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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파 Sep 14. 2022

칵핏의 온도

꿈과 현실 사이의 온도 차이

내가 조종하는 헬기에는 에어컨이 없다.

유난히 습하고 더운 날,

시험비행을 위해 조종석에 앉았는데 너무 뜨거워 어서 빨리 시동을 걸고 싶다. 땀이 비 오듯이 쏟아지고 조종복이 비행하기 전부터 축축이 젖어들어간다.


내가 상상했던 군헬기조종사는 쾌적한 조종실에서 멋진 선글라스를 끼고 평화롭게 멋진 풍경을 보면서 비행하며 나라를 지키는 생각만 해도 부러울만한 직업이었다.

하지만, 7년차 군헬기조종사로서의 현실은 처참했다.


비행 전 점검부터 비행하기까지 이미 온몸이 땀에 샤워를 했고, 정비사들과 승무원들에게 비행 전 브리핑을 마치고 칵핏에 들어오는 순간.. 아 뜨거워라는 무조건 반사적인 말이 터져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비행조종자격이 있는 교관님께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차분히 체크리스트를 펼치시고 시동을 거신다.


군조종사 생활을 30년 넘게 하셨음에도 불평불만 1도 없어 보이시는 교관님을 보게 될 때 나의 30년 후에 모습을 그려본다.

과연 나는 30년 간 이 뜨거운 칵핏에서의 비행을 잘 해낼 수 있을까..?


뜨거운 칵핏 안에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안전하게 비행하고 어서 집에 가고 싶는 생각.

시험비행이어서 항공기 결함 확률이 높은데

우발상황에 나는 임무조종사로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비상절차를 리마인드 해보자 라는 생각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연년생 아이들 생각


결론, 아무리 칵핏의 온도가 높아도

안전하게 비행해서 집에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내 현실에 불평불만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나를 믿고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조종사로서 뒤에 믿고 타는 승무원과 정비사들이 있는데…


잠시 어리석고 교만했던 나 자신이 싫어진다.

그저 칵핏의 온도가 37.5도가 되었을 뿐인데

인간으로서 저따위 환경에 쉽게 흔들려버린 나 자신을 반성한다.


나는 돈을 많이 벌고 그저 자유롭게 하늘을 날기를 원하는 조종사가 아닌데 말이다.


초심으로 돌아가야겠다.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과 도움을 주고 싶다던

군인으로서 비행기로 나라를 지키고 싶다는 그 신념..


다시금 꺼내 들어 전진해야 할 때인 듯하다.


그래서 나는 별거 아니지만, 비행 후 급하게 PX에 들러 뜨거운 땡볕에서 그 누구보다 항공기를 위해서 힘써 정비하는 정비사들과 항공기의 눈이 되어주는 승무원들을 위해 시원한 음료수를 사서 나눴다.


이런 게 내가 바라던 군조종사의 삶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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