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습니다
열아홉과 스무 살의 간극은 고작 1살의 나이 차이를 뛰어넘는다.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주어지는 다양한 선택지와 그에 따른 책임감. 더 이상 그 누구도 나의 잘못을 커버해 주지도, 이해해주지도 않는 순간이 온다. 내가 한 과거의 선택이 현재의 나를 이루고 과거에 대한 후회는 시간 낭비가 되어버린다. 이제는 내가 직접 나의 미래를 그려야 하고, 매 순간 내 행동과 선택이 불러올 파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스무 살이었던 나에게로 돌아가게 되는데. 미디어학도의 십중팔구가 그러하듯이 나도 한 때는 방송연출가, 일명 PD를 꿈꾸며 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나 2학년이 되니 다들 으레 깨닫는 것들이 있었으니. 대단한 학벌이 없는 우리에게 언론고시는 하늘의 별 따기이며, 기약 없는 순간들을 견딜 만큼 영상 일을 사랑했느냐 물으면 사실 그것은 아니었노라고. 이 모든 것은 미디어학도가 자연스럽게 광고와 마케팅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는 흔한 이야기이다. 이럴 거면 경영 갈 걸 그랬어, 친구들과 흥얼거리는 후회의 노래.
뒤늦게나마 공모전이니, 대외활동이니, 자격증이니 하며 황새 따라잡는 눈물겨운 날들이 이어진다. 그다음은 나조차도 나를 잘 모르는데 남에게 나를 어필하라고 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자소서, 면접을 준비한다. 겨우 인턴에 붙고 나면, 드넓은 흰 도화지 위에 이제 막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느낌이다. '그릴 수 있는 선택지가 많다'는 따뜻한 위로는 글쎄? 함부로 시작했다간 쉬이 돌이킬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만 드는데. 선을 긋는 순간마다 내가 '빅 픽처'를 꿈꾸고 하나하나 달성해 나가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천상 P인 나에게 계획을 짜는 것은 영 어려운 일임에도, 그래, 커리어 로드맵의 필요를 느낀다
여기서 문제점 하나. 커리어.. 랄 게 있나? 없다.
최대한 부풀리는 것 없이 내가 한 업무를 정리했다.
1 퍼포먼스 마케팅 에이전시 (스타트업)
- 디지털 광고 효율 개선 상담
- 디지털 광고 소재 기획 및 제작
- 디지털 광고(IG, FB) 캡션 작성
참 많은 광고주님을 모시며 살았다. 소액 광고주의 디지털 광고를 기획하고 제작하며 집행하는 일을 했다. 심도 깊은 수준은 아니었지만 광고 퍼포먼스를 보면서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했다. 내 인생의 첫 사회생활. 이곳에서 배운 것은 (광고뿐만 아니라)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하면 데이터를 통해 수치를 분석하고 인사이트를 반영하여 지속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2 인하우스 콘텐츠 마케터 (뷰티)
- 온드미디어 채널 운영
- 콘텐츠 기획 및 제작
- 데이터 분석 및 결과 보고 작성
뷰티 브랜드의 콘텐츠 에디터와 콘텐츠 마케터 그 중간의 일을 하면서, 디지털을 거치는 콘텐츠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제작했다. 전자에 비해서 비교적으로 제작자의 핸들이 쥐어진 자리였기 때문에 늘 성과를 분석하고 개선하고 싶었지만 업무량이 많아서 찍어내기 형식에 가까웠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채널이 성장했기 때문에... 결과가 좋으니 장땡인가?
모쪼록 이렇게 경력(?)을 점검하면서 내가 가진 경험과 역량을 파악할 수 있었다.
목표라는 거창한 단어로 포장해 보았지만, 한 마디로 하면 대행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최종적으로 인하우스에 가는 것. 그것이 내가 현재로서 바라는 나의 미래이다. 나에게 필요한 경험과 역량은 내가 꿈꾸는 목표 기업의 JD(직무기술서)를 참고했다.
1 대학내일 마케팅 AE (경력)
➰ 주요 업무
- 마케팅 제안서 작성
- IMC 캠페인 기획/운영, 바이럴 마케팅, SNS 채널 운영
- 기획서 작성, 경쟁 PT 제안, 프레젠테이션
영타깃 대행사로, IMC 캠페인 기획 과정에서 바이럴, SNS 등 다양한 채널을 활용하여 운영한다. 또한 마케팅 제안서를 작성하고 PT를 진행한다. 정통 대행사에서 기대되는 마케터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2 제일기획 마케팅전략 (신입)
➰ 주요 업무
- 마케팅 전략 수립 및 비즈니스 개발
- 소비자 행동 분석/진단을 통한 클라이언트 CX 플래닝 수립
- 마케팅 인사이트/트렌드 센싱을 통한 신규 비즈니스 개발
삼성 계열의 대행사로, 다양한 고객 접점에서 제공할 경험 플래닝을 수립한다. 또한 퍼포먼스 분석을 기반으로 한 신규 고객을 창출할 수 있도록 전략을 개발한다. 데이터를 활용하여 마케팅 인사이트를 얻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3 네이버 마케팅 (인턴)
➰ 주요 업무
- 사용자 조사 및 IT 트렌드 리서치
- 서비스 관련 프로모션 기획 및 운영, DA 제작을 위한 카피 작성과 디자인 지원
- 사용자 대상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 제작
- 사용자 관점에서 서비스를 바라보고 개선점 발굴
IT 기업의 인하우스 마케터로, 서비스 중심의 프로모션 기획 및 운영을 수행한다. 산업 특성상 고객, 즉 유저를 끊임없이 고려하고, 높은 질의 UX를 제공하기 위한 일환의 활동으로 마케팅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가고 싶은 기업의 JD를 분석했다. 내 나름의 분석도 덧붙였다. N년차를 구하는 경력직 공고보다는 신입 위주의 공고를 체크했다. 이를 기반으로 나는 쌓고 싶은 역량을 정리했다
- 콘텐츠 기획 및 제작
- 온드미디어 채널 관리 (IG/BLOG/YT/FB/ETC)
- 온/오프라인 광고 운영 및 성과 분석
- 프로모션/캠페인 기획
- 데이터 분석 및 인사이트 도출
- 데이터 툴 활용
- 마케팅 전략 설정
- CRM (을 내 수준에서 할 수 있을까?.........)
위의 내용은 앞으로 약 3년간 내가 쌓아야 하는 경험이자 역량이라 할 수 있다. 아니, 커리어 로드맵을 짠다고 했으면서 뭐 하자는거야? 라고 생각했다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
나에게 여행 계획은 1일 차에 A, 2일 차에 B를 가는 것이 아니라 여행 일정 내에 A, B에 다녀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 커리어 계획도 비슷하다. 그러한 고로 조금 (많이) 두루뭉술한 수준의 로드맵이 되었다.
계획을 세우는 행위를 즐겨하는 사람이라면 1년 차, 3년 차, 5년 차의 모습을 정석적으로 짜는 것도 좋을 듯.
그럼에도 커리어 목표를 꾸준히 점검하는 것은 현재 당장하고 있는 일이 내 커리어에 유익한지 체크할 수 있는 것 같다. 단기적으로 돈을 벌기 위한 일을 하는 것보다는 장기적으로 내 커리어 목표와 일치하는지 파악하여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케팅 뉴비의 커리어 로드맵 목표 세우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며 글을 마무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