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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야 Nov 23. 2022

꼬수운 아로마

 조이를 데리고 친정에 처음 간 날은 2월 즈음. 시골집 주변 논밭에는 아직 두꺼운 눈 이불이 남아있었다.

 엄마는 조이를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리면서 웃었다. 이걸 어떻게 키우려고 데려왔냐고 하면서도 몸을 숙여 조이가 엄마의 냄새를 맡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내 막냇동생 제리(진도, 풍산 믹스. 약 20kg 여아.)도 조이에게 앞 발로 장난을 걸며 새 가족을 알아봤다. 제리에게 조카가 생긴 셈이다.

 첫 만남에서 조이는 가족들을 경계하면서 머리를 바짝 아래로 낮췄다. 꼬리도, 귀도 아래로 축 늘어져 눈치를 보는 것이 여차하면 앞산으로 도망갈 눈치였다. 조이는 그때까진 사람이란 존재 자체를 무서워했다. 사람에게 다가가는 살가운 강아지는 아니었다. 

 그런 지조(?) 있는 모습을 보고는 '나를 많이 닮은걸? 어린 녀석이 대견하기도 하지!'라며 녀석을 번쩍 들어안고 쓰다듬었다.

 엄마는 아직 찬 겨울바람을 뒤로하고 먼 길 온 딸과 강아지를 집 안으로 들였다. 목욕할 때를 빼곤 집 안에 들이지 않는 제리도 같이. 두 녀석은 널찍한 시골집 거실을 헤집으며 뒹굴고 뒹굴고, 뒹굴었다. 잡고 잡히고 밀고 밀치고. 엄마와 딸의 이야기는 꺼낼 새도 없이 개들 장난에 눈길도 마음도 뺏기고 말았다.

 보호소 공고문에 푸들 믹스라고 되어있어서 조이가 푸들 믹스인 줄 알고 데려왔지만, 키우다 보니 삽살 믹스였다. 털갈이를 거하게 하는 중이었는데 겨울을 지낸 배내털이 풀썩풀썩 빠져나왔다. 나뭇빛 거실 바닥이 하얀 터래기들로 포근해져 갔다.

 한참 몸을 부딪긴 두 녀석이 잠잠해졌다. 뼈다귀 모양 개껌을 양손으로 꼭 붙들고 엎드려 오직 혀와 간지러운 이빨의 감각에만 집중한다. 이로써 조이는 친정 식구들에게 신고식을 마쳤다. 신나게 이모(제리)와 한바탕 놀고 산발이 된 털 뭉치가 내 얼굴을 빤히 본다. 그러더니 갑자기 기마자세를 취한다. 악! 소리가 나오는 순간. 이미 틀렸다. 신나게 놀더니 시원하게 싼다. 바닥에 깔린 극세사 이불 담요가 젖어들어간다. 초보 보호자는 배변패드를 미리 까는 것을 잊었다. 여기 빨래 추가요!

 '쉬야 한 담요'는 빨고 말려 결국 조이 전용 담요가 되었다. 임시로 샀던 방석은 날로 커가는 녀석의 몸을 뉘기엔 조금 작아졌는데 잘 됐다. 극세사의 부들부들하고 포근한 느낌이 좋은가 보다. 갖고 싶어서 쉬야를 했나?

 조이는 아직도 그 이불 담요를 좋아한다. 물어뜯고 비비고 뒤집어쓴다. 이불 위를 빙글빙글 돌다 흙을 파헤치듯 발로 자리를 고르고는 동그랗게 말아 엎드린다. 나와 남편은 포옥 감싸주는 맛이 일품인 우리집 매트리스를 정말 좋아하는데, 침대를 버리고 거실에 이불을 깐다. 매일 밤 조이 이불 옆에 이불을 깐다. 조이의 포근한 털을 만지며, '꼬수운 아로마'를 맡으며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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