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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바람 Feb 17. 2024

서울에는 지킬 앤 하이드가 가득하다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다수가 결혼과 출산을 할 것

 내 꿈은 아이 둘을 낳는 슈퍼맘이다. 이 말은 내가 소개팅 어플에서 남자를 낚을 때 썼던 미끼로 진실 반 거짓 반이 담겨 있다. 요즘 들어 아이를 원하는 마음이 여자보다는 남자 쪽이 더 큰 것 같다. 스물여덟 인 내 나이 때문인지, 이십 대 후반이 된 남자들을 만나게 되는데 대체로 이들은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중 일부는 연인 관계로 넘어가기 전부터 출산을 기피하는 여자들을 걸러내려고 했다. 그런 남자들이 아닌 경우에도 ‘아이 둘을 낳는 슈퍼맘이 꿈’인 여자가 어떻냐는 질문에는 호불호 가운데 호쪽이 다수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 말을 하면서 동시에 이것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육아를 하려면 돈을 벌어야 하고, 성숙하고 단단한 내면이 필요하며, 배우자와의 두터운 사랑과 신뢰가 필요하다. 그 외 좋은 배우자와 좋은 부모가 되지 못할 넘쳐 나고도 많다. 이 모든 조건을 성취하려면,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한데 왜 뼈를 깎아서까지 가시밭길을 가려고 하는 걸까. 나는 이것이 궁금했고, 그건 우리 여자들 내면 속에 아이 둘을 낳는 슈퍼맘이란 지킬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유명 소설 속 지킬은 모두의 호감을 받는 전문직이며 유년기부터 풍족한 가정에서 사랑을 받고 자라 성인이 되고서도 선행을 베푸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1) 아이 둘을 낳는 슈퍼맘도 지킬처럼 우리 사회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녀가 우리의 지킬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우리가 결혼과 출산을 할 것’ 임을 뜻한다. 반대로 우리에겐 또 다른 성격인 하이드가 있다. 하이드는 우리가 순백의 신부와 성모 마리아가 되지 못하도록 막는다. 조신하지 못한 행동, 예를 들면 바디 프로필이란 명목 하에 세미 누드를 찍는다 거나, 유학 갈 대학을 알아본다 거나, 설날에 친정 집에 가지 않기로 결정한다 거나 하는 일들을 벌인다.

 따라서 우리는 지킬과 하이드 사이에서 균형. 이른바 지킬 앤 하이드 밸런스를 지켜내야 한다. 이 글에서 나는 내 인생에서 지킬과 하이드를 어떻게 인지했는지를 밝히고, 지킬 앤 하이드 밸런스 어떻게 지켜냈는지 그 전략을 공유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글이 좀 길지만 참을성 있게 끝까지 따라오길 바란다.



 

신혼여행으로 두바이 어때?

 작년 봄이었다. 나는 그때 연애에 도전하고 있었고, 지인들은 나보고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그들은 한 목소리로 너는 지금 위험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그 생각대로 사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돌이켜 보면, 그때 당시 지인들의 조언은 옳았다. 두부처럼 연약한 스물일곱의 가치관과 경제적 능력으로 감수하기엔 결혼은 엄청난 일이었다.

 도전 앞에서 두려워질 때 나는 최악을 상상하곤 했다. 나이 많고 돈 많은 남자가 나를 두바이 귀부인으로 만들어 준다고 꼬드긴다면 어떨까? 스물일곱의 나는 ‘내가 그를 사랑한다면,’ 그런 인생도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직 내 것이 되지 못한 미래의 남자가 내가 확실하게 가진 현재를 망가뜨려도 괜찮다고 생각했고 지인들은 바로 이 점을 ‘위험하다’라고 지적했다.

 이때 나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 3주 동안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그 3주 동안 나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탁구와 산책을 하거나 일기를 적고 피아노를 쳤는데, 내 안의 지킬은 나를 파괴할 기세로 격앙되어 있었다.

