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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파 Sep 19. 2022

아버지의 뒷모습

부모가 된 내가 바라본 아버지의 마음 읽기

화창한 가을 하늘 아래

4살 된 나의 딸을 번쩍 들어 안고 걸어가시는 내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복잡한 감정이 교차했다.


저 멀리 부산에 계시는 아버지가 개인적인 업무차 서울로 올라오셨다. 추석 때도 출동대기 근무, 긴급 비행임무라는 이유로 찾아뵙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 들어 모처럼 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약속된 시간과 장소에서 나는 연년생 두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내 아버지를 기다렸다.

“ 하리 하성아, 이제 곧 부산 할아버지를 만나니깐 인사 잘해야 해! “

오랜만에 보는 아이들도 부산 할아버지인 내 아버지를 생소한 듯 기다리고 있었다.

저 멀리서 검은색 안경을 쓰고 백팩을 멘 정장 입은 아버지가 나와 손자 손녀에게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나 또한 아버지를 보며 반갑게 맞이했지만, 내 아이들은 부산 할아버지가 생소한지, 선뜻 내 아버지에게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와 나, 아내 그리고 연년생 딸과 아들

카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 첫째 딸이 아버지가 준 귤을 가지고 장난쳐서 온통 귤 과즙

범벅이 되었고, 나는 첫째 딸에게 먹는 귤을 가지고 왜 그랬냐며 나무랐다.

하지만, 내 아버지는 손녀가 혼나는 게 싫었는지

“애들이 놀다 보면 그럴 수 있지” , “하리야 괜찮아..”너무 기죽이지 말라며 손녀를 다독이는 것이 아닌가.


37년에 긴 군생활을 마무리하시고 전역을 앞두고 계신 내 아버지.

어릴 적부터 누나와 나에게 매우 엄격하고 군기를 심하게 잡으셨던 아버지.

어릴 적 나는 이런 아버지가 너무 무서워서 눈조차 제대로 마주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덧 아버지는 할아버지란 타이틀을 가지고 손녀에게는 한없이 따뜻하고 인자한 사람이 되었다.

아들과 아버지와의 관계와 손녀와 할아버지의 관계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하지만, 나도 부모가 된 입장에서 할아버지가 된 아버지의 마음이 이해되기도 했다. 명확하진 않지만, 지난 시간 너무 무뚝뚝했던 아버지로서의 후회와 미안함이지 않을까 싶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실망도 많이 하고 반항도 꽤 했던 기억을 더듬어보니, 나 또한 아버지 말을 곧이곧대로 잘 듣는 아들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가라는 길을 반대해서 나는 항상 다른 길로 갔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지금 아버지와 같은 직업군인으로서 군 헬기 조종사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내 아버지와 같은 군인의 삶과 자식을 둔 부모가 되어보니, 어릴 적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이사를 많이 다녔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이해로 변했고, 왜 항상 일찍 집을 나가시고, 집에 늦게 들어오셨던 그 이유 또한 알게 되었다.


요즘 은퇴를 앞둔 아버지가 몇 가지 문제로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자식으로서 마음이 아프다.

크게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한다는 게 …

내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그저 아버지가 자식 걱정 안 하시도록 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과 아버지를 위한 기도뿐..


카페에서 이야기를 마치고,

할아버지와 금세 친해진 내 딸은 아버지에게

안아달라며 애원한다.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 손녀를 번쩍 들고 안아 세상 그 누구보다 가벼운 사람처럼 우리보다 앞으로 먼저 걸어 나간다.

그 뒷모습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 나도 어릴 적 아버지에게 저렇게 안겼었겠지? “

아버지에게 안긴 기억은 없지만,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어릴 적 희미한 기억이 따뜻한 감정으로 느껴졌다.



앞으로 나는  연년생 자녀의 부모로  살아갈테지만,  세상에서 나도 누군가의 아들이라는 타이틀로오래도록 남고 싶다.


같은 군인이지만, 37년간 성실하고 꾸준하게 군생활을 해오신 내 아버지가 멋지고 자랑스럽다.


아버지의 남은 인생이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길 간절히 바라며, 오늘은 부모가 아닌 자식으로서 글을 기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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