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자 마지막 대화를 나누다.
아이고! 2번 버스는 언제 와요?
버스정류장에서 우연히 만난 그분과의 첫 대화였다. 아쉽게도 소개팅같은 그런 운명같은 만남이야기는 아니다. 처음이자 마지막 대화지만, 정류장에서 낯선 이와 첫대화가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참 오랜만인 그런 만남. 그래서 이 만남을 글로, 추억으로 남기고 싶다. 퇴근 후 피곤함에 잘까 싶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겠다 싶었기에 무작정 버스를 타고 헬스장에 갔다. 폭식 이후 가장 좋아하는 운동에서 한동안 폭식유발의 트리거로 전락했기 때문에 애증의 관계였다. 한동안 내려놓고나니 이제야 조금씩 할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나 자신과의 운동을 마치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쏟아지는 비를구경하고 있었다. 언제 오려나 11번 버스!
“아이고! 비가 엄청 오네 2번 버스 언제 와요?” 그분이 내게 건넨 첫마디. 미국에선 공항에 앉아있다 보면 옆에 있는 처음 본 사람들과 일상이야기도 잘하곤 했지만, 한국에선 그저 모르는 사람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그래도 인자해 보이는 할머니의 말씀에 좀 더 대화를 해보고 싶었다. 돌아가신 우리 엄마도 언젠간 저분처럼 나이 든 모습마저도 아름답게 느껴졌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함께. 마음 한편이 찡하면서도, 따뜻한 뭐라 복잡 미묘한 그런 기분. 비 오는 날 엄마와 작별인사했던 그 순간이 문득 떠올랐다. 맞아. 그날도 이렇게 비가 왔지.
어쨌거나 퇴근하시는 길이냐며 묻기도 하고, 버스 전광판 오류로 버스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나이 들어서 이곳저곳 저 전광판처럼 고장 났지만, 그래도 여유 있게 일도 하고 그런 거죠. 버스 시간도 일 얼른 끝내고 나와서 타면 되는데 내가 좀 더 도와주고 나오면 좋은 걸.”, “요즘은 젊은이들 다들 너무 급해. 조금 여유로워도 괜찮은데. 나도 그래서 택시보다 버스를 타요.”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밤 9시경 그분의 말씀은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나에게 인생을 좀 더 서두르지 말고, 여유롭게, 느긋하게 살면 된다는 그런 따뜻한 위로 같이 느껴져서 말 한마디, 한마디가 좋았다.
전광판의 고장으로 수시로 버스도착시간을 알려줘서 고맙다며, “아이고, 먼저 버스 타고 가면 나 혼자 심심하겠어 어쩐대! 조심히 가요!”라고 마지막까지 인사를 잊지 않으셨다. 2번 그리고 11번 각각의 버스를 타고 가야 하기에 작별 인사를 하였다. 그날따라 운전으로 1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를, 버스로 30분이 걸려 갔지만 그 시간, 순간들 어느 하나 아깝지 않은그런 여유로운 밤이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내려놓고 싶은 그 순간을 지나고 나니 좋은 것들이, 감사한 것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 긴 시간 버텨준 내 자신에게 고맙고,또 고맙다. 지칠 대로 지쳐 출근과 폭식, 자는 것만 반복하던 나의 일상이 조금은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아서. 억수로 쏟아지는 이 비들이 더 이상 내 슬픔같이 느껴지지 않아서. 따뜻한 그 평범한 대화가 감사한 그런 밤. 감사합니다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따뜻한 그 대화가, 따뜻한 그 미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