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너의 눈물, 그리고 나의 위로.
안녕 진아? 나에게 쓰는 첫 편지인데 우울한 이야기라 조금 미안해. 어제 폭식을 하고 나서 왜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또 그랬을까 하는 자책감과 살찐 내 모습에 우울한 아침을 맞이했거든.
미국에 다시 오는 것에 주저한 이유도 폭식 때문이었던 거 기억해? 다른 것도 아닌 폭식 때문에. 설마 또 반복하겠어라는 나의 의심 따윈 어느새 현실이 되어버렸고, 그로 인한 마음과 몸은 한국에서와 다르게 급격하게 변했어. 매일 거울을 볼 때마다 마주하는 현실은 말 그대로 최악이었어. 남도 아닌 내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단 자책감이 평범했던 일상은 물론 내 맘까지 무너뜨린 기분이었달까?
의지가 약해서, 내가 잘 못해서 그런 거라 반복되는 폭식에도 내 탓만을 했어. 눈물이 날 정도로 슬펐고, 하지만 점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숨겨야 했어. 어른이라지만 어린애 같은 모습이 나조차도 부끄러웠거든. 무엇보다 이런 내 심정을 누가 공감해줄까가 컸던 거 같아. 언제나 그랬듯, 내가 나를 잘 컨트롤할 거라 생각했어. 근데 꼭 내 의지 탓만은 아닌 걸 최근에야 인정했어. 매일 영어로 이뤄진 실습과 시험은 나를 긴장감에 몰아넣었고, 마음 둘 곳 없는 곳에서의 외로움이 한몫했다는 걸. 한국에선 운전해서라도 볼 수 있는 가족들이 있었고, 매일 되는 긴장감과 스트레스가 이뤄지는 시험을 보지도 않았으니까.
어쨌든 폭식은 내가 하는 거니까, 얼마나 한심하고 절망스러웠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 오늘은 실습시험을 보던 중에 외국인 친구가 펑펑 우는 것을 보았어. 장비와 도면을 펼쳐놓고 30분 만에 풀어야 하는 시험이었는데 가장 잘할 줄 알았던 친구가 불합격을 받고 눈물을 흘리더라. 난 어찌어찌 풀어서 합격을 하고도 왜 합격했을까 하고 찜찜한 기분이었거든.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눈물에 위로감을 느꼈어. 안타까움 그리고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과 함께 외국인인 내가 힘들어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했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라.
잘하지 않아도 된다고 되뇌면서도 머리는 정작 그러지 않았나 봐. 삼십 년 넘게 이뤄진 건데 그걸 하루아침에 바꾸기 어려운 것도 인정해야겠지. 완벽하지 않은데 완벽하고 싶은 건지 나도 헷갈려. 아무튼 오늘은 정말 많은 생각이 들더라. 그녀의 눈물이 짠하기도 하고 마치 내 슬픔과 서러움을 대변해 주는 눈물 같았어. 그녀가 우는 모습을 보며 같이 눈물이 날 것 같더라. 남들 앞에선 울지 않는데 막상 이 일기를 쓰면서 눈물이 쪼금 날 뻔했어! 내가 진짜 많이 힘들었구나 싶어서 그리고 삼 개월 동안 잘 버텨줘서.
외국에서 홀로 공부하며 폭식은 하고 있지. 오랜 꿈이었던 단란한 가정꾸리기와는 더 멀어져만 가고 거기다 스트레스와 긴장감에 하루하루 살아가지. 친구들의 결혼소식에 축하함과 동시에 조바심과 부러움도 한몫했던 듯 해. 비교하지 않으려고 해도 사람이라 그런지 비교가 되더라. 이런 상황에서 어쩌면 폭식이 다시 시작된 건 당연한 거였다고 나름 위안 삼아 보려 해. 하지만 그걸 핑계 삼아 남은 미국생활을 망쳐버리진 않을 거라 약속해! 더뎌도 조금씩 줄어드는 게 희망이 보인다고... 생각하는 중이거든. 그래도 오늘 과식하지 않고 잘 버텨준 하루를 마무리해볼게! 오늘도 고생했어 그리고 버텨줘서 고마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