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란성 쌍둥이 동생이 조현병으로 입원을 했다.
*사이코 : 과거에 만난 남자들 험담을 여기저기 퍼뜨리고 다니는 매력적인 여자. 살다가 그녀를 만나면 얼른 차단하길 권한다.
제 남자친구 이름은 권종현입니다. 종현이를 만나기 훨씬 전부터 제게는 극복하기 어려운 자격지심이 있었습니다. 그 자격지심은 타고난 가정환경 탓에 가지게 되었습니다. 만약 세상이 커다란 결혼정보회사라면, 부양해야 할 식구가 있는 이십 대 여자는 결혼 상대로 결함 있는 상품이었습니다. 저는 성향 상 거짓말은 못하는 편이라 없는 말을 지어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솔로였을 때 남자 쪽에서 굳이 물어보지 않는다면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겠다는 전략을 미리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현실에서 남자들과 데이트를 하면 진실의 물약을 먹은 바보처럼 술술 불게 되었고, 대화의 티키타카가 잘 맞아 불꽃이 튀던 중 돌연 싸늘해지는 고비를 못 넘고 카톡방에서 도망쳐 그 남자를 차단하곤 했답니다.
멀쩡하게 생겨선 연애를 못하는 절 보며, 친구들은 문제가 뭐냐고 물었습니다. 두 사람 중 한 명에게서 문제점을 찾아야 했을 때 저는 자기 연민에 빠져 만났던 남자들이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한 제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최저임금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습을 보며 무시하는 것 같았다고, 무슨 말을 하는지 통 모르겠는 책 이름을 말하며 한참 동안 독백하는가 하면 프랑스어나 스페인어를 취미로 배우고 있는데 여행에는 관심 없냐고 물어보더라고 말했습니다. 끝까지 지질하게 싸웠다는 이야기는 감췄고, 연애가 시간 낭비 돈 낭비이므로 성실하게 돈이나 벌겠다는 논리로 저를 변호하며 대화를 마쳤습니다.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새해마다 남자들의 죄를 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차단 해지 버튼을 누르고 언제든지 그들이 연락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정말로 연락해 온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그중 몇몇은 프로필 사진으로 웨딩 사진을 걸었고 그로써 문제가 저쪽이 아닌 제게 있었음을 증명해 냈습니다.
스물여덟이 되었습니다. 제 인생에 건강한 연애운이 있긴 한 건지가 궁금해 사주를 보러 갔습니다. 사주를 봐주던 그 사람은 별 볼일 없는 남자들이 아닌 괜찮은 남자를 만날 수 있는 해로 스물여덟인 올해를 예지 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올해 봄 음료수를 사들고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던 저를 종현이가 쫓아왔습니다. 종현이는 결코 외향적인 성격처럼 보이지 않는 은근한 목소리로 핸드폰을 내밀었습니다. 이십 대 초반이면 몰랐을까. 스물 여덟인 저는 그 행동이 무슨 의미인지 뻔히 알고 있었습니다.
물이 중력의 힘으로 떨어지듯 자연스럽게 카카오톡 아이디를 내주었습니다. 그때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었습니다. 종현이와 연락처를 교환하고 좌석이 꽉 찬 지하철에 서서 유리창에 비친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차단된 남자들이 죄인이라면 저도 그들에게 죄인이었습니다. 앞에선 또라이였고 뒤에선 사이코였습니다. 시작할 땐 언제나 사랑을 제대로 해보자는 선한 의도가 있었습니다. 종현이는 과연 제 자격지심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마법처럼 종현이가 첫 번째 고비를 넘어버립니다. 그것은 많고 많은 남자 중에서 종현이가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한 남자였기 때문이기도 하며 장남이라 집안의 빚을 갚는 걸 도운 경험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와 말을 나눌 때마다 영혼의 살갗이 엉겨 붙는 것처럼 인생 이야기가 이쪽저쪽으로 오고 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그를 신뢰할 수 없었습니다. 아직까지 저나 종현이나 서로의 얼굴을 보며 ‘사랑해’라는 말을 하지 않았거든요. 우리는 만난 지 겨우 한 달이 안 된 커플이었습니다.
바로 이럴 때, 내 동생이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답니다. 첫 입원도 아니고 만성질병처럼 세 번째로 입원을 했답니다. 그리고 전 동생이 입원을 했다는 사실까지만 종현이에게 알렸답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은색 언덕이 눈앞에 보였습니다. 마침 러닝용 운동화를 신고 있던 저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저 자신에게 꼭 맞는 속도로 달렸습니다. 심장과 다리 근육이 제 뒤로 빨려 들어가는 양옆의 풍경과 쏟아지는 바람을 차분하게 받아들였습니다. 행인들이 나무 한 그루 없는 지하 통로에서 유일한 장애물이 되어 태연하게 걷고 있었습니다. 방금 달린 언덕보다 더 가파른 경사에 에스컬레이터가 있었습니다. 오른편에 서서 지상까지 도착하길 기다리는 사람들 바로 곁을 걸어 올라갔습니다. 덥고 습한 여름 날씨 때문인지, 빠르게 뛰는 심장이 피를 돌게 해서인지, 뒷덜미가 축축해졌습니다.
