택배 거래는 믿지 못하는 거리가 돼버린다.
그래서 나도 당근 마켓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당근을 처음 혼자 이렇게 뜻풀이 했다. 당근이라는 말은 요즘 당연하다는 말과 동일시한다. 당연하지라는 게임에서 유래돼 당근이지로 변형이 됐다는데 당근이지라는 말은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당근 마켓도 당연하다는 의미가 있는 거래 마켓으로 혼자 상상했었다.
당근 마켓을 왜 당근이라 했을까. 안물 안궁이었다. 그러다 당근을 이용한 지 몇 년이 지나 어느 날 슬로건처럼 지나간 문장을 하나 발견했다. ‘당신의 근처에서 만나요’ 와우, 그런 깊은 뜻이 있다는 걸 거래를 몇 년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내 관심사에서는 궁금한걸 못 참는 성격인데 관심 밖의 일은 궁금해도 찾아보질 않는다.
제주에서 당근 거래가 왜 잘되는지를 이야기하려다가 당근 마켓의 유래를 이야기하는 데 길어졌다. 제주에는 집집마다 1톤 트럭이 한 대씩 있다. 우리 집에는 그 트럭을 대신할 만한 차가 있다.
제주는 섬이다. 풍수로 이야기하자면 섬이라는 곳은 특성상 이동이 많은 곳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다. 뿐만 아니라 만나고 헤어짐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곳이다. 사람만 이동하는 게 아니다 물건들도 여기저기 많이 이동한다. 그래서 이동의 수단으로 집집마다 트럭이 필요한 것이다.
시골에 살면 자가로 해결하며 살아야 할 것들이 많이 생긴다. 물건이 고장 나거나 집 안에 고칠 것이 생기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고치는 수리공들은 시내에 살며 시골에 한 번 오려면 날짜도 따로 잡아야 될 뿐 아니라 이동 비만 무조건 3만 원에서 5만 원을 내줘야 한다.
그러니 스스로 고치는 법을 익히지 않으면 매번 사람을 부르는 데에 한계를 느낀다. 그렇게 살다 보면 남자들은 직접 집을 짓게 되는 수준까지 경력이 생긴다. 바로 우리 남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목공 한다고 침대 만들고 옷장까지 짜더니 이젠 집을 짓겠다고 한다.
제주는 관광도시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골집은 그냥 있는 집이 아니라 민박집이나 게스트하우스다. 아무것도 안 하는 집은 해녀가 살고 있는 집일 것이다. 숙박과 함께 많은 것이 카페다. 식당보다도 카페가 훨씬 많다.
월정리 해변가만 가봐도 해 얀 도로에는 대부분이 카페로 줄지어져 있다. 카페가 수없이 생기기도 하지만 수없이 망하기도 잘한다. 벌써 내가 오픈했다 닫은 카페만 해도 세 번이나 되니 그만하면 당근 거래가 왜 잘되는지 이유를 알 것이다.
민박집이나 카페를 하게 되면 자잘한 비품이나 용품들이 많이 필요하다. 이것들이 대부분 당근으로 거래가 되고 있다. 물건 하나를 나르려면 일반 승용차로는 가져오기가 불편하다. 파는 사람이야 사는 사람이 와서 가져가면 그만이지만 물건을 사러가는 입장에서는 반드시 큰 차가 필요하다. 없으면 용달이라도 불러야 한다.
그렇게 용달을 몇 번 부르고 나면 차에 욕심을 낸다. 그냥 차를 한대 사는 게 낫지 하면서 말이다. 차를 한대 더 사는 건 또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아예 차를 1톤 트럭으로 바꾸는 경우도 많다. 주변을 보면 대부분 차는 두 대를 가지고 있다. 중고차 1톤 트럭은 중고차 거래 1순위에 들어간다. 제주에서 가장 선호하는 차가 1톤 트럭이기 때문에 팔고자 하는 사람도 사고자 하는 사람도 많아서 가격이 비싸게 형성되긴 하지만 당근 거래로 싸고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매력을 찾을 수도 있다.
트럭은 남자가 대부분 몰 것 같지만 제주에서는 여자들이 트럭을 잘 몰고 다닌다. 요즘에는 오토로도 많이 나오기 때문에 스틱을 할 줄 몰라도 운전하기 편하다. 트럭으로 여기저기 다니면서 물건을 쓸어 담는 사람도 있다. 골동품 모으는 사람도 있고 앤틱가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몇 개씩 싣고 가기도 한다. 카페를 하려고 하는 사람은 카페용품을 통째로 싣고 간다.
트럭만 있으면 제주는 어디든 갈 수 있기 때문에 당근 거래가 잘 되는 이유 중 하나이다. 특히나 무겁고 부피가 큰 것들도 거래가 잘되는 것도 그 이유다. 에어컨이며 대형 냉장고들도 대부분 당일에 모두 예약이 된다. 금액만 더 저렴하게 올려놓는 다면 서로 달라고 아우성 댄다.
2년 동안 당근 거래에 재미가 붙어서 2년 연속 올해의 당근 왕이라는 상도 받았다. 숙소를 많이 운영한 덕에 가전 가구를 많이 팔았던 덕분이다. 안 팔릴 것 같은 굴러다니는 소품도 다 팔린다. 어디든 가서 용도에 맞게 쓰인다. 우리 집에서만 필요 없을 뿐이지. 원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입금만 하고 찾으러 오지 않은 물건도 아직 있다. 칼 세트 세 개에 9000원에 팔았는데 바로 그것이다. 멀어서 분명 못 오고 있는 것 같다. 버리기도 애매하고 아직도 서랍에 보관되어 있다.
나중에 중고로 거래한 품목들을 정리해서 책 한 권을 만들어 볼까도 생각 중이다. 중고나라에서부터 찾아보면 수 백개는 될 것 같다. 갑자기 그것들을 다 찾아서 수집해 보려니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에서 제주로 올 때도 많은 걸 정리하고 왔다. 주로 명품 백들이다. 제주에선 진짜 필요 없는 물건이다. 제주는 정장도 필요 없다. 제주스런 옷 몇 개만 있으면 된다. 꼭 제주스럽지 않아도 되지만 살다 보면 어느새 차림새는 제주스러워져 있다.
그렇게 정리를 하고 사는 데도 물건이 계속 쌓인다는 건 잠재의식 속에 무언가를 채워야 한다고 의식이 박혀 있어서다. 이제는 비우기 전에 물건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하는 습관을 들이는 중이다. 가장 최근에 구매한 목록은 책과 노트 펜이다.
제주에서 숙소와 카페를 운영하면서 생긴 물건들은 어찌 보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써 어쩔 수 없이 사야 되는 물건이었다. 그런 물건을 2년간 팔았을 뿐 내 소유의 것을 정리한 건 몇 개 없다. 지금도 집에 가면 아직 팔아야 할 물건들이 내 눈에 포착된다. 지금은 당근 거래할 마음이 안 생긴다. 당근 마켓 거래는 주로 근심이 많거나 걱정을 덜어내고 싶을 때 가장 많이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