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로컬 브랜드가 될 수 있나 봐 1
나 하나 좋자고 벌인 일이 해일막걸리가 되었습니다. 욕심은 멈추지 않고 자라나서, 이왕 좋은 거라면 다른 사람들과도 두루 나누고 싶어 졌죠. 그래서 탐내게 된 목표는 로컬 브랜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막상 그 '로컬'이 어디인지도 정하지 않은 채, 해일막걸리는 로컬 브랜드를 꿈꿨습니다. 그저 더 많은 사람에게 단단히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로컬 브랜드가 무엇인지 정확히 말하지도 못하면서 로컬 브랜드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으니까요.
꼭 이곳이어야만 한다는 지역은 없었지만, 자리 잡은 곳에 정을 줄 수밖에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운명의 흐름은 해일막걸리를 관악구에 내려놓았고요. 언젠가 홀연히 떠날 거라 생각했던 신림에서, 해일막걸리의 첫 뿌리가 자라났습니다. 그러니 관악은 자연스레 해일막걸리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관악의 로컬 브랜드가 된다는 것은 쉽게 볼 일이 아니었습니다. 로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지역의 특산물을 이용한 제품인데, 관악구는 딱히 특산물이라고 할 게 없었거든요. 구민들의 도시 농업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자급자족할 만큼의 식물을 키우는 정도이지, 특정 작물을 규모 있게 생산하는 건 아니라서요.
유형의 특산물이 없다면, 무형의 자원으로 눈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여느 동네가 그렇듯, 관악구도 관악구만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우선 서울에서 청년 인구가 가장 많은 자치구로 꼽힙니다. 강남권으로 출퇴근할 수 있는 지역 중 가장 물가가 저렴하기로 소문나 있죠. 저 역시도 강남 쪽 회사에 다닐 무렵 관악구로 거취를 옮겼습니다. 자본이 적은 사회초년생들이 주로 거주하다가, 돈을 모아 다른 동네로 떠나기 때문에 '태초마을'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더라고요.
넉넉지 못한 형편을 품어주던 건 예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쫓겨난 철거민들이 부락을 이루기도 했고, 화전민들이 살던 동네기도 했다고 해요. 때문에 높은 언덕에도 옹기종기 주택이 모여 있고 개중에는 아주 오래된 골목들도 남아 있습니다. 체감하기로는 청년 인구뿐만 아니라 노년 인구도 많다고 느껴져요. 그분들 중의 상당수는 관악구 토박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거주 기간이 상당히 기시고요.
이런 지역의 이야기를 가장 먼저 해일막걸리의 체험에 담았습니다. 단체체험에는 봉천고개와 토박이들이, 심화체험에는 관악산이 등장하죠. 이어 해일막걸리의 제품이 될 막걸리의 중심 콘셉트도 관악구로부터 떠올렸어요. 미리 스포일러를 하자면, 청년의 톡톡 튀는 싱그러움을 담은 막걸리 하나와 난곡 굴참나무의 시원함을 담은 막걸리 하나가 출시될 예정입니다.
이 막걸리들을 개발하는데 때마침 관악형 로컬 브랜드 사업에 선정되어서 소정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그동안 비싸서 못 샀던 식재료들을 마음껏 사서 술을 담아볼 수 있었어요. 원래 계획은 해당 사업에 참여하는 동안 막걸리 승인도 마치고, 출시와 함께 나름 대대적인 홍보와 시음회까지 개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달 여의 사업 기간은 너무도 빨리 지나갔고, 그 와중에 막걸리 제조 방법은 두 번의 반려를 받게 되었어요. (이전 신청까지 합치면 무려 세 번의 반려! 하지만 네 번째 시도에 성공했다는 점! 이 우여곡절 이야기도 곧 올라옵니다.) 그래서 결국 가을에 세웠던 초기 계획은 아쉽게도 실행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다 할 성과 없이 흐지부지 마친 기분이긴 하지만 사업에 참여하는 동안 친환경 포장에 대해서 고민해 보고, 라벨 디자인도 기획하고, 막걸리 레시피도 확정했으니 앞으로 조금 나아가긴 했습니다. 무엇보다 관악을 담고자 했던 의도가 관악구에 전달된 것 같아 기뻤습니다. 장차 로컬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인정받은 것 같아서요.
그러나 준비를 하면 할수록 과연 내가 제대로 하고 있나, 해막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나 의심할 수밖에 없었어요. 뭔가 좀 더 배우고 싶다는 갈증이 생겼을 때 운 좋게도 높은 경쟁률을 뚫고 파운드관악이라는 또 다른 로컬 브랜드 교육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