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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일막걸리 May 13. 2024

팝업 막걸리 바의 갈무리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나요? 마지막으로 전해드린 소식은 해일막걸리에서 처음으로 진행하는 팝업 막걸리 바였는데요, 어쩌면 그 이야기를 보고 정말 해일막걸리에 들러 주신 분들도 계셨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우당탕탕 막걸리 바 팝업은 지난 5월 5일에 끝났지만, 그 소회를 간략하게 정리해 써볼까 합니다.


막걸리 바를 열겠다는 결심은 추운 겨울부터 시작되었는데,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새 더위가 찾아오고 행사를 시작해야 할 시기더라고요. 이제부터 들려드리는 이야기는 일종의 고백입니다. 온지술도가의 막걸리들은 이미 매장에 도착한 지 한참인데, 칵테일 레시피 조합을 짠 건 행사를 고작 일주일 앞두고였습니다. 막걸리를 시음해 보면서 '서막 12: 새콤함이 강함', '온지 솔: 민트를 섞어야겠음', '온지 몬: 완전 레몬이다' 등 메모를 적어 나갔고 머릿속으로 어울리는 재료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는 성공한 조합도 있었고, 실패한 조합도 있었어요. 예컨대 온지 솔에 애플민트를 찧어 넣은 토닉을 섞어 보자는 아이디어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온지 솔 특유의 상큼한 향이 더 강렬해졌고, 달달한 첫인상으로 누구나 무리 없이 마실 수 있는 칵테일이 되었거든요. 애플민트와 솔잎이 장식된 비주얼도 꽤 예뻤고요. 하지만 서막에 연유와 우유를 섞어 달콤함을 늘려 보려는 대실패였습니다. 아무리 연유와 우유의 비율을 늘려도 서막 특유의 새콤함을 감출 수 없었거든요. 정말 맛이 따로 노는 최악의 조합이었다고 할 수 있었죠.


수정할 레시피는 수정하고, 아예 빼 버릴 레시피도 정하고 나니 이름을 붙여야 할 차례가 왔습니다. 칵테일은 주로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이름이 붙거나 바텐더의 이름을 따더라고요. 그렇다고 막걸리 애플민트 토닉 이런 이름은 너무 흔한데 길기까지 한 것 같고, 고민하다가 온지술도가의 막걸리 자체 이름이 워낙 예쁘다 보니 술 이름을 그대로 가져오기로 했습니다. 토닉이 들어가긴 했지만 커다란 얼음과 천천히 녹여 먹는 게 더 어울리는 술은 '온지솔더락'으로, 파인애플 주스가 들어간 칵테일은 '온지몬피나'로, 탄산수가 들어간 칵테일은 '온지오소다', 미숫가루 크림이 올라간 건 '온지솔크림'으로 정했습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갔던 그 사진!


이름을 정했다고 할 일이 끝난 건 아니었습니다. 가격도 정해야 했죠. 이때도 나름 머리를 써야 했는데, 저는 칵테일을 최대한 저렴하게 드리고 싶었거든요. 제 경험에 비춰봤을 때, 다양한 술을 맛보고 싶은데 술 한 잔이 너무 비싸면 차마 시키지 못하고 아쉬움을 남겨야 했던 기억이 있었어요. 해막에서는 그런 기분을 느끼지 않으셨으면 했습니다. 하지만 술의 가격이 꽤 있다 보니 가격을 함부로 낮출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아쉽지만 양을 약간 줄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준비한 작은 안주는 약밥 아이스크림과 과일 아이스크림이었는데요. 이 안주들에도 사정이 있습니다. 원래는 허기를 달랠 수 있는 약밥과 더위를 쫓아줄 요거트 셔벗을 준비했었어요. 하지만 둘 다 원하는 맛과 식감이 나오지 않아 과감히 포기하고, 두 종류의 아이스크림으로 방향을 확 틀었습니다. 실패의 잔재, 그러니까 테스트 후 남은 약밥은 해일의 뱃속과 냉동실로 들어갔고요.


그렇게 부랴부랴 레시피도 개발하고, 필요한 기자재들도 사고, 쌀포대에 포스터도 그리고, 식재료들도 갖추다 보니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갔습니다. 어찌나 빠르게 지나갔던지, 사실 레시피를 다 확정하지 못했는데 일단 막걸리 바 문을 열어야 할 때가 왔어요. 팔 수 있는 메뉴만 일단 메뉴판에 적어 두고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딱히 광고도 하지 않고 매장도 워낙 한갓진 곳에 있다 보니 과연 찾아오시는 분이 있을까 싶었는데요, 꼭 와보고 싶었다며 찾아 주신 분들이 계셔서 감동이었어요. 특히 먼저 말을 걸어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손님들의 독서나 작업, 대화에 방해되지 않게 최대한 조용히 있으려고 했는데요, 사실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팝업 행사의 또 다른 재미였습니다.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4주 간의 행사를 마치고 남은 재고를 보며 수요 예측의 실패라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지만, 그래도 이 새로운 도전 덕분에 얻은 게 더 많습니다. 식재료 관리라든지, 여러 레시피라든지. 많은 분들께 답변드린 것처럼 해일의 막걸리 바는요, 올여름 안에 다시 돌아올 예정입니다. 그때는 해일의 막걸리로 찾아뵐게요. 안녕히 지내시다 건강히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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