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잠들고 싶지 않아

내일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소중해서

by 난화

낮 동안 열심히 살아낸 사람들은 대부분

밤이 되면 약간 기분이 억울해진다.


나는 오늘 회사에서

머리도 쓰고, 감정도 쓰고, 체력도 썼다.

내가 그렇게 많이 쓴 유일한 것은 바로 ‘나’였다.


어떤 날은 내 존재 자체가 회사의 프린터처럼 느껴진다.

쉬지 않고 토해내다가, 가끔은 이유 없이 멈추기도 하고,

갑자기 빨간 불이 들어오면 주변 사람들이 슬쩍 나를 쳐다본다.

‘왜 또?’ 같은 표정으로.


그러니까 밤이 되면,

이렇게 쓰이고 고장 난 나를 누가 좀 달래줘야 하는데

그걸 해줄 사람도, 시간도, 시스템도 없다.


그래서 내가 나를 달래기로 했다.

“한 편만 보고 잘게.”

이 말은 이미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각인된 거짓말 유전자 중 하나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한 편만’이란

적어도 세 편, 댓글 탐험, 알고리즘의 늪이

모두 더 해져 있는 것이라는 걸.


하지만 아무렴 어때.

누워서 귀여운 강아지 영상을 보고,

생판 알지도 못하는 남이 혼자 라면 8봉지를

다 먹어내는 걸 보며 신기해하고,

타인의 연애사에 괜히 웃어대다가,

아무 이유 없는 영상에 괜히 울컥해지기도 하다 보면,

나라는 사람이 다시 조금 살아나는 것 같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못했던 장면들이

조금씩 정리된다.

회식 자리에서 괜히 웃었던 내가 떠오르고,

일하던 중에 혼자 숨죽여 넘겼던 분노도

그제야 나를 찾아온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하루 끝의 시간들,

이건 낭비가 아니라 회복일지도 모른다고.


잠이 아까운 게 아니라,

오늘의 내가 아까운 거다.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어떻게 견뎠는지,

누가 몰라주면 좀 어떤가.

적어도 나는 안다.


그러니까 오늘 밤 나는 나에게 시간을 선물한다.

너무 긴 것도 아니고,

아주 짧지도 않은,

딱 지금 이 밤의 온도만큼의 시간.


그러니까,

잠들기 전까지는

아무도 나를 부르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건 나를 위해 남겨둔 마지막 작은 시간.

세상이 아닌 내가 주인인, 몇 시간짜리 은하수 같은 밤.


그리고 이 글을 읽은 당신에게,

조심스레 다정한 말 한마디를 남긴다.


오늘도 정말 수고했어요.

당신의 밤도, 꿈도,

아주 부드럽고 따뜻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