마침내 나무 아래 종현이가 저를 보고 일어났습니다. 천사처럼 미소를 지으며 양팔을 벌렸습니다. 저는 종현이의 품에 달려들었고 그의 어깨너머로 종현이가 벤치 위에 올려둔 까만 비닐봉지를 보았습니다. 나와 종현이는 단 한 번도 기브 앤 테이크를 놓고 토론한 적이 없었습니다. 둘 중 누가 더 좋아하는지, 더 헌신하는지를 토론해서 알아내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날은 종현이가 절 돈으로 사랑하는 날이었습니다.
비닐봉지를 풀어 헤치자 제가 최고로 애정하는 한국 음식 떡볶이가 나왔습니다. 우리가 앉아 있는 연남동 벤치는 개울을 따라 끊김 없이 이어져 있었고, 용처럼 기다란 벤치에 다른 커플도 앉아 있었습니다. 떡볶이가 뭐라고, 군말 없이 떡볶이를 사 온 남자친구가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 준 것처럼 애틋해졌습니다.
우리 여자들은 다 알잖아요. 소녀 시절 한 번쯤 떡볶이 집 사장님에게 시집가겠다는 생각 해보지 않았나요?
“그럼 다음 주일엔 우리 못 보는 거네?”
“응. 주말엔 병원 진료를 안 한대.”
“그래서 경기도로 반차를 내고 가는 거야?”
“응… 의사 이야기도 듣고 동생 얼굴도 보고 그러려고.”
우리는 연애 초반이었고 주일에 한 번 주말에 한 번 데이트를 했습니다. 주 2회 데이트는 종현이가 원하는 바였고, 처음에 전 우리가 서로를 너무 많이 본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주일에 이틀이나 목적 없이 종현이만 바라보며 논다면 자기 계발은 언제 하고 돈은 언제 버냐고 생각했지요. 돈을 못 벌면 결혼을 못하고, 결혼을 못하면 어차피 나중에 헤어질 거라고 생각했답니다.
이윽고 연애 초반이 무르익으면서 종현이는 제가 결혼이라고 말할 때마다 부담스러워했습니다. 상대방이 싫어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연애였기 때문에 결국 결혼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금지어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종현이를 만나는 모든 날은 자본주의라는 폭풍 속으로 들어가는 도전이었고 대중음악과 에어컨 바람을 뱀의 혀처럼 휘갈기는 핫플레이스를 두 손 꼭 잡고 용기 내 걷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런 달콤한 모험은 그 시간을 제외한 남는 시간마다 주 40시간 정규직으로 일하며 빚어낸 창조물이었습니다. 너랑 하는 데이트가 나도 무지 좋긴 한데 일주일에 이틀이나 보는 게 옳을까? 하다가 어떤 결론도 내지 못하고 모든 데이트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다가 막상 주 2회 데이트라는 규칙을 제 쪽에서 먼저 깨뜨려야 하는 날이 온 겁니다. 우리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종현이가 말했습니다.
“내가 누나라도 동생이 아프다고 하면 달려갈 거야.”
“잉? 왜?”
“당연히 달려가야지. 누나 동생! 누나와 똑같이 생겼다며. 얼마나 예쁘겠어? 하지만 내 동생이면 엄마한테 맡긴다. 동생한테도 그게 나을 거야. 내 동생은 나 별로 안 좋아하거든.”
우리는 킥킥 웃었습니다.
저는 이마 선을 따라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종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습관이 저에게 있단 걸 아는 종현이가 긴 속눈썹을 살짝 내려 눈길을 피했습니다. 긴 속눈썹 뒤로 갈색 눈동자가 보였습니다.
‘넌 날 하루아침에 배신할 수 있어.’
과거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바보처럼 사이코를 좋아하게 되었답니다.
‘나는 널 절대 배신하지 않겠지. 너와 영원히 함께 하거나, 네게 차이거나, 둘 중 하나가 나의 운명이 될 거야.’
보통 남자들이 차이고 여자들이 찬다는 데 저의 경우 드물게도 남자들에게 숱하게 차였답니다. 사이코라서. 집착했고 의심해서. 결혼으로 그들을 묶어두려 해서.
‘정말로 네가 날 배신한다 해도 난 괜찮을 거야. 여긴 서울이고, 돌멩이가 발에 차이 듯 남자들이 추근대는 대도시거든.’
손가락을 뻗어 그의 땀을 닦았습니다.
‘사랑해.’
수많은 상념들 속에서 가슴이 하는 말을 건져냈습니다. 너무 많은 실패를 거듭한 사람이야 말로 작은 것들 하나하나 섬세하게 느끼며 고마움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해야 하는 말은 이다음 소비에 관한 암시였답니다.
“덥지? 음료수는 내가 살게.”
종현이가 제 손을 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