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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두 번째, 다 가치 있는 일


한국에서 태어나 쭉 살았던 나는 영국 대학교에 진학했다.

난 그 시기가 너무 좋았다.


고생도 했지만 정말 많이 배웠다, 영어 배운 게 최고의 소득이었냐고? 아니다.

이 세상, 그리고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배운 것, 그것도 생각이 말랑말랑한 20대에 경험한 게 너무 좋았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 졸업 후 한국에 돌아왔을 때, 바로 한국 사회 특유의 조급하고, 정해진 길을 모두가 따라 걸어야 하는 분위기에 젖어 들었다.


그런 사회에서 첫 취업을 하고 3년이 지났다.

나름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입사와 퇴사를 경험하고, 처음으로 합격한 영화사를 고사한 후 영국 여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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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프로 구직러가 돼서 돌아온 곳의 느낌은 아주 달랐다.

일단 비대면으로 잡힌 면접 두 개를 숙소에서 보고 오랜만에 대학교 친구들을 만나서 밥 먹고 맥주를 퍼마셨다.


그동안의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다가, 나의 커리어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잘 안돼서 일단 아무 데나 가서 경력 쌓고 그 이후에 생각해 보려고


친구들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무 데나? 그냥 어디서 일하든지 다 똑같이 가치 있는 일 아냐?


창피했다.

나는 속으로 가치 있고 없는 것을 너무 쉽게 재단했다.


내가 원하는 걸 하지 않으면 시간을 시궁창에 버리는 느낌이라는 과격한 생각도 했다.

근데 일은 단순하게 노동력을 제공하고 돈을 버는 행위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종류의 노동은 다 가치가 있어 진다.


나의 아집과 한국 사회의 남의 인생, 커리어를 쉽게 평가하는 문화에 너무 깊게 빠졌구나.

친구들은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기다려보라고 했다.

사실 나보다 몇살 어리지만 이런 면에서는 훨씬 어른이다.


2주 여행을 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또 열심히 서류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제 그놈의 영화사만 고집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데라면 일단 해보자, 친구들이 말해준 것처럼.

그렇게 2022년 장마를 지나 한여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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