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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주르진 Aug 05. 2024

[미국 일년살기] 나에게 쓰는 편지

EP5. 폭식이 나를 울렸다.  

안녕 진아? 오늘은 아침부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어. 어제 폭식으로 이성을 잃은 채 끊임없이 과자, 빵, 우유, 밥까지 눈에 보이는 음식을 마구잡이로 먹었어. 남도 아니고 괴롭히는 게 나 자신이란 생각이 들 때면 좌절, 절망, 분노의 감정이 나를 끊임없이 꾸짖는 게 얼마나 절망스러운지 모르겠어. 희망이란 감정은 그 안에서 작게 목소리를 내지만 금방 구석으로 내쫓기거든. "아냐, 괜찮아 이럴 수도 있어. 얘도 노력했잖아... 너무 그러지 말자." 왜 내 자신에겐 이렇게도 엄격할까, 남에겐 한없이 관대한데 말이야.. 


"또 그랬어? 아니 왜 그거 하나 못하고 또 이러는 거야?" "아 망했다. 너 계속 이러다가 한국 돌아갈 거야?" "맞지 않는 옷들은 어떻게 할 거며, 오늘도 집에만 있겠네." 나도 모르게 엉엉 눈물이 났고 이거 하나 조절하지 못한 내가 너무나도 원망스럽더라. 나도 잘 알아. 폭식이라는 게 단지 식사뿐만 아니라 감정부터 시작해서 모든 게 엮여있는 거라 나아지는 과정에 이럴 수도 있다는 거. 그런데도 두 번째 겪는 폭식은 더 좌절스럽더라..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니까. 


그러다 언니에게 카톡을 했어. 누구에게라도 말하고 싶었거든. 괜찮다는 그 말이 듣고 싶어서였을까? "자꾸 자기 조절을 못해서 한심하게 느껴지는 자신에게 뭐라고 해주고 싶어?" 언니가 말했어. "딱히 생각은 안 나는데 진짜...? 맘껏 울어..?" 그러다 "너 그렇게 울어봤자 소용없어..?"라고 대답했어. 아차! 싶더라. 아 이게 우는 나 자신한테 해준다는 말이 결국에 울어봤자 소용없다고 했다니..(순간 어차피 운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남한테도 한번도 그렇게 말한적 없는데 정작 나한텐 그랬어..


언니는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애도할 시간에 감정을 또 차단해 버리니 해소가 안되고 되풀이되는 거라더라. 회피하는 게 익숙해져서 감정차단하는 게 가장 빠르고 쉬운 거라 생각해서 그렇다고. 하지만 나중엔 독이 되어 오는 거고, 감정이 잘 가라! 해서 그냥 보내지는 게 아닌 거라 했어. 그러게 하루종일 이유를 찾고, 분석하고 대책이란 계획을 짜도 한순간이었어. 좋아하다가도 싫어지고, 싫어하다가도 좋아지고 원래 감정이란 게 복잡하고 상호모순적인데 나는 내가 이런 마음이 있구나. 나의 좌절, 우울함은 언제 터져버릴지 모를 시한폭탄 같은거였구나. 


그래서 그럼 뭐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자그마한 뭐라도 답을 구하고 싶었어. 언니가 그러더라 "감정을 인지하고 조금 더 표현하는 연습을 해야 할 거 같아. 너는 그냥 있는 그대로 가치 있는 거야. 감정접촉하는 게 감정소모도 많고 힘든데 그래도 잘 해냈어." 오늘 하나 얻은 게 있다면 나에 대해 한없이 엄격하고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려고 했던 게 이제 나오는 거구나. 내 감정보단 남의 감정을 헤아리는 게 먼저였는데 그게 탈이났구나 싶어 내 마음을 좀 더 알아줘야겠더라고. 


그래서 이렇게 내 감정을 마주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오늘은 나의 이 불안과 초조함 그리고 슬픈 감정에 눈 마주쳐준 것만으로 잘했다 생각해 볼게. 그때 들어주지 못했던, 참아왔던 말들.. 이제라도 들어주고 마음껏 했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진아, 너에겐 내가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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