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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몰라 Feb 23. 2024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한. 그래도 꼭 필요한.

제대로 보지 못한 사람

 우리 엄마는 좋은 엄마였다. 늘 아침마다 새로 지은 따뜻한 밥과 국, 그리고 끼니마다 새로운 반찬으로 식탁을 가득 채워 줬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항상 갓 구운 빵이 있었다. 본인은 찢어진 팬티를 입을지언정 딸들은 백화점에서 옷을 사줬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부족하진 않게 살 수 있게 해줬다. 그런데도 나는 그런 엄마가 미웠다. 남들은 부족함 없는 사랑을 받고도 그런 말을 하냐고 타박하겠지만 나의 마음은 그녀를 밀어내고 싶어 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했다. “왜 그러니.” 보다는 “그 정도면 충분해.”라는 말이 필요했다. “어휴, 답답해.” 말고 “그래, 그럴 수 있어.”라는 말이 듣고 싶었다. ‘다름’을 이해 못 하는 엄마가 싫었다. ‘부족함’을 인정해 주지 않는 엄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리 아빠도 좋은 아빠였다. 무뚝뚝한 표정 안에 숨겨진 다정함이 있었다. 언제나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며 우리도 그의 뒤를 따를 수 있게 도와줬다. 물려줄 재산은 없어도 배움에서만큼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지지해줬다. 그런데도 나는 그런 아빠가 답답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품에서 자라지 못한 아빠가 ‘효자’라는 단어에 얽매여 살아 싫었다.

 그 단어에서 벗어나길 바랐다. 일찍이 아버지와 장인어른을 여의고 남은 모든 식구를 본인이 책임지고 살아야 한다는 마음을 안고 사는 것이 안쓰러웠다. 좀 더 자신에게 집중해서 살지 못하는 아빠가 바보 같았다.


 좋기도 하면서 싫기도 한 그 둘과 사는 것이 불안하고 힘든 시기가 있었다. 대학 졸업 이후였다. 부모님은 매일 싸웠고 덕분에 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살았다. 그때 그들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 없이 혼자 사는 것이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막상 그 집을 나와 혼자 살자니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다. 그래서 나는 결혼을 택했다. 나를 그곳에서 꺼내줄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그들과 떨어져 산다는 것이 슬프지도 아쉽지도 않았다. 마냥 좋았다. 편했다. 이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은 듯했다. 남편과 아주 가끔 부딪히는 일이 있어도 괜찮았다. 하루하루 긴장하며 사는 그때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렇게 독립했고, 나도 엄마가 되었다.

 자궁 내 자리 잡은 아기집 안에서 보이지 않던 존재가 “나 여기 있어요.” 반짝거리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진료실 안을 크게 울리던 그 심장 소리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마냥 예쁠 것 같던 그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는데 생각 이상으로 나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내가 조금만 꽉 쥐어도 부러질 것 같던 그 아이가 그럴 줄 몰랐다.


 나를 키우면서 엄마가 종종 내뱉던 말이 있다. 

 “너도 너랑 똑같은 딸 낳아 키워봐.”

 그 말이 정말 싫었다. “나 같은 딸? 생각만 해도 좋은데?” 하며 반항하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엄마랑 똑같이 내 딸을 향해 말한다.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지만 속으로 얼마나 많이 외치고 있는지 모른다.


 이제 조금 알겠다. 때론 한없이 넘치는 부모였고, 가끔은 한없이 부족한 부모였다. 그런데도 별일 없이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지지해주고 응원해줬다. 부모가 되는 그 어려운 일을 우리 부모님은 별 탈 없이 해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그것들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진심으로 감사할 일이었다.

 여전히 엄마의 모진 말이 내 마음속에 남아 문득 떠오른다. 아빠는 우리보다 자신을 등진 부모님을 더 소중하게 생각했다는 서운함이 지금도 남아있다. 가끔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으로 ‘왜 저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들이 좋다. 이제는 육십이 넘고 칠십이 넘은 엄마와 아빠의 늘어난 주름살과 굽은 등을 볼 때면 찡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제야 엄마의 말과 아빠의 마음이 이해된다. 내가 그토록 듣기 싫었던 그 모진 말들은 먼저 살아본 인생의 선배로서 엄마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했던 것이라는 것을. 비록 사랑은 듬뿍 받지 못했지만 어쨌든 내 부모니까 내 가족이니까 눈 감을 수 없었던 것이라는 것을.

 철없던 시절 친구들의 부모님과 나의 부모님을 끝없이 비교하며 우리 엄마, 아빠는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미웠고, 싫었다. 그래도 엄마가 내 엄마라서 다행이고, 아빠가 내 아빠라서 다행이다. 

 그렇다. 그들은 좋으면서도 싫은, 싫으면서도 좋은. 차라리 없었으면서도 좋겠다가도, 진짜로 갑자기 사라지게 될까 봐 두려운. 오만가지 감정을 내가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존재. 내 마음에서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존재다. 밉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고마운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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