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처음으로 합격해 본 영화사 A는 급한 상황이었다.
최종 합격 소식을 전하면서 입사 여부를 물었고, 올 거라면 최대한 빨리 와달라고 했다.
당장 2 주 후에, 칸 영화제 출장이 잡혀있다고 했다, 그래서 비행기, 호텔 등 예약을 위해 빠른 결정을 부탁했다.
와, 한국 영화 해외 배급 업무를 위해 칸 영화제에 간다고? - 이건 내가 딱 커리어에서 원했던 삶이다, X나 멋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간사하게도 나는 내 꿈 앞에서 다른 현실적인 것들을 따지기 시작했다.
N사를 나오기 전 몇 명의 선배들로부터 조언을 구한 적이 있었고, 그들 중 한 분이 해준 이 말이 나의 선택을 어렵게 했다.
네가 꿈이 있고 그런 건 너무 좋은데, 경제인으로서 돈, 복지 같은 것도 엄청 중요해. 이미 거쳐온 회사들이 규모가 있는 데인데 왜 스스로 작고 불안정한 데로 가려고 하는 거야? - 한번 내려가면 다시 올라오기 진짜 힘들어
그의 말에는 틀린 곳이 없었다, 그러면서 '직장인'으로써 영화 콘텐츠 분야의 조금 더 대우를 잘해줄 수 있는 규모 있는 회사로 가라고 조언했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일할 수 있다면서.
꿈이라는 단어가 다른 현실적인 것들과 뒤섞였을 때 얼마나 연약할 수 있는지 확실하게 느껴졌다.
약속했던 날이 되고, 나는 A사 인사팀에 전화해서 이렇게 말했다.
다른 곳에 붙어서요... 입사하지 않겠습니다, 죄송해요
물론, 다른 회사에 합격하지 않았지만 꿈을 저버리는 내가 할 수 있는 제일 덜 비참한 거짓말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N사와의 계약도 종료, 완전한 FA로 다시 돌아왔다.
3년간 이어지던 코로나도 팬데믹도 사그라드는 분위기라, 기분 전환을 위해 오랜만에 대학 친구들도 만날 겸 영국과 항상 가보고 싶었던 포르투갈까지 들리는 2주 여행 티켓를 끊었다.
다시 0부터 시작하는 입장이 됐지만, 내공이나 경험은 첫 구직을 하던 때에 비하면 많이 쌓였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그 회사 선배의 말처럼, 지금 당장 영화사 아니면 큰일 나는 사람처럼 조급하게 굴지 말고 좀 더 넓게 열어 넣고 구직을 해보자는 기조를 세웠다.
내가 할 수 있는 곳에 지원을 폭넓게 하자 서류 합격률이 크게 올라갔다.
덴마크 문구 회사 L 사와, 프랑스 명품 패션 사 D사의 1차 비대면 면접이 잡혔다.
그 두 개는 런던 에어비앤비에서 보기로 하고 일단 비행기를 탔다.
만 29세 프로 구직러는 확실히 3년 전보다는 덜 불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