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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일막걸리 Jul 08. 2024

내 품에 오라, 주류 제조 면허

저랑 벌써 일 년을 함께 하신 거예요

양조장 운영을 위해 임차물의 행정 조건을 알아보던 작년 7월과 주류 제조 면허 준비를 시작해야만 했던 8월을 거치고, 미루고 미루다 서류를 다 꾸린 12월을 지나 올해 4월이 됐습니다. 제조 면허를 신청했다는 소식을 알린 게 벌써 몇 개월 전인데, 4월 초에서야 주류 용기 검정을 받았네요. 용기 검정을 받기까지, 그리고 검정을 받은 후에도 소소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용기를 사는 것부터가 참 오래 걸렸습니다. 담당 세무관님께서 준비한 서류는 문제가 없는데, 원래 계획했던 시설조건부 면허 보다 바로 제조 면허를 신청하는 것이 더 낫다고 하시더라고요. 시설조건부 면허를 신청하면, 후에 정식 면허를 신청할 때 서류를 다시 다 준비해서 한 번 더 내야 한다고 해요. 그래서 이왕 면허를 신청한 김에 끝내자는 거였죠. 저도 동의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바로 양조 용기를 준비해야 했죠.


문제는 양조 용기를 한 번에 사버리면 매장을 운영할 자금이 부족해진다는 거였습니다. 구비할 용기의 리터 수도 어느 정도 정해놓긴 했는데, 확신은 없었고요. 그래서 한참 고민하다가 작은 용기부터 큰 용기까지 세분화해서 갖추려던 기존 계획을 비슷한 사이즈의 용기로 모두 통일하는 것으로 수정했습니다. 이러면 아주 약간의 예산이라도 아낄 수 있더라고요. 구매할 용기가 정해졌으니 여윳돈이 생길 때마다 차곡차곡 하나씩 사려고 했는데, 일이 하나 터지고 맙니다.


건축물대장 상의 용도가 '소매점'으로 되어 있는 게 문제가 됐어요. 구청 담당자가 이 '소매점'을 '일반음식점'으로 바꿔야 한다고 답변했다는 사실을 전달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매장 계약 전에 용도 변경 없이 일반음식점과 양조장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을 같은 구청에 확인했었거든요. 그래서 더 당혹스러웠습니다. 심지어 담당자님이 자리를 비워 다른 주무관님께 이 문제에 대해 물어봤는데, 그분께서는 굳이 바꾸실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도 하셨어요. 하지만 저희 관할구 담당자님은 바꿔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용도 변경을 신청하고 완료되기 전까지 발효 용기 구매는 잠시 중단되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요.



그렇게 겨울이 지나갔고, 큰 어려움 없이 용도 변경 절차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 싶어서, 조금 무리가 되긴 했지만 필요한 용기를 한 번에 모두 샀어요. 그렇게 용기 검정 신청까지 마쳤습니다. 그리고 용기 검정 일정을 맞추려 주류면허지원센터에서 연락이 왔어요. 이때 담당자님이 혹시 모르니 용기를 한 개 더 구비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추가로 한 통을 더 샀습니다. 단순 계산으로 총 1,044L를 준비했죠.


그런데 막상 용기 검정을 해보니 948L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38L짜리 용기가 32L로만 인정되는 등 갖춘 용기 모두가 인정 용량이 적게 나오더라고요. 원래는 이때 1KL를 넘기면 바로 면허가 발급되거든요. 하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기에 일단 부적합 결과지를 받고, 발효통을 더 구비해서 사진으로 전송하기로 했어요. 주정계도 20-30도짜리가 없어서, 이것도 추가로 사서 사진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구매 후 인증 사진을 보내고 나면 모든 게 끝날 줄 알았는데, 또 아니더라고요. 법인이다 보니 감사의 주민등록초본이 필요해서 이를 전달받는 데 약 3주가 소요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5월 7일에서야 모든 서류가 준비되어 면허 신청서가 정상 접수되었죠.


후에는 무한한 기다림이 있었습니다. 안내받은 처리 예정기한은 7월 2일이었는데, 혹시나 더 빨리 나오지 않을까 희망을 갖기도 했어요. 하지만 결국 7월 3일에서야 주류 제조 면허가 '처리완료'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드디어! 하지만 면허를 수령하려면 국민주택채권을 사야 했어요. 주류제조업의 경우에는 30만 원어치 채권을 사야 했는데, 인터넷으로도 구매할 수 있지만 도저히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다음 날이 되어 은행을 찾았습니다. 원래 아니! 통장에 돈도 없는데 30만 원을! 이런 겁을 집어 먹고 갔는데요, 다행히 구매 즉시 매도라는 방법으로 3만 원 이내 비용으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오?


그래서 7월 4일에 소규모 주류 제조 면허를 제 품에 안게 되었습니다. 원래 공방에 손님이 오실 시간이라 세무서에 방문하지 못했는데, 친절하신 세무관님이 직접 공방으로 오셔서 서류를 전달해 주셨어요. 매장이 세무서와 1분 거리에 있는 덕을 톡톡히 봤습니다. (성실 납세!)


면허증을 받은 후 바로 손님이 오셔서 어떤 벅차오름을 제대로 즐기진 못했는데요, 밤에 매장을 정리하며 찬찬히 면허증을 들여다보니 좀 뿌듯하더라고요. 그동안 도움 주신 분들의 얼굴도 다 생각나고요. 그래서 부랴부랴 인스타그램에 소회를 올리며 감사를 전했습니다. 밑바닥에서 하나하나 물어가며 준비해서 그런가 봐요.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좀 찡합니다.


1년 만에 면허를 받았지만, 정식으로 제 술을 출시하려면 아직 많은 단계가 남아 있습니다. 그래도 올해 안에 선보이는 게 목표예요. 흐흐. 부지런히 양조장 청소도 하고, 테스트 규모도 늘려가면서 이제 '제조업자'가 되어 보겠습니다.


브런치에서 지켜보아 주셨던 여러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들이 눌러 주셨던 공감과 댓글이 저를 여기까지 오게 만드셨어요. 2024년 하반기도 함께 나아가 보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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