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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스파 Jun 07. 2024

어른이 된다는 것, 슬픔을 추억할 수 있다는 것.

오전 이른 시간에 학원 A선생님으로부터 문자가 도착했다.

항상 일과 시간이 아닐 때 오는 문자나 전화는 불길한 기운과 함께 찾아온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이번 주 수업을 하지 못할 것 같은데, 경황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단 내용이었다.

이것저것 생각할 게 뭐가 있겠는가? 

아무 걱정 하지 말고 할아버님 마지막 배웅 잘해드리고 오시라 말씀드리고 나서, B선생님께 대체 수업 가능한 지 여쭈어 보았는데 흔쾌히 가능하다 하셨다.

일주일 후 A선생님께서 다시 학원에 출근하셨고, 덕분에 할아버님 장례 잘 치르고 왔다고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그로부터 일주일 후 오전 일찍 이번에는 B선생님께 문자가 왔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수업이 어렵겠다는 문자였는데, 마찬가지로 걱정 말고 다녀오시라고 답을 하고선 A선생님께 대체수업 가능하신지 여쭤봤고 이번에도 다행히 스케줄을 조금 미뤄 가능하게 하겠다는 답을 들었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었다.

몇 주 사이에 선생님 두 분이 집안 어르신이 돌아가신 같은 사유로 서로 대체 수업을 한다는 게 말이다. 

    

선생님들께서 모두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이번 주에 두 분을 각각 뵙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분 모두 젊은 선생님들이셔서 가족과의 이별로 장례를 치른 경험이 처음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냥 3일간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고, 다 큰 줄 알았는데 어떻게 슬퍼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더라고 이야기했다.     


“저도 17년 전쯤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염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슬퍼할 겨를이 없었어요. 

그냥 눈물도 마르고 감정도 마르고 사람은 북적대고, 선생님들처럼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장례를 모두 치르고 나니까 그때부터 너무 슬픈 거예요. 


아버지를 집에서 가까운 현충원에 모셨기 때문에 3~4년은 매주 갔던 거 같아요. 

비가 와도 눈이 와도 한 번도 거르지 않았어요. 

가지 않으면 보고 싶고 슬픈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을 때, 잠들기 전에, 혼자 있을 때 아버지 생각이 나서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집사람이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내더라고요. 

매주 현충원에 가는 거..... 아이들도 자기도 너무 힘들다고요.      


그동안은 아버지 얘기를 누구도 꺼내지 않고 거의 금기시했었죠. 

제 슬픔이 크다는 걸 가족들이 알고 있었기에 아무도 역린을 건드리지 않으려 한 거죠.


집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저만 생각한 그동안이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다른 식으로 아버지를 추억했습니다. 


그냥 아버지가 많이 사랑하던 큰 아들(손자)에게 할아버지 얘기 잊지 않게 들려주고,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반찬 나오면 좋아하셨다 얘기하고요, 과거에 함께 했던 좋은 것들을 혼자 삭히지 않고 밖으로 꺼내기 시작했어요. 17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립고 보고 싶고 마음 가득한데, 좋은 추억을 꺼내기 시작하니까 마냥 슬펐던 마음에 그리움이 덮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추억이 되더라고요. 

     

장례를 끝내고 난 다음 지금 선생님의 아버지, 어머니가 저처럼 견디기 힘든 슬픔과 매일 싸우고 계실 거예요. 슬픔이 추억으로 포장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 힘든 시기에 가장 힘이 될 수 있는 존재는 자식입니다. 부모님의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을 선생님께서 잠깐씩 덜어드리거나 나눌 수 있습니다. 

자주 내려가 뵙고 전화도 자주 하세요. 

할아버지(할머니) 모신 곳에 함께 가셔서 같이 슬퍼하고 또 같이 추억하세요. 부모님이 각자 혼자 생각하지 않고 많은 것들을 밖으로 꺼내 함께 하기 시작하면, 슬픔과 아픔이 추억으로 변하기까진 저만큼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이번 주말 두 선생님 모두 부모님을 뵈러 내려가신다 한다.

좋지 않은 일을 우연찮게 함께 겪고 있지만, 슬픔을 조금 더 정성스럽게 포장하여 추억으로 만드는 일을 잘들 해내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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