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고작 한 개의 목숨

by 보통의 건축가

어젯밤에 혼자 야근하기로 한 것은 잘 한 선택이었다. 역시 아이디어가 필요한 단계에서 어수선한 환경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게 한다. 하루 종일 힘만 드는 제자리 뜀뛰기를 하다가 혼자된 고요한 밤이 되어서야 여주집의 평면이 정리되었다. 가운데에 마당을 두고 집을 ㄷ자로 둘러싸니 건축주가 원하던 작지만 큰 집의 모양새가 갖춰졌다.

어젯밤 노란 트레이싱지에 거칠게 그렸던 평면 스케치를 아침에 부지런히 캐드로 옮겨 그렸다. 개략적인 평면이 그려져야 천팀장이 스케치업으로 모델링을 할 수 있으니 서둘러야 했다. 오후에 면목동 다가구주택의 현장 감리도 예정되어 있어 손은 날아갈 듯 빨라졌다.

점심 먹을 때가 되어서야 캐드 작업을 겨우 끝낼 수 있었다. 다행히 현장에서 귀찮게 하는 전화도 없었고 스텝들도 자기 일 처리하느라 바빠서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아침이면 키보드 앞에 앉아 자기를 좀 만져달라고 귀찮게 하는 포도가 없어서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어? 그러고 보니 포도가 안보였다.

‘또 베란다에서 사람 구경하나 보네. 고놈 참 사람 좋아해’

포도는 이른바 개냥이였다. 사람을 잘 따랐다. 특히 내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항상 지근거리에서 나를 지켜보거나 책상 위에서 잠을 잤다. 그러다 무료해지면 베란다에 나갔다.

사무실은 5층 건물의 3층에 자리했는데, 사무실에 붙어서 사무실 면적만한 베란다가 있었다.

서울에서 양수리로 사무실을 옮겨올 때 이 널찍한 베란다에 반해 보자마자 덜컥 계약을 해버렸다. 물론 서울의 반값도 안 되는 임대료에 더 끌렸던 것도 사실이지만, 베란다에서 보이는 운길산의 능선과 북한강의 윤슬이 아름다워 더 비싸게 불러도 아마 계약하지 않았을까 싶다. 10평 남짓한 베란다 상부에는 불법으로 증축한 4층의 데크가 있어 지붕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비 안 맞는 외부라니, 자연을 즐기기에 더 없는 장소였다.

넓고 지붕도 있어 좋기는 한데, 바닥이 회색의 우레탄 도장이라 건조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 삭막함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다. 그 때만 해도 설계 일이 많지 않아 통장에 툭하면 0이 찍힐 때였다. 소상공인 대출을 받아 모자라는 보증금을 충당하고 사무실을 꾸몄더니(인테리어라고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책장을 마련하는 비용을 줄여보겠다고 플라스틱 우유박스를 50개 정도 구매해 거기에 이삿짐을 넣어 조금씩 옮겨왔다. 그리고 우유박스를 쌓고 엮어서 책장을 만들어 거기에 책을 넣었다. 선반도 나무를 사와 직접 달았고 페인트도 직접 칠했으니 디자인을 업으로 하는 사무실 치고는 초라해도 너무 초라했다) 베란다에 쓸 돈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하는 것은 장소에 대한 모독이었다.

원상복구도 쉽고 비용도 저렴한 방법을 찾다가 인조잔디를 선택했다. 너무 인조 티가 나고 저렴해 보이면 안 하니만 못하기에, 적당히 도톰하고 갈색 풀도 섞여 있는 자연스러운 인조잔디를 골랐다. 인조잔디를 깔고 차 트렁크에 잠자고 있던 화로대와 캠핑의자까지 배치하니 그럴싸했다. 베란다 공사를 끝내고 화로대에 장작을 태우던 첫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운길산 능선을 넘어가는 해는 장작의 붉은 빛과 닮아 있었다. 얼굴을 붉힌 장작과 붉게 달아오른 내 얼굴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었고 노을 진 하늘과 와인의 색이 절묘하게 어울렸다. 이 때부터 베란다는 사무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되었다.


포도도 나만큼 베란다를 좋아했다. 툭하면 베란다에서 배를 깔고 앉아 그루밍을 했다. 가끔 화장실 문이 닫혀 있을 때는 인조잔디 위에 똥을 싸기도 했다. 늘 싸던 곳에 싸는 지라 딱히 꾸중을 하지는 않았다. 화장실 문을 닫아 놓은 것은 내 실수이기도 하니까. 퇴근 시간이 되면 홀로 있을 포도가 안쓰러워 항상 베란다 문을 열어 놓았다. 퇴근길에 뒤통수가 따가워 돌아보면 포도는 파라펫 위에 앉아 나를 내려다보고는 했다.

