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N사의 30~40%를 차지하는 계약직들(나를 포함해 보통 주니어 급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뉘었다.
첫 번째는 딱 경력만 쌓으러 온 사람들.
두 번째는 여기가 꿈의 회사라 계약직임에도 기꺼이 입사한 사람들.
두 번째 케이스들은 정규직 누군가가 퇴사하기만을 바라면서, 언제 올지 모를 기회를 잡기 위해서 자신들을 어필하기에 바빴다.
나는 어느 노선을 타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영화사에 가고 싶었으나 큰 기업 & 브랜드의 자부심과 좋은 대우를 받으며 회사 생활하는 사람들의 삶을 간접 체험하니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욕망도 조금 생겼다 - 역시 사람은 주변 상황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다!
그놈의 어필이란 어떻게 하는 걸까?
기본적으로 인사 잘하고, 업무 겹치면 적극적으로 임하고 뭐 이런 건 당연하고, 안 해도 되는 걸 만들어서 해서 눈에 띄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같은 팀에 한 여자분이 있었다.
좋은 대학 출신에, 계약직을 꽤 오래 했으며 이곳에 남고자 하는 열망도 강한 그런 사람.
그녀는 같은 팀의 다른 계약직 2명을 라이벌로 봤을 거다 (나도 그녀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다, 성향이 좀 안 맞아서...)
그녀는 나를 포함한 다른 주니어들 몰래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과 N사의 전략' 뭐 이런 내용으로 팀 내 시니어들만 모아서 발표했다.
며칠 후에 그것을 알게 된 나는 솔직히 좀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해? 발표하는 거 우리도 좀 듣게 해줄 수 있잖아? X나 짜치네.
당연히 본인의 인생이고 커리어이므로 정답은 없다.
나 또한 무지하게 가고 싶었던 회사에 계약직으로 입사했으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한 개인이 자발적으로 그렇게 하고 싶게 만드는 브랜드의 힘이 무섭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인사팀이 문화를 잘 만들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 회사에 속해 있는 이상, 우리는 모두 그들의 체스 말이구나.
어느 정도 업무에 적응해서 괜찮아진 줄 알았지만, 새해가 되어 보이지 않는 우리들만의 경쟁이 빡세지면서 회사만 가면 답답하고, 회사 사람들과 밥 먹으면 체하는 느낌이 다시 들기 시작했다.
어떤 분들은 대놓고 물어봤다.
성민 님은 왜 다른 팀에 어필 안해요?
나는 이렇게 되묻고 싶었다 - 정규직이 퇴사를 안 하면 자리가 안 생기는 구조인데 왜 꼭 모두가 그렇게 해야 해요? 지극히 낮은 확률에 올인해야 하나요?
나는 위에 말했던 두 번째 무리에서 이탈하는 것으로 결심했다.
경력만 잘 쌓고 내가 하고 싶은 쪽으로 이직하는 걸로.
지원하고 면접 보는 건 내 전공 분야니까, 명색이 프로 구직러 아닌가.
그러던 어느 날, 매니저에게 연락이 왔다 (나를 좋게 보고 뽑아 주신 바로 그분).
성민 님, 3월 초가 계약만료죠? 1:1 미팅 좀 해요
그는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