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022년 2월, 서로에게 필요 없음

매니저가 1on1을 하자고 했다.


나는 N사에서 정규직이 될 확률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주니어급 계약직들에 모든 걸 바쳐서 어필하면 좋은 기회가 올 수도 있다는 식의 희망 고문하는 사람들이 정말 싫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걸 사람들은 분명 느꼈을 것이고, 특히 나의 매니저가 몰랐을 리가 없다.


매니저는 나에게 1년간 일하면서 어땠냐고 물었다.

뭐라고 대답했는지 잘기억이 안 나는 걸 보면 형식적인 대답을 했던 것 같다.


그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였는데, 빙빙 돌아서 갔다.

이러쿵저러쿵 몇번의 의미 없는 말들이 오갔고 드디어 그가 오늘 미팅의 아젠다를 본격적으로 꺼냈다.



여기서 너의 자리가 없는 것 같아, 1년 더 계약을 연장하는 건 의미가 없지 않을까?


왜 그런 느낌 있지 않나, 나도 별로 관심 없는 사람에게 막상 그 사람도 내가 별로라는 말을 들으면 은근히 기분 나쁜 거.

딱 그런 느낌이었다, 매니저에게 오피셜하게 이곳에서 내가 필요 없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는 나를 인터뷰 때부터 이상하게(?) 좋게 보고 뽑아준 사람이다, 기대가 높았던 만큼 내가, 특히 나의 염세적이 태도에 실망했을 수도 있다.

불편한 말을 하는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런 일을 해야만 하는 디렉터도 못할 짓이다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거기서 예상치 못한 말이 내 입에서 튀어 나왔다.




한 2~3개월 정도만 계약 연장해 주시면 안돼요? 저도 다음 일자리를 구해야 하니까요


매니저는 인사팀에 물어보겠다고 했다.

뭐 하고 싶은 일이 있냐고 물었고, 나는 영화 쪽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그는 일전에 술자리에서 영화 얘기 나오니까 네 눈빛이 반짝거리는 것을 봤다고 응원한다고 했다.

그리고, 숫자 보는 영업 직무 보다 크리에이티브한 직무가 더 맞을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런 말들은 나에게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물론 그도 그냥 의례적으로 한 말일 것이다.


기분이 더러웠지만 일단 여기랑은 끝, 프로 구직러인 나는 이미 다음 스텝을 생각하고 있었다.

다음엔 꼭 내가 가고 싶은 쪽으로 가야지, 그러면 열정, 소속감 뭐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와의 미팅이 끝나고 몇 주 후 한 영화사 공고가 났고 (영화 제작, 배급사의 공고는 거의 올라오지 않는다), 나는 바로 지원했다.

그리고 며칠 후 면접을 보자는 연락이 왔다.


크지는 않아도 영화판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A사.

영화계로부터 수많은 서류탈락만을 경험했던 나는 오랜만에 설렜다.


3월 말쯤 1차 면접이 잡혔다.

철저하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2022년 1월, 눈치 게임을 하다가 체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