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곰탕을 흰머리 가득한 이 나이 되도록 딱 한 번 먹어봤다.
그것도 30여 년 전 사회 초년병 시절, 회사에서 한참 높은 분 손에 이끌려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는 긴장감 속에 혓바닥만 잔뜩 데었던 기억이 있는 음식이다.
그 이후론 곰탕 종류를 파는 집에서 가장 비싼 음식이었던 꼬리곰탕은 쳐다보지도 않았었고, 그저 설렁탕 정도에 만족하며 살았던 것 같다. 지금은 그마저도 너무 비싼 음식이 됐지만.....
얼마 전, 새로운 시즌이 시작된 ‘서진이네 2’에서 평생 한 번 영접했던 꼬리곰탕이 메뉴로 등장했다.
막 저녁 식사를 끝마친 다음이어서, 먹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저렇게 눈 오는 추운 날 뜨뜻한 국물이라면 아이슬란드 사람들도 좋아하겠다 싶었는데, 같이 TV를 보던 고등학생 막내가 물었다.
“아빠 꼬리곰탕 드셔 보셨어요?”
“야 인마 아빠 나이가 몇인데 당연히 먹어봤지.”
“맛있어요?”
“죽여주지, 가게 가면 저게 제일 비싸. 괜히 비싼 게 아녀.”
막내에게 거짓말을 했다.
난 꼬리곰탕이 어떤 맛인지 기억이 없다. 혓바닥 데인 기억밖에는....
아빠는 박학다식한 머리에 맥가이버의 기술과 어벤저스의 문제 해결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고마운 막내여서, 순간 그 환상을 깨뜨리고 싶지 않다는 본능이 작용했던 것 같은데, 아직 내가 브런치 작가인지 모르기 때문에 다행히 이 거짓말은 영영 비밀로 할 수 있다.
‘서진이네’를 시청하다 보면 회차가 거듭될수록 새로운 메뉴를 내놓곤 하던데, 아빠에 대한 막내의 환상을 깨지 않으려면 미리미리 다음 회차의 추가 메뉴를 파악해 놓아야겠다. 먹는 것에 항상 진심인 막내여서 물어볼 게 불 보듯 뻔한데, 너무 구체적으로 물어보면 나도 당황할 수 있으니까.
대신, 더운 여름 지나고 낙엽의 계절도 지나 눈발 날리는 어느 추운 날,
아이슬란드의 꼬리곰탕을 압도하는 아빠 추억 속의 꼬리곰탕을 꼭 사줘야겠다.
자주 먹던 음식처럼 막내에게 거드름 피며 먹어보라 하겠지만, 그 곰탕이 막내에게도 나에게도 맛을 느낀 첫 번째 꼬리곰탕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