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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바람 Aug 06. 2024

나의 사이코(7)

창작된 심리 스릴러

 “언니는 이렇게 이야기 해도 내가 불쌍하지 않지? 우리 언니 이러다가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처럼 될까 싶어. 언니가 국가 원수가 된다는데 좋은 걸까 나쁜 걸까.”


 한 살 한 살 나이 들수록 점점 단단한 사람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저는 자유가 비아냥거리며 했던 말에 동의했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인생의 방향엔 흔들리지 않고 침묵하는 서른들 혹은 서른 그 이상들 있었습니다. 고깃집에 부를 수 있는 머리수로 보나 인스타그램 좋아요로 보나 여행지에서 종이 비행기처럼 접어 날려 보내온 사진들을 보나 데이트를 하려고 장만했다는 차로 보나 보통 보다 나아 보이는 서른들은 저랑 어울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무리 지어 결혼식장과 장례식장을 주간 회의만큼 바쁘게 이동했고 저를 아버지 손을 놓친 어린 아이처럼 보았습니다. 그들의 침묵은 마치 어린 아이와는 놀지 않겠다는 굳건한 행동 방침이었습니다. 


 그런 서른들 혹은 서른 그 이상의 사람들을 닮겠다고 기를 쓰고 노력하는 모습을 자유가 감지할 걸까요. 할머니가 되어 영국 총리가 된 마거릿 대처에 빗댄 것은 지나친 것 같았지만 말입니다. 자유가 무엇을 원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그것을 내줄 수 없는데, 희망을 주는 말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전화기 너머에서 유약한 모습을 들킬까 봐 입가에 힘을 풀고 무표정을 유지했습니다. 


 언제나 나이든 사람들을 올려다 보면서 어떻게 해야 어서 어른이 될 수 있는지, 레이저 시술과 보톡스가 필요 없는 이십 대의 피부 뒤에 마거릿 대처와 같은 나이 할머니의 영혼을 모실 수 있는 건지 질문하고 답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제 일란성 쌍둥이 동생 홍자유가 영원히 아이로 남고 싶어 했으며,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이 사물을 정확하게 보고 곧이곧대로 말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 날 이런 쓰레기같은 곳에 가둘 수 있어?” 


 동생이 그녀를 둘러싼 현실을 느껴지는 대로 감정을 표현하면 저는 용이 뿜는 입김에 온몸이 불살라지는 것처럼 아팠습니다. 그날은 동생이 두 번째로 입원했던 날이었고, 동생이 묘사한 바에 따르면 간호복을 입은 남자들이 작은 병실로 몰려와 동생을 침대에다 묶었다고 합니다. 침대의 네 기둥에 줄을 감아 손목과 발목을 묶은 후 동생의 허리를 비틀어 주사를 놓았는데 살면서 겪은 일 중 가장 수치스러웠다는 것이었습니다. 남자들 앞에서 바지를 내리게 된 것도 문제였지만, 그때 동생은 남성 공포증을 앓고 있다고 자가 진단한 상태였습니다. 의사가 아무리 ‘치료’를 위해 동생을 병원에 묶어 두었다고 설득을 해도 동생의 눈에는 남자 의료진들이 하는 그 ‘치료’라는 것이 아버지들의 훈육처럼 느껴졌나 봅니다.


 “언니가 이러고도 내 가족이야?”라고 동생이 정상적인 가족은 이러지 않는다고 공격하면, 나는 너를 위해 희생해왔는데 제발 좀 알아 달라고 비는 대신 동생만큼 뜨거운 분노로 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손을 들었습니다.


 “왜 내 가족이란 사람들 중 두 명이나 정신병자인 거야! 넌 나에게 바라는 게 너무 많아. 이대로 계속 병원에 가둬 놓고 싶어.”


 “언니는 건강해서 한 번도 가둬진 적이 없으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야. 내가 언니를 얼마나 질투하는지 언니가 느꼈으면 좋겠어. 나도 언니처럼 안정적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싶었단 말야. 언니 난 오십 살 엄마도 질투해봤어. 그게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언니가 알아? 동네 수영장에 가서 친구를 사귀고, 마트에서 최저 임금 받으면서 일하고, 남는 시간에 차를 몰며 치매 걸린 할머니와 나를 병원에 실어다 주는 삶을 부러워 했다고!!!! 내 젊음이 휴지조각처럼 아무런 쓸모가 없어졌담 말야!!!”


