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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있는 집

by 보통의 건축가

빨랫줄 같은 비가 땅을 치고

골목 자욱하게 먼지 오르면

신주머니 쓰고 210문 작은 발 내달았다

처마 밑 제비가 기꺼이 아랫목을

내어준다 부르면

염치 없이 벽에 등을 대고 누워

가방을 이불 삼아 깜빡 졸던

비 오는 날 처마 밑은 내 방이었다


260문 신발로 내달을 땐

구불구불 골목길은 소실점에 사라지고

제비도 처마도 보이지 않았다

수백 개 눈을 가진 거인이 도시를 채우고

밤낮으로 눈을 부릅떠

장대비가 몸을 때려도

신주머니 하나 없는 나는

무서워 눈을 내리깔고 달릴 뿐이다


거인들만 사는 나라 강남에

제비는 가지 못했을 것이다

처마 없는 집은 머물 수 없고

비 오는 날 누구의 방도 아니기에

210문 신발의 깊이만큼

나와 제비에게 내어준 처마가

그래서 그리운 까닭이다


처마 있는 단독주택 '무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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