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론 #1. 몸이 마른 소수가 다수의 관심을 독점한다.
다이어트에 샛길은 없다. 부모로부터 타고난 몸으로 한국의 평범한 식사를 했던 나는 정상 체중이었다. 정상 체중에서 저체중으로 내려갈 때 먹는 량은 1/4로 줄었고, 1시간 동안 멈추지 않고 달리는 걸 일주일에 3번씩 해야 했다. 달리지만도 않았다. 요가, 필라테스, 웨이트를 병행했다.
그렇게 2년을 요요 없이 저체중으로 살았다. 지금 시점에서 볼 땐 거기까지가 복에 겨운 삶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를 3단계라고 정의한다면, 연말 대상이나 영화제에서 드레스를 입는 배우들을 2단계, 패션 워크에서 포즈를 잡는 모델을 1단계라고 할 수 있겠다. 1단계는 인생에서 몸과 아름다움을 1순위로 둔 사람들로 백만 명 중에 가운데 하나라고 봐도 무색할 특별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도 독자님들도 해당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2단계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지난달에 나는 이 2단계에 도전해 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주변에서 난리가 났다.
나경 씨가 뺄 때가 어디 있다 고요!!!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받으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 날씬한 사람이 되려면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당연한 사실이다. 잘못됨을 눈치채지 못했는가? 뚱뚱한 사람들은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날씬한 사람들은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뚱뚱한 사람들이 다이어트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 사람들이라면, 날씬한 사람들은 올바른 다이어트가 습관이 된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날씬한 사람만 만났다고 하면 다이어트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걸까.
다이어트를 하니까 날씬한 건데, 날씬하니까 다이어트를 안 해도 된다는 논리적 모순을 눈치채지 못했는가. 공부 많이 해서 서울대를 간 거지, 서울대 갔으니 공부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이 어렵다면, 당신은 나와 안 맞는 독자이니 맞는 작가를 찾아 떠나길 바란다. 당장 이해하진 못했지만 시간을 두고 나와 소통하길 원한다면, 인트로를 열 번 읽고 충분히 이해한 다음 이야기를 따라오길 바란다.
1단계와 2단계인 마른 유형들을 떠올려보자. 세속적 성공과 다이어트는 지극히 가까운 관계라는 느낌이 곧바로 올 것이다. 당신이 이런 현실을 개탄하며 한국이 팍팍해서 싫다고 말한다면, 아마 당신은 빅토리아 시크릿이라는 란제리 모델들을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 세계가 서양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면, 빅토리아 시크릿을 세계 최고의 모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서 외국이 얼마나 팍팍한 지 검색하길 권한다.
아래의 게임 이론을 명심하자. 하나, 몸이 마른 소수가 다수의 관심을 독점한다. 이 글에서 얼핏 지나간 또 다른 게임 이론 역시 기억하자. 둘, 당신이 원하는 몸을 가지려면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다이어트도 연애처럼 하고 싶을 때 해야 하는 것이다. 2단계 다이어트에 돌입한 지 벌써 2주가 지났다. 그야말로 숫자 3의 지옥이었다. 내 몸은 삼일에 삼 킬로그램을 급하게 찌고 급하게 빠지는(급찐급빠) 패턴을 세 번 반복했다. 내 마음은 ‘난 할 수 있어’라는 의욕으로 부풀었다가 ‘할 수 있을까?’하는 공포로 이어졌고 ‘난 나약해’라는 자책으로 이어지면서 ‘희망이 안 보여’라는 우울로 이어졌다. 삼일이 지나면 거짓말처럼 다시 ‘아니야! 난 할 수 있어.’ 상태가 되어 같은 과정을 세 번 반복했다.
폭식도 가지가지했다. 오늘은 치팅데이라며 5년 만에 만난 언니를 앞에 두고 하이볼, 피자 네 조각, 햄버거 반 개, 파스타 반 개를 먹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괜히 만들어 둔 복근이 부푼 위장을 짓눌렀기 때문이었다. 배고픔이 아니라 우울하고 공허해서 먹은 날도 있었다. 그날은 온갖 체중조절식품을 다 먹었다. 단백질 셰이크, 그릭요구르트, 리코타 치즈, 바나나, 고구마, 견과류들을 식탁 전체를 채울 만큼 먹었다.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지만 어쩐지 내 몸이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우는 아이를 지켜보는 부모처럼 생각했다.
괜찮아. 이럴 수 있는 거야.
2주 동안 1킬로도 빼지 못했다. 성공하는 것 같다 가도 3일만 되면 원래대로 돌아왔다. 내가 나를 달래 가며 다이어트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자신을 학대하는 다이어트가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14일에 걸친 실패로 나는 내 몸에 관해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식사를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었고 미식가의 자질이 있었다.