아마 오늘도 파라펫 위에서 지나는 사람을 구경하고 있을 것이다.

‘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천팀장을 불렀다.


“철규야. 내가 평면은 얼추 그려 놨거든. 스케치업으로 모델링 좀 해볼래? 이 집은 안마당을 중심으로 ㄷ자 형태의 집이 둘러쌌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의 장방형 집 가운데에 마당을 품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겠어. 그러면 지붕도 ㄷ자 형태를 따르는 게 아니라 하나의 큰 박공지붕을 씌우고 그 가운데를 비우는 방식이어야 할 거 같아. 처마는 가급적 길게 구성하고. 내 말 알아들었을까?”

“네. 소장님. 안마당까지 집으로 보고 전체에 지붕을 덮으라는 거죠? 안마당 상부는 비우고요.”

“그렇지”


몇 년을 함께 한 사이라 디테일한 설명은 굳이 필요 없다. 디자인 의도만 전달하면, 본인의 생각을 더해서 생각보다 더 괜찮은 모델링을 불쑥 내밀 것이다.


“언제까지 작업할 거야?”

“하루 정도면 되겠습니다. 소장님”

“그래. 그럼 내가 검토하고 수정하는데 하루 정도 걸릴 거고. 삼일 후에 건축주랑 미팅하면 되겠네.”


천팀장과 얘기를 끝내니 12시가 한참 지났다. 점심을 먹고 현장에 가면 현장감리 시간을 맞출 수 없을 듯했다.

‘어차피 오늘 현장은 콘크리트타설만 하면 끝이니, 현장소장님하고 삼겹살이나 먹자’

그 삼겹살이 화근이었다. 콘크리트 타설이 잘 되었다고 기분이 좋아진 현장소장님은 삼겹살 먹자는 내 말에 반색을 했다. 현장 인부들이 밥을 먹는 밥집으로 끌고 가더니 메뉴에도 없는 삼겹살을 시켰다. 소주도 두 병을 시켰다.


“조소장님. 서로 따라주지 말고 각자 마십시다. 좋은 날이니 세 병씩은 마십시다. 하하하”


이렇게 해서 해가 지기도 전에 나는 저물어 버렸다. 붉게 물든 하늘과 내 얼굴이 똑 같아져서는 현장소장님의 손을 붙잡고 고맙다고 연신 머리를 주억거렸다.


“아니. 조소장님이 왜 고마워. 고마우면 건축주가 고마워해야지.”

“고맙죠. 소장님의 좋은 집 짓겠다는 마음이 보여요. 그 마음이 정말 고마워요. 주변 민원도 많은데, 저 걱정할까봐 티도 안내시고.”

“난, 뭐 그냥 도면대로 하는 거야. 설계가 좋으니 나도 신나서 하는 거구.”


그 이후로 말은 계속 이어졌는데, 기억이 없다.

물론 집에 어떻게 왔는지도.

수종사의 종소리를 들은 듯했다. 아니, 내 머릿속에서 울리는 걸까. 뭔가 둔탁한 것이 머리 안쪽을 계속 두드리고 있었다. 이러다가 뇌의 주름이 모두 펴지는 건 아닐까 생각하다가 또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깨보니 9시가 넘어 있었다.

‘아~ 지각이네’

소장이라고 출근을 자기 맘대로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와서 나만은 그러지 말아야지 하며 살고 있는데, 그게 영 쉽지 않다. 회사까지 고작 200m 인데, 숙취로 멀어진 거리는 100km다. 겨우 몸을 추슬러 사무실에 나가니 나란 존재는 없어도 무방하다는 듯 평온했다. 멍한 머리로 일도 되지 않을 듯해서 포도와 놀아주려고 불렀는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

소팀장이 걱정을 담아 얘기했다.


“소장님. 포도가 어제부터 이상해요. 저기 책상 밑에서 움직이질 않네요. 오늘 출근해서 보니 여기저기 토했더라구요.”


참견장이인 녀석이 어제부터 움직이지 않았다면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걱정이 됐다.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 이름을 부르니 축 늘어진 포도가 고개만 돌려 나를 봤는데, 평소의 동그랗고 빛나는 눈이 아니었다. 머리를 만져주니 힘겹게 손을 핥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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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리에서 투닷건축사사무소를 꾸려가고 있는 건축가 조병규입니다. 지금은 남의 집구경을 하는 SBS 좋은아침하우스에 출연하고 있습니다. 연락처 : 010-770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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