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커리어 내내 외국계 기업만 다녔다.
일부로 그곳들만 고집해 지원한 건 아니고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H사와 바로 직전이었던 N사의 공통점을 말해보자면 바로 이거다 - 불안정한 고용.
왜 그런 이미지 있지 않나, 같은 정규직 회사원이라도 한국 기업은 그래도 어떻게든 품고 가지만 외국기업들은 피도 눈물도 없이 필요 없어지면 잘라버린다는.
경험해 보니 정말 사실이었다.
H사에서 근무 1년도 안 됐을 무렵, 큰 구조 조정이 있었다.
팀의 구조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리포팅 라인도 조정하는 꽤 대공사.
나는 혼란스러웠지만 그들에겐 점심 메뉴 정하는 것처럼 아무것도 아닌 일인 듯했다.
우리 이커머스 팀 매니저는 팀원들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이번 구조조정으로 우리 팀도 영향을 받게 됐어, 팀내 포지션들이 오픈될 거니까 하고 싶은 것 있으면 지원해, 다른 팀을 가도 좋고!
처음에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친한 사람에게 물어보니, 정규직이라도 우리의 포지션들이 open 될 것이고, 다시 경쟁을 통해서 그 자리를 지키든지, 다른 팀을 가든지 여차하면 회사를 나가라는 말이란다.
뭐 이렇게 무책임한 말이 있나, 우리 매니저가 맞는 건가?
이럴 거면 정규직을 왜 하는지, 어이가 없었다.
대충 세어보니 우리 팀의 숫자보다 새로 오픈된 포지션이 2개가 적었다.
그 뜻은 최소 2명은 다른 팀을 가던지, 회사를 나가든지 해야 한다는 뜻.
팀장은 우리에게 한 달 정도 생각할 시간을 준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설마 쫓겨나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나의 사수는 이미 4년 정도 회사에 있었던 분이셨다.
그녀는 회사에 다니면서 이런 극단적인 변화가 너무 잦아 신물이 난다고 했다.
'왠지 이 사람은 퇴사할 것 같은데' - 이런 쎄함이 느껴졌다.
다른 팀의 친한 동료는 우리 팀에 지원하고 싶다고 했다.
이건 뭐 대놓고 밥그릇을 뺏겠다는 것 아닌가.
그래도 여기 문화는 이럴 때 의연하게 대하는 것이었다, 나름 쿨 가이 처럼 설명해줬다.
이 밖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물어봤다.
넌 어떻게 할거야?
마치 대입을 앞둔 수험생들처럼 말이다.
나는 어떻게 거취를 정할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 당시 나의 직무보다 한단계 위 포지션이 새롭게 생겨서 오픈되었다.
Home & Sports 컨셉의 Lead 포지션.
업무의 범위가 넓어지긴 하지만, 세일즈부터 이커머스 오퍼레이션까지 온전히 한 사람이 그 컨셉을 다 맡는 거다.
입사한 지 1년도 안 돼서 승진 비스무리한 걸 해볼 수 있는 기회.
그리고 내가 입사해서 가장 오랜 시간 했던 home 컨셉과 스포츠를 좋아하는 내가 관심 있어 하는 sports 컨셉 아닌가.
여기에 지원해야겠다고 맘먹었다.
정규직에게 다시 면접을 보라는 게 어이없지만 나한테 유리하게 작용하면 마냥 욕할 수만은 없는 게 세상의 섭리다.
이렇게 2023년의 무더운 7,8월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