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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아 Nov 10. 2023

욕심 내려놓기

선택은 끝이 없다

나는 선택장애가 있다.

선택장애가 있다,라는 명제는 사실 수많은 갈래로 나뉠 것이라 생각한다.

그 장애를 이끄는 '이유'가 다 다를 테니까.

그 중 나에게 해당되는 그 이유는 너무 생각이 많은 탓, 이다.


선택할 때 참조할 수 있는 보기가 두 개뿐이어도 힘들어하는 나란 사람에게 인생은 결코 녹록지 않다.

도처에 선택할 것 투성이기 때문인데 그 정점은 물론, 결혼식이었다.

선택장애가 없는 사람조차 장애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세세한 것부터 큰돈이 걸려있어 손을 덜덜 떨게 만드는 것까지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결혼식을 끝내고 한동안 내 삶은, 소소한 선택이 이어지지만 그렇게까지 수많은 보기들 앞에 직면하는 때는 없었는데 출산을 앞두고 준비를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19개월 차 아이가 있는 지금까지.

그야말로 '수많은' 선택 앞에 내던져진 느낌이다.


그리고 최근, 아이의 두 번째 입퇴원을 겪고 나니 더 심해진 건가 싶을 정도로 내 머릿속에 생각들이 오간다.


가령 이런 것이다.

오늘 점심에 볼일을 보러 잠시 바깥에 나서자마자 숨이 확 막혀왔다.

아, 숨이 막힐 정도로 추위가 온 것을 보니 진짜 겨울이 왔구나. 몇 도지, 한 자리밖에 안 되는구나.

이런 생각을 잠시 하고 바쁘게 볼일을 보고 들어왔는데, 생각해 보니 아이가 심심해할 것 같아서 아파트 내에 있는 공동육아센터라도 예약해서 다녀오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제는 예약이 마감되어 자리가 없었지만 혹시? 하고 들어가 보니 마침 한 자리 남아있어서 오예! 하며 예약을 서둘러 진행하고는 그때부터 나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아파트 내에 있지만 외부를 걸어야 하는 길이 존재하고, 그 길을 걷게 하기 위해서는 단단히 잘 입혀야 할 텐데, 신랑에게 일임해야 하는 상황인지라 잘할 수 있으려나 싶고. 며칠 전 한 시간 정도 저녁에 바깥활동을 한 이후에 바로 다음날 아침부터 콧물이 있는 걸 보니 아차 싶었는데 오늘은 그날보다도 더 추운데.. 괜찮으려나 싶고.

결국 신랑이 잘하겠노라 하여 미심쩍은 마음을 슬그머니 거두고 취소하려던 예약도 그냥 살려두었다.


이런 선택은 너무나도 부지기수여서, 일일이 개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자주 있다고 하여 선택이 빨라지진 않는다, 아직은. 첫 아이라서 그럴까, 모든 것이 처음이라서 그럴 수밖에 없는 걸까.

그럴 수도 있지만 내 성격 탓이 크리라. 거기에 하나 덧붙인다면 욕심이 깃들여서겠고.


아이들 동요 중에서 '피노키오'라는 동요가 있다.


꼭두각시 인형 피노키오
나는 네가 좋구나
파란 머리 천사 만날 때는
나도 데려가 주렴
피아노 치고 미술도 하고
영어도 하면 바쁜데
너는 언제나 공부를 하니


말썽쟁이 피노키오야
우리 아빠 꿈속에 오늘 밤에 나타나
내 얘기 좀 잘해 줄 수 없겠니
먹고 싶은 것이랑 놀고 싶은 것이랑
모두 모두 할 수 있게 해 줄래


아이에게 동요를 틀어주다가 듣게 된 이 동요에서 느껴지는 '아이들'의 간절한 마음에 마음이 쓰였었다.

선택이 아무리 힘들다 해도 그 선택의 주체, 대상이 '나'일 때는 그나마 괜찮은 것이, 선택의 옳고 그름을 온전히 감당하는 것도 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내가 하는 선택들의 대부분은 '대신'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신'에는 늘 '욕심'이 깃든다.


오늘 같은 경우에도, 아이는 사실 집에서 하루종일 있어도 괜찮을 지도 모른다. 밖에 나가는 걸 워낙 좋아하는 아이지만 집에서도 충분히 잘 놀 수 있기 때문에. 하지만 내 마음은 며칠 전에 데려나갔을 때 저 센터를 가고 싶어서 자꾸 손가락질하던 아이가 떠올랐고, 아이가 심심해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데려가고 싶은 '욕심' 이 드는 것이다.


사실 지난 5월 아이가 크게 아프기 직전에, 주말에 이틀 연속 바깥활동을 하며 아이입장에서는 조금 무리를 하였고, 그 이후에 그렇게 아프게 된 것 같다는 반성을 스스로 하고 난 이후엔 난 계속 내 안의 욕심, 과 아이를 진짜 위한 길,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그 안에서 선택장애까지 깃들여 있으니 사실 일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뭔가를 계속 고민하고 있는 듯도 싶은 요즘이다. 그래서 그럴까. 늘 마음이 분주하다.


비단 나만 이럴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많은 부모들이 아이가 어리든 크든 비슷할 것이다.

온전히 독립하여 스스로 살아가는 개체가 되기 전까지는 대신 결정해 주고 함께 고민해야 하는 것들이 많기에.


지금은 비교적 단순한 욕구만 지닌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내 몫의 고민이 더 많다면, 아이가 자라나면서는 조금 분담이 되긴 하겠고, 그렇게 점차 아이를 떠나보내는 과정이 되겠지만.


어릴 때 내가 바라봤던 어른들은 큰 고민도 없어 보였고, 그저 묵묵히 삶을 잘 살아가는 것으로만 보였는데, 이제 내가 겪어나가는 하루하루 속에서 나는 어릴 때 바라보았던 어른들의 얼굴을 그들의 태도와 모습을 다시 돌이켜본다. 그것은 '묵묵함'이 아닌, 복합적으로 감당하는 수많은 것들 속에서 올곧이 서 있고자 했던 '단단함'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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