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란성 쌍둥이 동생이 조현병으로 입원을 했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그 과정은 방에 곰팡이가 피는 것과 비슷할지 모릅니다. 제가 처음 자취를 시작했을 땐 자취가 첫 경험자들에게 불친절한 일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365일이 지나 엄마가 도와주러 왔을 땐 방 귀퉁이 한쪽이 곰팡이한테 점령당한 뒤였답니다.
엄마는 속상해 보였지만 집주인에게 물어주면 될 일이라고 나를 달래며 지갑을 열었습니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진 않아서 그날 엄마에게 곰팡이는 어떻게 생기는 건지를 물었습니다. 엄마는 틈틈이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지 않아 방이 꿉꿉해졌을 때, 여름철 에어컨 때문에 물방울이 맺혔을 때, 샤워를 하고 화장실 문을 열어 두지 않았을 때, 그래서 고인 물기가 방밖을 나가지 못 나갈 때 곰팡이균이 생긴다고 설명했습니다.
동생이 입원한 병원에서 진료 접수를 마치고 깍지 낀 두 손으로 이마를 짚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생기고 있었습니다.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병원 생활이 인생의 일부가 되기엔 제가 너무 어리다는 것과 이런 일은 인스타그램이나 틱톡에 자랑할 수 있는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들이었습니다.
곰팡이를 제거했을 때처럼 비밀도 제때 제거해주어야지, 속에 품고 살면 영혼에 상처가 납니다. 링거를 단 사람과 휠체어 바퀴를 굴리는 사람, 그들을 둘러싼 보호자와 하얀 콘크리트 건물들이 보였습니다. 동생의 존재와 그녀의 불우함을 공기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동생이 누군가를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에 이 이상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게 만드는 가시 갑옷처럼 병원 건물에 압도당했습니다.
배가 부른데 배가 고파서 초콜릿 바 껍질을 벗겨 한 입 베어 물었습니다. 설탕이 설탕을 부르고, 밀가루가 밀가루를 불러서 병원 편의점으로 뛰어가 똑같은 과자를 '2+1'으로 세 개나 구매했습니다. 대기석에 앉아 미친듯이 과자를 먹는데 세 번째 과자를 먹을 때 누군가가 초콜릿 바를 쥔 손에 손을 얹었습니다.
"너무 빨리 드시는 것 같아요. 무슨 일이예요?"
모르는 인물에게 폭식하는 모습을 들킨 저는 민망해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어떻게 본다면 상대방이 괜한 오지랖을 부린 상황이었는데도 고개 숙이는 사람은 저였습니다.
"그게. 제가 스트레스 받으면 먹는 걸로 푸는 편이라서요."
아주머니의 눈을 보는데 그 눈에는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사정을 알겠다는 연민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아가씨를 보니까 우리 딸이 생각났어요. 혹시 가족이 병동에 입원해 있나요?"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제 딸도 병동에서 지내고 있어요. 벌써 5년째예요."
깜짝 놀라서, 말을 자르고 질문을 했습니다.
"이 병원에 5년이나 입원을 했다고요?"
아주머니가 주저하듯 말했습니다.
"아니요. 입원을 한 햇수가 5년인 거죠. 애가 사회에 못나온 햇수요. 시설에서 시설로 옮기고 또 옮겼어요. 처음에는 금방 꺼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이곳이 병원인지 감옥인지 모르겠어요. 제 딸이지만 점점 제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겠거든요."
동생도 이 병원이 교도소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왜 그런 인상을 받은 건지는 두고두고 물어봐야 할 것 같았습니다. 환자와 보호자들이 하는 말만 듣고 병원 전체를 악의 소굴로 매도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대신 다른 것이 궁금했습니다.
"아까 저를 보며 딸이 생각났다는 건 무슨 말인가요?"
"제 딸도 먹는 것에 집착이 심하거든요. 나이가 스물 여덟인데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어제 밤에는 같은 병동을 사용하는 친구가 먹고 있던 두부 과자를 나눠줬는데, 그게 너무 맛있더라. 사주면 안 되냐고 조르더라고요. 웬 부잣집 아가씨가 얼마 전에 입원을 했다나 봐요. 저도 아이가 원하는 만큼 사주고 싶은데 그 집에서 그 아가씨한테 사주는 만큼 딸한테 해줄 수는 없었죠. 가족 중에 저 혼자 일을 하고 있거든요. 남편이 대장암 말기라서요."
저는 두부 과자라는 단서를 듣고, 그 부잣집 아가씨를 먹여 살리는 사람이 저라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정작 저는 집도 없고 차도 없고, 정부가 청년 자립을 지원한다며 만든 예금 상품들에 저축하느라 생활비를 아끼며 살고 있었으니 굉장한 오해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부잣집 아가씨들에 관한 아주머니의 믿음을 건드렸을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미지수였던 지라 다른 질문으로 대화의 방향을 돌리기로 했습니다.