나는 무척 결혼이 하고 싶었다. 아이가 간절하진 않지만, 아이 없는 여자가 되어 사람들한테서 ‘왜?’냐는 질문을 받게 되는 것이 싫었다. 시시콜콜 설명해야 하는 복잡한 인생보다는 내 곁의 배우자와 평범하고 안정적인 인생을 살고 싶었다. 그런 욕망 때문에 나는 두바이로 날려 버릴지도 모를 폭풍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 남자의 지킬, 그 여자의 지킬

 일 년이 지나고 다시 봄이 오고 있다. 일 년이란 시간은 나를 단련시켰다. 좋은 남자를 알아보는 안목과 귀여운 밀당 기술이 생기면서, 지난 1월은 남자친구로 확정된 사람이 없는 채로 주말마다 데이트를 했다. 여러 사람을 만나 보면서 깨달은 바는 우리가 비록 성별만 다르지 결혼에 관한 생각에는 통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었다.

 내게 지킬이 있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지킬이 있었다. ‘어쭙잖은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다면서 13일 동안 연속 야근을 하던 사람이 ‘좋은 남자친구’가 되려고 하는 것을 보면서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그 남자는 꾸준히 연락하며 밝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썼지만, 바쁜 상황 속에서 마음과 다른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는 연신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고  나는 이 헌신짝 버릴까 하고 탈출각을 재고 있었다. 나는 일을 줄이지도 나를 놓지도 못하다가 잠수를 타는 그를 정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남자에게 지킬이 자수성가한 아버지가 되어 ‘내 식구’를 지키는 거라면, 나에게 지킬은 아이 둘을 낳아 국가의 저출산에 기여하는 어머니이다. 나 역시 완벽한 어머니와 좋은 여자친구가 되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아무리 기를 써도 결국 다른 사람들처럼 이도 저도 아닌 아무나가 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노력한다면 80% 정도의 완성도를 얻을 수 있겠지만 20%까지 바꿔낼 자신은 없다.

 

못난 하이드에게도 장점이 있을 거야

 연애와 결혼을 하겠다는 것은 나한테 투자할 돈과 시간을 가족에게 사용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우리 성향의 나머지 20%가 하이드라면, 우리는 하이드를 포기해선 안 된다. 꿈을 이루기 위해선 하이드가 필요하다.

 얼핏 들으면, 꿈을 이루려는 쪽이 왜 하이드일까? 하는 의문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인간이 늘 불가능을 꿈꾸기 때문에 그것을 하이드의 파괴력 없이 성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킬 박사처럼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전 국민 경쟁을 뚫고 의대에 들어가는 순간에 그 말을 하지 전산 프로그램에 진료 기록을 적으면서 퇴근 시간이 되었으면 하고 꼬박꼬박 시계를 확인하는 생활이 꿈이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연봉과 복지가 평균보다 높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점에서 나는 현실의 하이드들이 소설처럼 꼭 비극적 결말을 만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이드는 지킬로서는 불가능한 영향력과 천재성 그리고 혁신을 보여줄 수 있는 성격이었다. 낡은 관습과 관행을 파괴하고, 하고자 하는 일에 확신을 가지고 밀어붙이려면 하이드의 원초적인 힘이 필요하다.


이중생활 꿀팁 Tip

 정리하자면 지킬의 꿈과 하이드의 꿈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이중적인 두 가지 성격을 한 몸에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중 다수의 사람들이 지킬 앤 하이드 밸런스를 지키지 못하고 인생을 허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 나는 내가 결혼과 꿈 간에 균형을 맞추려고 세운 전략 세 가지를 소개할까 한다.


 첫째, 내 미래는 연인이나 배우자가 챙겨주지 않는다.

