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21) 상자를 든 여자
장바구니 아닌
박스를 들고 있다
네모난 상자의 한 면을
전신주 기둥에 붙인 채
여자는 힘겹게 서 있다
그렇게 해야지만
무게가 분산되는 것을
여자는 그냥 알고 있다
배송을 시켜 받거나
카트에 넣어 질질 끌거나
그렇게 해도 되었지만
무엇을 느끼는 듯
여자는 그저 어려워졌는데,
소비하는 일은 결국
무거움을 짊어지는 것임을
상자를 든 여자는
너무 잘 아는 까닭이었다.
상자를 든 어느 중년 여성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가진 것을 썼음에도(소비하였음에도), 다시 손이 무거워짐의 역설을 느낍니다.
비움이 결코 비움이 아닌 일들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