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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석 Aug 07. 2022

쓸데없는 아름다움에 관한 영화

AFTER YANG

- What makes someone Asian?


    양이 줄곧 스스로 해왔던 질문이다. 에이다는 양이 미카의 헤리티지를 위해 고민한 것이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관객들은 조금 다르게 생각할 것이다. 단순한 지식이 아닌 진짜 기억을 원한 양은 무엇이 아시아인을 정의하는지, 인간을 정의하는지 끊임없이 생각한다. 로봇이 하려던 말을 잊을 리가 없고, 자신은 괜찮다고 위로할 리가 없다. 많은 SF영화와 소설에서 로봇, 휴머노이드, 테크노, 안드로이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은 항상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 동명의 원작 소설에서 온 이 영화 속 양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특별한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정체성을 찾으려 모험을 나서지도, 그 의지를 내보이지도, 슬퍼하지도 화내지도 않는다. 그저 생각한다.

    무엇이 아시안을 만드는 걸까. 문화 테크노인 양은 가지와 나무를 이어주는 테이프가 된다. 그리고 그들이 완전히 붙었을 때 비로소 역할을 다한다. 붙어 하나가 되었다고 해도 이전 나무의 성질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잊지 않게 해주는 역할 또한 양이 한다. 도구일 뿐인 양이 어느 시점부터 테크노 사피엔스인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된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인간처럼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진짜 기억을 갖고자 한다. 양 이외의 다른 테크노들이 양처럼 메모리 뱅크를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수십 년간 쌓아온 메모리를 가지고 있고, 그를 바탕으로 행동하고 말한다. 인간도 과거의 일을 모두 기억하지 못하지만 선별적으로 남긴 기억을 꺼내 그를 바탕으로 행동한다. 그렇다면 인간과 테크노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양과 제이크가 함께 차를 마시는 장면이 등장한다. 제이크가 대학 시절 봤다는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하며 말하는 모습을 본 양은 말한다. "I wish Chinese tea wasn't just about facts for me." 입력된 지식이 아닌 진짜 기억을 갖고자 한다. 제이크처럼. 기억을 가지고 회상하기도 하고 미화하기도 하고 웃고 떠들기를 원한다.

    테크노 사피엔스가 하루에 몇 번씩 몇 초동안 영상을 기록한다. 그저 지식을 전달하고 문화를 연결해주는 역할만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그들만의 기준으로 영상을 기록하고 저장한다. 인간들의 오해였다. 물고기는 지능이 떨어져 뭐든지 금방 잊는다고 한다. 방금 전 먹은 먹이를 기억하지 못하고 먹이를 주면 또 먹는다. 인간들의 오해였다. 물고기는 생각보다 지능이 높아 몇 개월간 기억할 수 있고, 기억을 못하고 먹이를 또 먹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식욕이 좋은 것이다. 인간은 이 세상 모든 것을 그들의 기준으로 생각한다. 게다가 테크노는 자연 발생된 것이 아니라 인공물이기에 더욱 그들의 오해를 부정했을 것이다. 인간은 기억하고 싶은 걸 기억하고 가끔 미화도 하며, 그 기억을 회상하며 즐거워하고 행복해한다. 양도 그가 기억하고 싶은 걸 기억하고 그 기억을 회상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찾기도 한다. 사실 인간의 기억도 96분짜리 영화처럼 연속적인 형태로 있지 않다. 때로는 사진처럼, 때로는 짧은 영상처럼 기억된다. 양이 몇 초간의 영상으로 자신의 기억을 만드는 방식이 과연 인간의 기억과 얼마나 다를까? 

    변화를 거부했던 제이크는 양을 핑계로 다음으로 나아가자는 키이라의 잔소리에서 벗어나려 하고 애써 그를 무시한다. 양을 핑계로 현재 상태에서 머물러있길 원했지만 결국 변화하고자 했던 양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비로소 변화한다. 매 순간 성장하는 인간을 보는 것이 좋았지만 그 변화 끝에는 이별과 상실, 죽음이 있고, 그 옆에 그대로인 자신을 발견한 양은 마치 고장 난 것처럼 우울에 빠진다. 항상 답이 존재하는 양은 매 순간 변덕을 부리는 인간이 좋고, 그런 그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물에 넣은 찻잎이 어떻게 부풀었다 떠오르고 가라앉을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그림자가 어떻게 생길지, 빗방울이 어떤 모양으로 떨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변하는, 예측할 수 없기에 아름다운 것들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상기한다. 로봇과 다르게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쓸데없음'이다. 쓸데없이 걱정하고, 쓸데없이 옆집에 관심을 갖고, 쓸데없이 풍경을 바라본다. 그 쓸데없는 것들을 기꺼이 기억하는 양이야말로 인간 그 누구보다 인간답지 않은가. 양이 인간이 되고 싶어 한 적은 없냐는 제이크의 질문에 에이다는 인간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다른 모든 존재가 인간이길 원하냐며, 너무 인간적인 질문이지 않냐고 답한다. 양은 인간이 되기보다는 인간처럼 쓸데없는 것을 하길 원한다. 그 쓸데없는 것들이 사실은 아름다우니까. 


- Are you happy, 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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