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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바람 Feb 10. 2024

인간관계를 좋아하는 일로 건축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동반자를 가지고 싶다는 바람은 불가능에 가깝기에 꿈이 될 수 있다

 대화만으로 사랑에 빠질 수 있다.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얼음을 글라스에 담아 잔을 부딪히지 않아도 좋다. 눈빛과 목소리의 톤이 안개처럼 걷힌 자리에 핸드폰 문자만 남아 있어도 우리는 사랑에 빠진다. 이 말이 영화 <Her>에서 여자 인공 지능과 통화를 나누는것보다 더 기괴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쏟아지는 글들 속에서 관심사와 경험이 비슷한 사람을 찾아 다닌다.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는 영어와 책과 음악이 좋다. 나는 노래하는 영어강사라는 프로필 문구를 가면처럼 쓰고 온라인 공간을 돌아 다닌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 위하여 우리는 이런 여행을 더 자주 가져야 한다. 




 특이한 라이프스타일 

 다양한 사람을 열렬히 찾아다녀야 한다는 걸 알려준 사람은 창원에서 만난 삼촌이었다. 그는 젊게 살고 싶은 욕망으로 무장한 기성세대였기 때문에 어른 혹은 선생님으로 부른다면 섭섭해 하거나 화를 낼 사람이었다. 수학 학원 두 곳을 경영하는 사람 답게 머리가 비상했고웃음 근육이 짙게 배인 얼굴에는 관대하면서 인자한 성품이 드러났다. 그런 삼촌에게는 창원에서 공연 기획자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직장인 밴드 동호회를 운영하면서 자신의 동호회를 다른 동호회들과 만나게 하는 실험을 자주 했다. 

 그가 그때 말했다. 다양한 사람을 많이 만나봐야 한다고. 처음엔 그 말을 듣고 ‘그런가?’라고 했다. 그때 내 신분으로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창원의 가난한 청년이었으니까. 나는 몇 시간 동안 온라인 플랫폼으로 모임을 찾아 다녔지만, 술 친구, 이성친구를 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때 나는 술도 싫었고 남자는 무서웠다.

 일 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거주지와 직장이 서울로 바뀌었다. 창원에서 서울로 왔을 뿐인데도 똑같은 핸드폰이 완전히 다른 성과를 만들어냈다. 지금 나는 모임 네 곳에 가입돼 있다. 독서, 달리기, 봉사활동 그리고 영어 토론 모임. 독서 모임은 책을 읽게 하고, 달리기 모임은매주 5km를 달리게 하며, 봉사활동은 고양이들의 보금자리를 청소하게 하며, 영어 토론 모임은 영어 기사를 읽고 발표를 하게 만든다. 모임들이 요구하는 이러한 의무들을 지키다 보면 술 친구나 데이트를 포기하게 될 때가 있는데, 그보다 만족감과 이익이 컸다.

당신은 이렇게 판단할 수 있다.

“작가 님은 외향인이군요. 저는 내향인이라 그런 라이프스타일과는 맞지 않아요. 사람을 많이 만나면 기가 빨린다고요. 그러니까 사람많이 만나라고 강요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요.”

만약 대화를 나누는 장소가 카페라면 나는 당신이 옳다고 말할 것이다.

“사람 많이 만나면 기가 빨리긴 하죠.”

하지만 바라면 이보다 인내를 발휘할 것이다.

“저도 내향인이예요.”라는 말로 당신과 공통점을 들며 호감을 사려고 할 것이다. 그 다음엔 누가 봐도 옳은 말을 해서 당신에게서‘YES’란 대답을 이끌어 낼 것이다. 

“사회에서 생존하려다 보니 외향성을 학습해버렸어요. 알잖아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 남으려면 사람 아예 안 만나고 살 수 없다는걸.” 

“그렇긴 하죠.(YES)” 데일 카네기 식 설득법이었다.

“당신도 학습하면 충분히 저처럼 살 수 있어요. 그랬을 때 여러 가지 장점이 있어요. 첫째학원 비를 내지 않고 배울  있어요제 경험으로 말씀드리면, 사회 속에서 협력과 경쟁을 하며 배울 때 배움의 속도가 빠르더라고요. 둘째위험한 사람들을 알아 보게 된어요. 다수의 사람을 만나도, 일정한 패턴이 발견될 때가 있습니다. 그 패턴을 공부하면 인간을 이해하게 되고, 인간을 이해하게 되면 어떤 사람들과 교류할 지 나름의 기준을 세우게 됩니다.” 