가족 간의 친밀감을 외식으로 다져온 가정환경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십 대 시절 엄마는 나와 동생이 시험이 끝날 때마다 피자 집에 데려갔다. 가격이 만 원도 안 되는 테이크 아웃 피자가 아니라, 샐러드 바에서 단호박 샐러드와 파스타를 덜어 먹을 수 있는 그런 피자 집이었다. 나에게 먹는다는 건 소중한 사람들과 사랑을 주고받는 일이었다. 반대로 굶는다는 건 애정결핍에 빠지는 일과 같았다.
또한 나는 꼬박꼬박 느껴줘야 하는 맛과 식감이 있다. 가령, 입안 가득 폭신폭신하며 꾸덕꾸덕해지는 느낌이 첫 번째다. 주로 유지방이 들어간 치즈 케이크나 요거트 혹은 빵 샌드 아이스크림 같은 것들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바삭하게 씹히는 느낌이 두 번째다. 치킨의 튀김옷과 쿠키 같은 것들 말이다. 그렇다면 루뱅 쿠키처럼 첫 번째와 두 번째 모두에 해당되는 음식은 내 다이어트의 강력한 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이어트를 성공할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전 세계 다이어트 기법이 8000가지나 되기 때문일 것이다. 조사하면 할수록 미궁에 빠지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세 번째 게임 이론을 알아차렸다. 숫자(칼로리)는 정확하다. 3단계에서 2단계로 진입하려면, 하루 500~800 칼로리 식사를 삼일 이상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전문가들은 칼로리에 집착하지 말라고 권고했는데 3단계까지는 그것이 가능했다. 데이터를 기록하고 분석하지 않고서 2단계를 통과할 수는 없었다.
아침 사과 점심 고구마 저녁 단백질 셰이크를 3일 동안 먹는다는 (또 3이다.) 아이유 님 다이어트는 듣기만 해도 편두통을 유발했다. 어떤 사람들은 3일만 견디면 끝난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릴 적부터 벼락치기를 잘 못했다. 목표 날짜 3일 전에 굶기 시작하면 돼하며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렸다가는 숫자 3의 지옥을 또다시 반복하게 될 것 같았다.
그때 구세주처럼 등장한 사람이 배우 진서연 님이었다. 편스토랑이란 프로그램에서 저칼로리 레시피를 소개한 서연 님은 신기하게도 나랑 똑같은 말을 하고 계셨다. 많이 먹는 편이고 굶으면 열받는다고 심하게 화나면 더 먹게 된다고.
나는 귀리 우유, 오트밀 리조또, 오트밀 떡볶이 등을 따라 만들었다. 쌀과 밀가루를 귀리로 대체했고, 따뜻한 물을 하루에 삼천 리터를 마셨으며, 설탕이 들어간 모든 제품을 버렸다. 하루는 말차 프라푸치노를 만들려고 말차 가루를 구입했는데 마시자마자 단맛이 훅 올라와 보니 설탕이 들어 있었다. 다이어트 안 할 땐 오히려 그 맛에 행복했을 텐데, 나는 한 모금 먹자마자 팔천 원을 주고 산, 1회분밖에 안 먹은 제품을 쓰레기 통에 버렸다.
그러자 놀라운 변화를 경험했다. 식사마다 배가 불렀다. 편의점과 쿠팡으로 조달했던 다이어트 전 음식들과 비교가 안 될 만큼 맛있었다. 최대한으로 먹어도 평균 성인 여성의 1/2만큼의 칼로리만 섭취한다. 저절로 행복하다는 말이 나왔다. 사람들에게 친절해졌고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내 마음 깊은 곳에 뿌리내렸다.
지금까지 나는 다이어트라는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이 공유하는 세 가지 이론을 다루었다. 나는 왜 다이어트를 해야 하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답변을 주고 싶었다. 당신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마른 여자들을 보며, 혐오감을 표현할 수도 감탄할 수도 있다. ‘나는 뼈 오빠 같은 타입보다 마동석 같은 덩치가 좋더라.’ 하는 것은 취향의 문제라서 당신의 자유다.
만약 다이어트 강박 때문에 오랫동안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인생 짧으니 플레이어가 돼 보라. 이 게임 시스템은 언제나 가동 중이었다. 다이어트해서 뭐 하냐는 거짓말에 속지 말라. 보상은 언제나 제 자리에 있었다. 플레이어가 행동하지 않았을 뿐이다. 경험자로서 권장한다. 달콤한 보상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인내할 용의가 있다면, 세 가지 이론을 가슴에 새기고 당신 성향과 체질에 맞는 기법을 연구해 보기를.