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통의 건축가 Feb 20. 2024

빛나는 섬, 테시마, 나오시마 건축여행-1

올해는 꼭 가자던 해외 워크샵의 목적지가 일본 다카마츠로 정해졌다.

다카마츠의 섬, 테시마, 나오시마에는 아름다운 자연, 마을과 어우러진 건축물이 많다.

직원들이 건축 답사를 겸해서 갔으면 했고 나도 가보고 싶었던 곳이어서 이견은 없었다.

보름 정도 소팀장이 항공권과 숙소 예약을 알아보고 재준이가 먹을 곳을 찾았다.


출발 하루 전에 비행기 온라인 체크인을 했다.

탑승권 발급을 하는데 애들이 예쁜 여자 옆에 앉혀 달라고 소팀장에게 민원을 넣고 있다.

다카마츠에 취항한 국내 항공은 #에어서울 이 유일하다.

하루에 한 번 뿐이니 여행 계획을 세울때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아침 비행기를 타기 위해 양수리에서 새벽 5시에 출발했다.

온라인 발권을 하니 편하게 좌석까지 도달했다.

자리에 앉아 1시간50분 동안에 읽을 책을 꺼냈다.


연루와 주동


그간 많은 사건에 연루되었다

더 연루될 곳을 찾아 바삐 쫒아다녔다


연루되는 것만으로는 성이 안 차

주동이 돼보려고 기를 쓰기도 했다


그런 나는 아직도 반성하지 않고

어디엔가 더 깊이깊이 연루되고 싶다

더 옅게 엷게 연루되고 싶다


아름다운 당신 마음 자락에도

한번쯤은 안간힘으로 매달려 연루되어보고 싶고

이젠 선선한 바람이나 해 질 녘 노을에도

가만히 연루되어보고 싶다


거기 어디에 주동이 따로 있고

중심과 주변이 따로 있겠는가


송경동


하필 이 시집을 들고 온 특별한 이유는 없다.

어두운 방 안, 눈에 띄는 노란 표지가 형광처럼 드러나서,

너무 가벼운 여행 가방에 적당한 무게감을 주기 위해서,

비행기에서 시집을 펼치면 낭만적이겠다 싶어.


그런데 시가 너무 무거워 비행기가 가라앉을거 같다.

반쯤 읽었던 시집을 다 읽어 버렸네, 올 때는 뭘 읽지?

책을 잘 못 가져왔다.


오전 10시 30분, 다카마츠에 착륙했다.

입국 수속은 역시 오래 걸린다.

지문을 찍는 것도 기분이 별로다.

테시마 섬으로 가는 페리를 타기 위해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택시비는 6천5백엔, 일행의 수가 많다면 꽉 채워 택시로 이동하는 것도 괜찮겠다.

우리도 꽉꽉 눌러 담아 탔고 편하게 와서 만족스러웠다.

테시마를 가는 배편은 많지 않다.

오후 1시에 출발하는 쾌속정을 꼭 타야한다. 그걸 못타면 그날 테시마 행은 포기해야 한다.

테시마에 가는 배를 기다리는데, 아~ 저 배구나 싶어 폼 잡고 사진 찍었더니, 이 배가 아니었다.

이 배가 아니었다
요 배였다


너무 쪼만해서 배멀미 하는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젊은 여선장님 배 모는 솜씨가 아주 좋다.


쾌속정이라 30분 정도 달리면, 테시마에 도착한다.

테시마는 꽤 한적한 섬이다.

별다른 대중교통 수단이 없어 전기자전거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이 나이에 언덕 많은 길을 자전거로 간다는 것이 영 자신 없었는데, 전기자전거라 꽤 수월하게 이동이 가능하다.

세시간 대여에 1,000엔이다.


테시마에는 미술관이 있다.

아마도 테시마에 오는 90% 이상이 이 미술관을 보기 위해서 오는 것일게다.

sanna, 가장 핫한 일본의 건축가 그룹이다.

사나가 궁금하면 검색해 보시라. 많은 정보가 인터넷에 있으니.

테시마 미술관의 전시 대상은 특별한 것 없이 특별하다.

개인적으로 느낀 감상은 내가 전시되고 나를 보는 장소라고 할까.

바닥에 흐르는 물은 내가 나고 남은 양수 같았고 하늘로 열린 동그란 구멍은 내가 나고 맞는 세상과의 첫 대면 같았다.

그만큼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공간이다.

고요한 공간 안에서 내밀한 나를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장소다.

이번 여행의 가장 충격적이고 가장 짙은 잔상을 남겼던 경험이지 않았나 싶다.

내부에는 대화도 사진촬영도 허락되지 않아 변변한 사진 한장 남아있지 않다.

뭐, 별로 안타깝지는 않다. 내겐 경험으로 남아 있으니

원경의 테시마 미술관
테시마미술관 입구


테시마 섬에는 미술관 말고도 볼만한 것들이 꽤 있다.

자전거로 천천히 이동하니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다.

라뚤레트의 공간을 닮은 게스트하우스도 있는데, 이 곳 카페에서 잠시 말차 한잔 하는 것을 추천한다.

건축적으로도 꽤 볼만하고 거기 주인장의 손님 맞는 마음이 참 따뜻해서 잠시 다리쉼을 하기엔 안성맞춤이다.

게스트하우스의 중정
게스트하우스의 건축 내력을 홀에 전시하고 있다


흐렸던 날이 나쁘지 않았던,

짧은 반나절의 테시마 여행은 깊은 여운을 남겼다.

다카마츠로 돌아오는 페리에서 인상파 그림같던 창 밖의 풍경을 보며, 오기를 참 잘했다 생각했다.

작가의 이전글 알아보자! 임대형 기숙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