"스물 여덟이면 직장 생활을 해야 할 나이인데 병원에 5년이나 입원시킨 이유가 있어요?"
"직장 생활요?"
아주머니가 갑자기 콧방귀를 끼면서 돌변했습니다. 마치 내가 역린을 건드린 것처럼 눈에 노기를 띄며 소리쳤지요.
"우리 딸은 절대 그런 거 못해요. 아가씨가 아직 아기를 안 가져 봐서 모르는 거예요."
바로 그때 컴퓨터 앞에 서 있던 간호사가 모르는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 이름을 듣고 아주머니가 진료실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걸어갔어요. 기분이 최악이었습니다. 그 아주머니와의 대화가 남긴 경고는 잘못하면 내 동생이 5년이나 퇴원하지 못할 수 있으며, 제가 바로 그 병원 시스템의 톱니바퀴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제게는 그럴만한 소질이 있었습니다. 동생이 병원에 입원할 무렵 저의 가치관에 변화가 찾아왔거든요. 그 가치관은 전 팀장이 위로금으로 40만 원을 주었을 때, 동생과 남자 친구에게 지출된 내역들을 가계부로 받아 적었을 때 더욱 강해졌습니다.
예전에는 저와 놀아주지 않던 사람들이 다가왔고, 제 곁에 머물며 편안하게 대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부자가 되는 것이 선한 삶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집 얘기, 차 얘기 그리고 여자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 곁에 여자가 왜 없냐며. 괜찮은 여자는 어디서 만날 수 있냐고 소개팅 주선을 부탁했습니다. 만약 제가 집과 차를 원하고 남자친구와의 결혼을 계획하는 계산적인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들과 그런 대화를 나누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눔과 동시에 전부터 어울리던 사람들과는 소통이 단절되었습니다. 그런 사람들 중 한 무리가 정신 질환 환우를 가족으로 둔 보호자들 모임이었습니다. 그들은 병원 이야기를 좋아할 사람이 없는데, 병원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살았습니다. 그들의 이야기에는 해피 엔딩이 없었습니다.
반대로 부자가 꿈꾸는 남자들의 이야기에는 낙관주의가 있었습니다. 경제 전문가들은 오늘 당장 불경기라도 호경기는 반드시 돌아온다고 주장하지만 간호 전문가들은 환우의 죽음 말고 간병의 늪에서 탈출할 이야기를 써내지 못합니다. 사실 그런 이유로 저는 남자들의 이야기에 생명을 엄마들의 이야기에 침묵을 배치하며 살았습니다.
만약 그런 가치관 변화가 없었다면 그날 JDI 병원 원장과 나눈 대화는 완전히 다르게 흘렀을 겁니다. 이마가 시원하게 드러난 기름진 구릿빛의 원장은 덩치가 컸고 하얀 가운이 꽉 끼는 것처럼 겨드랑이와 팔꿈치에 주름이 잡혀 있었습니다. 눈가의 주름은 그가 평소에 잘 웃는 사람처럼 보이게 했고 얼굴 전체에 잡힌 살은 남 모를 스트레스와 식탐 그리고 운동 부족을 연상하게 했습니다. 그날은 이상하게도 관상 같은 걸 따지며 JDI 병원 의사가 예전에 미웠던 사람의 얼굴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컴퓨터 뒤에 앉아 있는 원장이 말했습니다.
“다행히 동생분은 치료에 협조적입니다.첫날 입원했을 때만 해도, 이 환자는 대체 언제 나갈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는데 말입니다. 좀 독특했거든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네. 첫 날에 간호사, 환자 다 보는 장소에서 제게 달려들었어요. 온갖 욕을 쏟아 붙고 발길질도 하고. 그런데 또 하는 말에 욕만 있는 건 또 아니었어요. ‘너도 일론 머스크 테슬라 자동차가 갖고 싶냐? 이미 한 대 주차장에 장만해놨지?’라고 묻더라고요.
일론 머스크?
동생의 관심사와 성향을 생각할 때 일론 머스크란 단어는 정말로 뜻밖이었습니다. 동생이 일론 머스크를 좋아할 것 같지도, 존경할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동생은 싱어송라이터가 꿈이라며, 일간지 신문에 나오는 온갖 참사들로 노래를 짓곤 했습니다.
병원 원장이라는 의사가 바퀴 달린 의자를 쭉 뒤로 빼며 진득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제가 테슬라 외제차를 소유하고 있긴 합니다.” 저도 모르게 표정이 구겨지는 걸 참지 못했습니다. 나이가 어떻건 허풍 떠는 남자만큼 인기 없는 남자가 없으니까요.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었는지 병원 원장이 헛기침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