인생의 동반자를 포기할  없었다 

 이 라이프스타일을 지키면서 나쁜 경험을 한 적은 별로 없었다지만, 생활을 지키기가 정말 힘들었다는 점은 밝히고 싶다. 이따금씩 나는독서 모임 사람들에게 ‘독서 모임은 평생 하는 거죠.’라고 말하고 다녔다. 평생 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두터웠다면 그런 강박과 집착이 배인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영원할 것 같은 행복한 모임 생활도 내 어리석은 말 한 마디로 당장 내일 끝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있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상황은 쉬지 않고 찾아 왔다. 직장을 바꿔도, 집을 옮겨도,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아도 독서 모임을 평생 할 수 있을까. 스트레스 받는 일 때문에 책이 안 읽힐 수도 있고, 하필이면 그럴 때 모임 사람들이 지쳐서 떠나가게 될 수도 있었다. 실제로 작년에나는 직장을 바꿔야 했다. 채용 사이트를 수시로 들락거리며 고용주의 연락에 일희일비하느라 책을 읽기가 힘들었다. 출퇴근하는 지하철에서 잠깐 책을 드는 시간이 고작이었는데 그 마저도 버거웠다.

  그때는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현실에서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추상적인 생각이나 미래로 도피하곤했다. 불가능해보이는 문제를 꿈으로 만들고 내가 꿈을 쫒다는 사실을 머리 속으로 되뇌는 것이다. 

 독서 모임으로 만나는 인연들과 십 년 이상을 견디고 싶다는 바람은 내 꿈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인연을 ‘인생의 동반자’라고 정의했다. 우리 모두는 좋은 인연을 돈보다 갈망할 때가 있지만, 그 좋은 인연이라는 건 갖기가 힘들다. 상대방에게 약속의 한 마디를 강요해도, 계약서를 들이밀고 협박해도 떠날 사람은 떠나 버린다. 따라서 인생의 동반자를 가지고 싶다는 바람은 불가능에 가깝고, 불가능하기 때문에 꿈이 될 만한 가치 있는 일이다.

 그 꿈이 성취되는 걸 방해하는 원인들 가운데 하나로, 하고 싶은 일이 너무도 많은 성향이 있다. 애초에 독서, 달리기, 음악, 영어를 실천하며 사는 사람이 욕심이 적을 리 없었다. 나는 눈이 가고 관심이 생기면 직접 내 몸으로 해봐야 한다는 주의라서 읽지 않을 것이면 서점매대의 베스트셀러 코너를 쳐다도 보지 않으며, 텔레비전으로 마라톤 대회 영상을 보면 그대로 석 달 뒤 대회를 얼리버드로 신청해버리는 성격이었다. 

 그런 빠른 포기와 비상한 실천력으로 모임 가입을 했던 것인데, 역설적이게도 그런 성격 때문에 인생의 동반자라는 것이 성립하기 어렵게 되어 버리고 있다. 처음엔 나의 적극적인 활동을 보고 다가오던 모임장들은, 내가 내적 동기로 움직이는 사람이어서 어떤 당근으로도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채고 나를 굳이 붙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쉽게 흥미를 느끼다가 쉽게 지루해져 버렸고 지루해지면 새로운 모임을 검색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들도 내가 최 우선 순위로 시간을 투자하는 대상이 되기 위해 내 안에서 경쟁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그런 혼돈이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 마라톤과 다이어트 간의 양자택일이었다. 내가 소속된 달리기 모임은 아마추어 직장인 선수들을 양성하는러닝크루로 10km를 40분대에 주파해내는 사람들이 주류 멤버였다. 나는 그들과 나 사이에 재능의 벽이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10km를 60분에 겨우 주파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모임이 원하는 사람이 될 수도 없었다. 나는 하루키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장면들을 떠올리며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네가 원하는 게 정말 이런 삶이냐고. 이런 모습이냐고. 국제 마라톤 완주에 도전하며 세계 여행을 다니는 자유로움이 부럽긴했지만 테스토스테론을 발산하며 남자들과 경쟁하는 과정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곁에서 보며 자신감을 더 잃었다. 바로 달리기 모임장 님이 그런 사람이었다. 그녀는 왠만한 남자들보다 잘 뛰면서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그러기쉽지 않은데.

 그녀가 족발집 회식에서 한 말은 아직도 내 귓가를 맴돈다.

 “제 경쟁자는 여자가 아니었어요.”

 그때로부터 몇 달이 지났을까. 나는 달리기 모임에서 강퇴만 면하는 처지로 전락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때의 이점과 그 만남을 지속하는 것이 왜 어려운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모임 네 곳과 함께하는 인생은 마치 비행기를 이륙시킨 다음에 공중에서 기기를 조립하는 일과 같았다. 전부 가볍게 했던 가입이었는데 사방에서 쏟아지는 과제들을 해결하다 보니 어느 덧 누구보다 진지한 고참이 되어 있다. 신중함과 계획보다는 임기응변과 유연성이 힘이 발휘했다. 

 어떤 특별한 일도 일단 이륙하지 않으면 찾아오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새로운 사람과 에너지로 올해를 채우기로 다짐했다면 빠르게 움직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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