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아빠이야기 9

태현, 현자

by 넛츠피

두 부부가 살게 된 집은 그저 세 식구 눕고 생활할 정도의 방한칸에 문 달린 부엌하나가 있었다. 겨울만 되면 연탄아궁이가 꺼질까 노심초사했고, 1987년 봄엔 봄비 소식을 집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통해 알았다. 자다가 봉변을 맞았던 그날 태현은 새는 비를 막느라, 현자는 우는 동훈이를 안고 이리저리 빗물을 피하느라 밤을 새웠다.

스물아홉이 된 태현은 군산 부둣가에서 운송할 물건을 나르는 용역일을 했다. 군산항은 당시 몹시 고전 중이었다. 나라에서는 언젠가부터인지 경부라인, 경인라인의 개발에만 집중되었고, 상대적으로 교통이 열악했던 군산항은 계속해서 쪼그라들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군산항으로 들어오던 물건들도 부산항과 인천항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안 그래도 상대적으로 열세했던 군산항의 입지가 점점 더 줄어들고 있었다. 약혼한 다음 해에 첫아이 동훈이가 태어나 입은 하나 늘어 먹는 양은 계속 늘어만 가는데, 눈에 띄게 일나 가는 날이 줄어드니 태현은 매일 처자식을 어떻게 먹여 살릴까 온통 그 걱정뿐이었다. 잠들기 전 한숨 쉬는 날이 많아져갔다.


동훈이가 두 돌이 가까워지자 현자도 조바심이 났다 꺼낼까 말까 고민했지만 쉽게 속내를 드러내지는 못했다.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알았기에 더더욱 말을 내뱉기가 어려웠다. 눈치 빠른 태현도 현자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하루종일 동네를 뛰어다녀 업어가도 모를 만큼 꿈나라로 가버린 동훈이를 한쪽에 눕히고 결판을 내려는 듯 현자는 술상을 봤왔다. 아껴둔 돼지고기를 구워 소주 한잔을 내어주고는 결심이라도 한 듯 현자도 본인잔에 한잔 따라 입에 털어 넣었다. 소주가 목구멍으로 넘어가자마자 현자는 말했다. “동훈이 아빠, 그러지 말고 서울로 가는 게 어떤지 생각해 보는 거 어때요? “ 듣고 있던 태현의 표정이 나쁘지 않자 말을 계속했다. ”나랑 같이 올라가서 열심히만 허면 우리 세 식구 밥은 안 굶겠지! 그럴 일은 없겠지! 서울로 가장 께요.”


언젠가부터 얼마 있지도 않은 것들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했던 태현에게 서울상경은 이곳 군산에 만들어둔 터전을 한번 포기하고 올라가야 하는 큰 결심이 필요한 것이었다. 선뜻 나서지를 못했는데 아내가 단판을 짓자는 듯 달려드니 당황은 했으면서도 맞는 말이라 아무 말도 못 하고 골똘히 생각했다.

“여기 사글세도 세 달 후면 끝나고, 모아둔 돈이랑 보테가 서울 올라가 집구 해서 뭐라도 해보장 께요. “ 태현은 더 큰 것을 지켜야 하니 결단을 내려야 했다.


들리는 이야기론 서울 인구가 천만명 가깝게 살고있다고 했다. 비좁은 땅에 얼마나 사람이 많은지 치이는 게 사람이요 눈뜨고 코베이는 곳이 서울이라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다녀야 한다고 주워듣기는 했었는데 ….. 막막한건 이곳이나 서울이나 매한가지였다. 특별한 기술도 줄도 빽도 없었던 태현은 점점 이곳 군산에서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지금 하고 있는 물건을 나르는 일도 젊을 때나 가능하겠고, 군산 경제가 눈에 띄게 나빠지고 있다 보니 도전이 필요했다.


말없이 소주를 삼키던 태현이 대답했다. “그려, 서울로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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