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신혼살림을 파주에서 시작했다. 파주에서도 아주 위쪽. 서울에서 파주가 아주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거의 모든 시간을 서울에서 보낸 나에게 파주란 멀고 낯선 도시였다. 신혼집은 그나마 시내였는데, 그마저도 시골처럼 느껴졌다. 공기조차 새롭게 느껴진 도시. 50만 인구가 거주한다지만 정작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던 그곳. 파주에서의 신혼생활은 아무것도 쓰지 않은, 무엇을 쓸지 몰라 백지상태인 다이어리의 한 페이지 같았다.
코로나가 한참이었던 때 임신 사실을 알고 직장도 바로 그만두었기 때문에 오직 남편과 나 둘뿐이었다. 서로에게 의지하며 신혼을 즐겼고 행복한 시간을 쌓아갔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공허함이 공존했다. 남편의 존재와 신혼의 알콩달콩한 시간도 미처 채우지 못하는 공허함이었다.
나에게 다이어리 꾸미기, 일명 '다꾸'라는 취미가 있었다. 이사오기 전까진 가끔 일기를 쓰고 스티커로 꾸미는 정도였다. 꾸준하게 써왔지만, 매일은 아니었다. 남편이 없는 동안 혼자가 되니 다이어리에 손이 자주 갔다. 초반엔 열심히 스티커를 붙이고 대충 일기를 썼다. 사실 그땐 나의 이야기를 남긴다기보다는 정말 꾸미기에 더 열중했다.
어떤 날은 추억을 회상했다. 그날 무엇을 했는지 떠올렸다. 하지만 대부분은 기억나지 않았다. 다이어리를 펼쳐 그날의 기록을 찾아봤지만, 꾸미기에 집중했던 지난 기록은 별 소득이 없었다. 이런 일을 겪고 나니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 뒤로 나의 기록은 완전히 바뀌었다. 꾸미기보다는 기록을 위한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되지 않는다.
기록하는 편리한 방법은 많지만, 굳이 손 글씨로 아날로그 다이어리에 기록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기억하기 위해 기록한다고 답한다. 일상은 워낙 소소해서 쉽게 잊힌다. 그러나 지나고 나니 삶의 행복이 묻어난 시간은 그 소소한 일상이었다. 일상 기록에 대한 가치를 깨닫고 난 뒤 새로울 것 하나 없던 오늘이 특별한 오늘로 바뀌었다.
생각이 많아질 때면 생각 노트를 펼쳐 마구잡이로 적는다. 그렇게 생각을 붙잡고 나면 정리가 된다. 복잡한 마음이 차분해지고 갈피를 잃었던 마음에 확신이 든다. 스트레스를 받은 날이면 다이어리에 취향 가득한 스티커를 붙이고 정성 들여 예쁜 글씨로 꾸민다. 이 모두가 그냥 지나치면 잊어버렸을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