 우리는 복권 사듯 소개팅을 나선다. 오늘 데이트 상대가 우리의 재정 상황을 아주 망칠 수 있는 만큼, 아주 개선시킬 수도 있을 것처럼 행동한다. 우리 엄마만 해도 할머니 중매로 결혼해선 오십의 나이까지 아버지 월급으로 살았다. 중간에 일을 하긴 했지만 하지만 보리고개를 걸을 만큼 가난이 처절하진 않았다. 부모님의 기울어진 운동장들을 보며 우리는 생각한다. 둘 중 한 명이 차가 있으면 집이 집이 있으면 좋잖아? 함께 캠핑도 다니고, 친구들과 파티도 하고. 그러니 이 복권 긁어 보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남자친구가 일론 머스크 급 부자여도, 돈으로 그가 해줄 수 있는 일이란 스타벅스 기프티콘과 다르지 않다. 기프티콘을 사용하기 전까진 그 상품이 가져다 줄 만족감을 상상하게 만들지만, 정작 그걸 받아 점심을 보내고 나면 끝나버리는 공허한 일이었다. 스타벅스 커피 기프티콘만 주면 어디서 뭐든 하겠다는 저자세는 좋지 않다. 결혼 기념으로 집을 받는다면 그 대가로 우리 스스로 집을 마련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길 수 있다.

 따라서 미래에 관한 불안을 해소하고 자존감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선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투자해야 한다. 오늘 공부를 거르면서 데이트 약속을 잡고, 학원 비를 빼돌려서 삼겹살을 사는 일은 그만두는 것이 좋다.


둘째, 연애는 ‘지금 이 순간’ 하는 것이다.

 요즘에는 첫 만남에 결혼을 주제로 대화하는 것이 보편적인 일이 되었다. 시작을 이렇게 하면 가치관이 안 맞는 사람을 빠르게 거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무거운 대화에서 일상적인 대화로 내려오질 못한다. 별 일 없이 연락할 만큼, 편안한 관계가 아닌 그 관계는 안 좋게 끝난다.

 상대방의 말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멈춰라. 조급함과 두려움을 내려놓자. 날씨나 몸과 마음의 컨디션, 아침 식사 메뉴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시시한 농담으로 빠진다고 소개팅이 망한 것이 아니다. ‘데이트를 마치고 헤어졌을 때 다시 만날 것처럼 헤어졌는지.’ 정도만 체크하면 충분하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연애다. 연락과 데이트가 행복하다면, 당신은 연애를 충분히 잘하고 있다.


셋째, 연인과 배우자에게 언제나 진실하라.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지. ‘예쁘게 꾸민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지. 를 놓고 고민을 한다. 진실하라는 말은 어느 정도 예쁘게 꾸몄다는 전제 하에 하는 말이다. 나 역시 털을 밀까 고민하며 거울을 보고, 속눈썹을 접어 올리며 향수를 뿌린다. 그런 일들은 차라리 쉽지. 피부 관리와 몸매 관리는 훨씬 어렵다. 그럼에도 하고는 있다.

 솔직하기 이전에 우리는 ‘연인과 배우자에게 내가 여자긴 한가?’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또한 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뱉는 것이 아니라, 연인과 배우자가 호기심을 느끼는 순간에 적절한 방식으로 해야 한다. 너무 장황해서도 안 되고, 자기 연민에 사로잡혀서도 안 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의 대화다.

“아침인데 뭐 해?”

 “나 오전에 진료가 있어서 일찍 나왔어.”

 “진료? 어디가 아픈 거야?”라고 그가 묻지만 나는 대답을 회피하고 싶다. 그 진료는 내가 매월 가는 정신과 진료였는 데다가 이 남자가 정신과 약을 먹는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응. 만나면, 말해 줄게.” 나는 이렇게 대답했는데 거기까지가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진실이었다.

 우리는 조급할 이유가 없다. 데이트는 회차를 쌓아갈 것이고, 관계도 무르익을 것이며, 진실의 양도 늘어날 것이다. 마침내 우리는 세상에서 내 편 하나를 만들게 될 것이다. 당신이 지킬 앤 하이드 밸런스를 지키면서 꿈과 사랑을 성취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1)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문예출판사,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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