 그리고 일 년이 지났습니다. 배우처럼 위장에 든 감정을 모조리 쏟아내던 동생이 머리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영양보조식품이랑. 몸에 좋은 과자를 보내줘. 요즘엔 고구마나 두부로 과자를 만들던데 그런 거. 없으면, 단백질 과자라고 광고하는 것들도 좋아.”


 “병원에서 식사를 제공해주지 않아? 간식비도 따로 있다고 해서 십 만원이나 입금했는데?” 자고로 저쪽에서 예의를 갖추면 이쪽에서 예의를 갖추기 쉽습니다. 여태껏 저쪽에서 무례했던 탓에 이쪽에서도 똥을 던지곤 했지요. 질펀한 진흙탕 위에서 이 구린 곳을 어떻게 하면 빠져나갈 수 있을까 고민했을 때, 그 어려운 일은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 넣으며 뾰족한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는 이 자매와 협력해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또 인정했습니다. 거듭되는 실패가 저를 비굴할 정도로 수용하는 사람으로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주는 대로 수용하겠다는 저자세로 가만히 있는데 가까이 있던 사람이 바뀌었습니다.


 “여긴 세 끼 다 먹어도 배가 고파그리고 간식비?” 자유가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밥을 먹어야지 무슨 빵과 과자야!” 자유는 건강에 관한 한엄마나 이모보다 보수적인 사람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네 말엔 모순이 있어그럼 나에게 보내 달란 과자는 뭐야?” 어디우리 원활한 대화를 위해 과자라고 하는 단어의 개념을 정리해보자라는 길로 대화가 빠지자 잠깐이지만 대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요즘에는 소문보다 무서운 것이 SNS인 것 같습니다 제가 자유가 만나는 사람이 다르다 보니 자유에 관한 소문을 들을 기회가 없었지만 바뀐 카카오톡의 프로필 사진이나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이 동생이 연예인도 아니면서 연예인 몸무게가 되겠다고 다이어트를 극단적으로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이 동생이 밀가루도 끊고 쌀도 끊고 하루 1000칼로리 미만으로 먹는다는 걸 자랑스럽게 말하는 걸 보면서저도 모르게 친해지자고 댓글을 남긴다는 게 독한 년미쳤나?’ 하고 말았답니다.


 “지금 검색해 보니까나오긴 나오네고구마 칩두부 과자이건 뭐 과자 아니야?”

 “그게 밥이지여기 밥은 쓰레기고.”

 “지랄한다.” 지랄까지는 자매 사이에 괜찮겠지요제 동생이 진짜 정신병자이긴 하잖아요정신 차리라고 따끔하게 말해줄 수 있는 거 아닐까요


 “어디 현미밥과 닭가슴살까지 보내 달라고 해봐너 그것들 꼼꼼하게 적어 내려 월말 가게부를 써 본 적 있어난 네가 제발 한 번이라도 가게부를 써 보길 바라그래야 내 입장을 이해하지.”


 “현미밥과 닭가슴살 같은 건 식중독을 일으키는 미 가공 식품으로 분류 돼반입 가능했다면 부탁했겠지겨우 일주일인데 몸이 퉁퉁 붓고 있어." 자유의 목소리 톤에서 음울한 정서가 감지되었습니다.

 "화장실에 가도 똥이 안 나오는데 나만 이런 게 아니야전부 병동에서 운동을 못해서 변비인 와중에 우리 방은 화장실 바로 옆이다다 비닐 포장된 과자와 유통기한 있는 빵 먹은 사람들이야똥이 돌 같아서 항문을 손으로 쑤신다고.”


 따끈따끈한 다큐멘터리를 처음으로 시청한 사람처럼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진짜야?"


 자유가 말을 멈췄습니다자유가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우리의 대화가 언제나 그런 패턴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미안해. 내가 거짓말을 너무 많이 했지?”

 “거짓말도 많았지만 넌 연기를 너무 잘 해.”


 자유가 듣고 싶던 칭찬을 들었다며 웃었고 저도 따라 웃었습니다. 웃음이 끝나고 정적이 찾아 왔을 때 자유가 허망해서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난 예술이 뭐라고 반 고흐처럼 살고 있냐.”


 전화를 마치고 포스트 잍을 들어 키보드로 빠르게 그 메모를 써 내려갔습니다. 배송 빠른 인터넷 쇼핑몰을 골라 몇 분만에 주문을 마쳤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말은 줄이고 지갑은 열라고 하던가요. 돈으로 사랑하면 좋은 점은 무감각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아프지 않은 건 좋지만 돈을 더 벌기 위해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밀려 옵니다. 이만하면 쉬어도 된다는 사람도 안 보이고 머물 수 있는 집도 없는 것 같습니다. 돈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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