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보지 못한 사람
뒤늦게 대학생이 된 나는 거의 매일 친구들을 만났다. 그날도 그랬다. 사당역에서 친구들과 폭풍 수다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그냥 지나치던 그곳이 그날따라 눈에 띄었다.
“타로 상담.”
나도 모르게 길가에 있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몇 개의 카드를 골랐고, 그 카드에 대한 해석을 대충 들었다. 그런데 내 앞에 앉아있던 그녀가 했던 마지막 한마디는 평생 잊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학생은 나중에 결혼하게 되면 꼭 보험을 많이 들어놔. 남편과 사이가 너무 좋아서 신이 질투하네. 그래서 그 남편을 일찍 데려갈 거야. 명심해. 보험이 많아야 배우자와 오래 살 수 있어.”
그때는 “아니 저 할망구가 뭐래?” 하면서 나왔지만, 그 말이 꽤 신경 쓰였고 지금도 그렇다. 정말 지금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남자를 빨리 데려갈까 봐 두렵다.
연애 7년, 결혼 생활 9년.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 함께 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다툰 일이 손에 꼽는다. 그의 배려와 기다림 덕분이다.
나를 숨 막히게 하는 그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결혼했다. 그렇다고 도피만을 위해 선택한 남자는 아니다. 차가운 표정에 말도 없는 그는 겉보기와 다르게 나에게만큼은 따뜻했다. 늘 언제나 내 편이었다. 가끔 객관적인 시선으로 던진 그의 말에 내가 토라지기라도 하면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줬고 기다려 줬다. 그런 그가 편하고 좋았다.
언제나 그가 좋은 것은 아니다. ‘아휴, 저 원수.’ 하면서 뒤에서 눈을 흘기기도 하고, ‘그래. 너는 역시 혼자 살아야 하는 남자였어.’ 하면서 답답한 가슴을 내리치기도 한다. 그래도 우연히 내 옆을 지키게 된 이 남자가 영원한 내 짝꿍이 되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이런 나의 마음을 우리 집 꼬맹이에게 들켰을까.
“엄마는 아빠만 좋아해! 흥!”
아빠와의 사이를 질투하는 이 아이는 나와 전혀 다른 성향의 사람이다. 그로 인해 너무 힘들었고, 내가 아이를 왜 낳았을까 후회하며 많이 울었다. 이 아이로 인해 얻은 행복도 있었지만, 고통이 그 행복을 이기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의 마음에 우울증이 다녀간 것 같다. 그때는 몰랐다.
아이와의 소통이 가능해지기 시작하면서 내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엄마, 나 좋아해? 엄마, 나 사랑해?”
“엄마는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나는 엄마가 화내도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난 엄마 옆에 붙어서 평생 살 거야.”
발음도 정확하지 않은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한 마디 한 마디는 내 마음을 후벼 팠다. 내가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내 마음을 아낌없이 퍼주지 못한 아쉬움과 미안함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내가 부모님께 그토록 바라던 인정과 사랑을 아이도 똑같이 원하고 있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나는 매일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고맙다고 말한다. 그리고 뼈가 으스러지도록 안아준다. 그런 내게 딸이 말한다.
“엄마도 공부하니까 조금 변하네?”
나와는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는 이 아이가 나를 엄마라고 불러줘서 너무 좋다. 이제 9년째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 작은 아이가 사십 년을 넘게 살아온 어른을 변하고 성장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는 이 사실이 놀랍고 감사하다.
때론 서로를 향해 얼굴을 찡그리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이 관계가 너무 소중하다. Uki의 아내여서 좋고, 꿀꿀이의 엄마여서 좋다. 그들 때문에 웃고 우는 이 하루가 나를 일으켜 세워 준다.
“당신들 덕분에 내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