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왜 내가 영화 비즈니스에 꿈을 품었는지 이야기해 보겠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영화를 엄청 좋아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영화관에 가는 행위를 좋아했다.
10살 남짓한 꼬맹이가 혼자 버스를 타고 가서, 그 당시 학생 요금 6,000원을 내고 티켓을 끊은 뒤, 어두컴컴한 상영관에 들어가 그렇게 영화를 봤다.
마치 '나니아 연대기'에서 옷장을 열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것처럼, 현실에서 벗어나 2시간 정도 매번 다른 경험을 하는 게 그렇게 좋았다.
특히 자막 없이 정서, 분위기, 뉘앙스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한국 영화에 빠졌다(이건 지금도 그렇다).
그런 유년기를 보내고 20살에 1년간 갭이어를 메가박스 알바생으로 보내며 공짜 영화를 200편 정도 보고 나니, ‘아, 나는 이 일을 꼭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사람들은 본인이 뭘 좋아하는지 평생 가도 못 찾는 경우도 있다던데 나는 그 나이에 찾았다는 쾌감도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그런 연유로 대학교를 졸업하고 수많은 영화사의 해외 배급 직무를 지원했으나, 2~3년간 아무 연락도 받지 못한 상태였던 나에게 A사 면접 제의 연락이 온 것이다.
마침 나이키 계약이 끝날 때쯤,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1차 면접 날, 논현동 사옥으로 갔다. 그곳은 영화, 엔터사들이 몰려 있는 동네다.
이미 수많은 면접을 본 프로 구직러도 원하던 분야의 기회가 오니 무지하게 떨렸다.
다대다 면접이었고, 나보다 훨씬 앳되어 보이는 두 지원자와 함께 들어갔다.
신입 포지션이었으나, 이미 2년 정도 경력이 있던 나는 경력직 신입으로서 그들보다는 좀 더 성숙한 답변을 했고, 면접관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1차 통과. 최종 면접은 대표님들과 진행된다고 했다.
그들은 이미 영화계에서 짬이 엄청난 사람들이었고, 어릴 적부터 봐 왔던 많은 영화들의 엔딩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던 그런 베테랑들이었다 (당연히 나는 그들을 알고 있었고, 존경하고 있었다).
그들의 첫 질문은 이거였다.
성민 님은 경력도 이미 있고, 큰 회사만 거쳤는데 왜 굳이 서른 다 돼서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하시는 거예요?
면접 내내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싶은지 열심히 설명했고, 그들은 이 바닥이 얼마나 힘든지, 업무 강도와 경제적 보상 등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본인들의 경험에 빗대어 열심히 나를 말리는(?) 느낌으로 면접이 흘러갔다.
이상한 면접이 끝났고, 그들이 진심으로 내 인생과 커리어를 걱정해 준 것이 고마웠다.
2일 후, 최종 합격 문자를 받았다.
사람이 간사한 게, 10년 가까이 꿈꿔왔던 길의 시작 앞에 서 있었음에도 두 대표님들이 해준 현실적인 충고가 마음에 걸렸다.
나도 이제 서른인데...라고 대입하면 그들의 말이 다 맞았고, 나는 하던 대로 글로벌 대기업을 넘나들며 경제적·사회적으로 안전한 선택을 하는 게 합리적으로 보였다.
하루만 고민해 보겠다고 했다.
안성민, 이 간사한 새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